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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 Chun Jan 23. 2022

한여름 밤, 어설픈 참선

마음의 시계

우린 매일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시계를 보곤 한다. 그때마다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 "아직도 10시가 안 되었네!"라며 시간을 탓해본 적이 있을 듯하다.

"일일 여삼추"


어쩌다 비행기를 타고 좁은 좌석에 앉아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여행을 해야 하는 경우에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힘겹도록 천천히 흐른다.


16세기에 뉴우턴이 생각했던 시공간에 대한 위대한 이해와 접근이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정리되기까지 절대적인 시간과 상대적인 시간의 개념은 우리가 일상에서 느낄 수 있었던 사소한 경험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굳이 광속에 대한 뉴우튼 역학, 맥스웰 방정식, 로렌쯔 변환 등과 같은 심오한 이론들을 이해하지 못해도 시공간의 변환에 대한 상대성 이론이 우리 마음속에 이미 살아 숨 쉬고 있는 진리인 것이다.


살다 보면 우리 마음속에도 시공간의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것우연히 깨닫게 될 때가 있다.




오래전 영주 부석사 법회에 갔다가  하룻밤 참선의 경험을 하게 된 적이 있다. 나는 신도가 아니었지만 지인의 손에 이끌려 함께 법회에 참석했었다. 한여름밤에 큰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는 것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無念無想(무념무상)"의 경지를 느껴보고 싶어  제대로 된 참선을 하고 싶었던 터였다.


저녁 8시 법당에 모인 많은 신도들은 큰스님의 법문에 무더위도 잊고 몰입하는 차분한 분위기로 보였다.


큰스님이 전하고자 했던 법문의 주제는 생각이 나지 않지만, 지금도  마음에 크게 다가온 것은 "인간 존재의 나약함"에 대한 지적이었다.


한 시간 가량 설법하시던 큰스님은 법문을 듣던 많은 신도들이 모기로 인해 여기저기서 몸을 흔들거나, 괴로움의 탄식 뱉어내기도 하고, 웅성대며 소란해진 모습을 보시고는,


"한갓 모기처럼  작은 미물의 자극에도 수십만 배의 무게를 가진 육신과 문명을 이룬 강인한 정신이라 할지라도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으니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라며 법문을 마무리하셨다.


큰스님의 말씀은 순간 많은 청중의 움직임을 밧줄로 묶은 듯 정지시켜 놓았다. 스님의 법문 이후, 나 또한 한여름밤 산사의 왱왱거리는 수많은 모기가 다가와도 육신과 정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의연함을 지키고자 하는 고행을 기꺼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이날 많은 청중들이 모기들에게 본의 아닌 몸 보시를 하게 된 것이다.


큰 스님의 법문이 끝나고 저녁 9시, 지인과 나는 근처 조사당에 앉아 하룻밤 참선을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날 참선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묵언수행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막막함이 마음 저변에 함께하고 있었다. 


사실, 여기 오기 전 참선도 하고 산사의 고요 속에 지인과 이런저런 삶의 심오한 대화도 나누고 싶었던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저녁도 먹지 못했는데 괜히 여기를 따라왔다는 후회마저 들었다. 하지만, 밤늦은 시간 산을 혼자 걸어내려갈 수도 없었다.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온 처지라 밤을 새우고 아침이 오기 전에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조사당에 자리를 잡았지만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여기 온 것에 대한 후회가 물밀듯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배고픔도 참기 힘들지만 묵언하며 참선에 몰입한 지인에게 폐가 될까 싶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상황은 내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했고, 여전히 모기가 신체 이곳저곳에 달라붙어 자유롭게 만찬을 즐기도록 인내하기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


겨우 밤 10시다.

이제 한 시간이 지났건만 마라톤 42.195KM를 달려온 듯, 심신이 급격히 피곤함을 느낀다. 얼마나 먼길을 달려야 동이 트는 새벽 아침에 도달할 수 있을지 막막함이 밤하늘 별처럼  아득하고 깊숙이 자리한다.


종종 연구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거나, 좋은 벗들과 술을 마시며 밤을 새웠던 그때의 10시간은 짧기만 했는데 말이다.


밤새 "무념무상"의 경지를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들었다. 한 시간 동안 내 머릿속에는 단  몇 초 동안도 잡념이 떠나지를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고행이다. 이미 참선과는 거리가 멀었고 가부좌하고 앉은 하체는 쥐가 나서 잃어서지도 못할 판이었다.

자신과 각고의 싸움을 하며 다리의 감각을 잃어 갈 즈음, 밤 12시 언저리에 다 달았다!


졸음이 엄습하기 시작하는데,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왱왱대는 모기의 위협 속에 말없이 앉아 있는 나 자신이 불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 무엇을 얻으려고..


분명 내 마음의 시계는 1억 년에 0.91초의 오차를 가진다는 원자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의 흐름과는 현격하게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고행 속의 2시간은 내게 "일일 여삼추"였다.


이렇게는 도무지 새벽의 동이 트지 않을 것 같았다.


지긋이 눈을 감고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머릿속에 그리기도 하고, 파도소리에 집중하기도 하며 오직 시간을 잊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사이 내 마음에는 하나의 확실한 화두가 자리했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생각을 비우자!"


촉촉이 내리는 봄비에 연녹색 포플러 나무 잎새가 새록새록 고개 드는 풍경을 그리기도 하고, 대학시절 지리산 산행할 때의 지루했던 길을 따라 걷기도 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숫자를 세어가며 시간을 잊으려 노력하던 어느 순간 놀라운 상황이 벌어졌다.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이 붉게 물들어 가며 동이 트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것처럼  5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것이다. 순간이동처럼 말이다.


지나간 5시간은 기억에 없다. 시간이 지난 후 그저 다른 시간에 내가 존재할 뿐이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붉은 동녘의 기운을 느끼며 맞이하는 순간의 새벽은 축복이다. 희망이다.


어쩌면, 우리의 삶에서 함께하는 모진 시련이나 고난, 행복과 기쁨의 크기는 마음의 블랙홀에 시간이라는 절대 기준이 어떻게 투영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미국 심리학자 엘렌 랭어가  '마음의 시계'(Counterclockwise)에서 기술한 흥미로운 실험들에 대한 결과는 상대성이론이 문명의 역사를 바꾸었듯이 상대적 관점의 사고(내 마음의 시계)가 인간생활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생사가 달린 전쟁 속에서는 눈뜨면 지옥이지만,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평화 속에선  무료하고 할 일 없는 것이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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