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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8. 2021

에어컨 리모컨과 자기만의 방

원룸을 얻게 된 결정적 이유

1. 에어컨 리모컨과 자기 결정권

언제 내게 에어컨 리모컨의 주권이 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첫째가 태어난 해인 2005년의 여름 끝자락에 구입한 에어컨은, 켜고 끄는 것에 남편의 허락이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면 그 당시 나는 에어컨을 켜고 끄는 선택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무뎠을지도 모른다. 아니다. 에어컨을 켜고 끄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다.

여름만 되면 35도를 넘나드는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여름이 참으로 싫었다.


우리 집 에어컨 리모컨은 남편만이 컨트롤 할 수 있다. 그까짓 거 뭐라고, 그거 그냥 리모컨 쥐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되지. 설정온도를 확 내리면 되지! 풍향을 강으로 올리면 되지!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렇지 않았다. 감히 그러지 못했다.


남편은 6명의 가족이 모두 귀가하고 모두가 샤워를 마치면, 전원을 켜고 끄는데 소비되는 에너지와 소비전력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시간대와 온도를 설정하여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잠자리에 누웠을 때 에어컨을 켰다.

낮시간 동안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시원한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방학 동안 집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을 아이들에게 미안해해야 하는 건 내 몫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도 미션을 주었다. "00는 낮시간 동안 아름드리 도서관에 가있어라. 00은 어디 어디에 가 있어라... "

큰딸이 문자가 왔다. "엄마.. 너무 더워..." "그냥 에어컨 켜고 있어. 엄마가 책임질게. 꼭 켜. 알았지?" 

엄마가, 내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쳤다. 꼭 켜고 있길 신신당부했다.

아이는 에어컨을 켰을까 안 켰을까. 안 켰을까. 못 켰을까.

남편 앞에서 당당히 에어컨 리모컨을 쥐지 못하는 엄마가 보증하겠다는 그 말이 딸에게 과연 힘이 되었을까.

안 켠 건지 못 켠 건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하소연만 하고 결국  더위를 버텨냈다. 집안의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거다. 그건 몸소 익혀온 눈치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다가왔다.

누가 들으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에어컨 리모컨 컨트롤의 결정권이 없다는 사실이 원룸으로의 탈출을 강행하게한 큰 이유 중 하나이다. 나의 더위는 참을 수 있지만, 아이들이 참아내는 더위는 못 견디겠다. 나의 허가가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켜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며 내가 그렇게 작고 초라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가족의 미래"를 위한다는 남편의 대의명분은 늘 옳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름만 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키가 줄어들고  몸집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나의 자존감이, 나의 존재감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참으로 하찮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 남편은 내 마음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가족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이 있었으므로. ) (회사에서 수도 없이 껐다 켰다 나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리모컨 버튼 이건만.... 이 우습고 쬐만한 리모컨에 나는 졌다. )

 


2. 자기만의 방

리 집에 내 방은 없다. 물론 안방은 있다. 그러나 안방은 남편의 방이다. 남편이  쉬는 침대, 남편이 애정 하는 티비. 남편이 안방이 내방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그의 방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 방에서 절대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안방은 내 방이 아니다.


셋째와 넷째 아이가 함께 쓰는 방은 이층 침대가 있다. 나는 주로 주방에서 활동을 하고, 어린아이들이 쓰는 방에서 참을 청한다. 마음이 편안할 때는 이층침대의 일층에서, 마음이 조금 불편한 날은 이층에서 잠을 청한다. 그러다 어느 날 오~예! 를 외치며 발견한 공간은 이층침대와 벽 사이 한 사람이 겨우 누울 까 말까 한 여분의 공간. 이불을 깔고 누우면 문밖에서 나의 존재가 안 보인다. 나만의 완벽한 공간이 생긴 것이다. 저곳에서 드디어 안락함을 느꼈다. 구석에 숨어서 느끼는 편안함.

마음이 이 정도로 망가져서야 내 상태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무딘 건지, 둔한 건지, 참을성이 강한 건지. 인내심이 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망가져서야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인지하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에서 몸을 숨겨 책을 읽고 생각에 잠겼다.

어느 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실명으로 글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누군가 나의 답답함을, 멍청함을 비난하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났다.  카카오톡에 공유된 글을 보고 지인이 연락이 왔다. 나는 황급히 가운데 이름에 점과 짝대기를 그어 "김메주"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 아니.. 하필 그때 생각난 게 메주가 뭐야..) ^^ 바꿔놓고 보니 너무 우스깡스러워 필명으로 변경을 시도한다. 이런! 한 달에 한 번만 바꿀 수 있나 보다... 김메주란 이름을 열흘이나 더 써야 한다니!!!

1. 자기만의 방 2. 은은한 달빛 3. 선샤인 4. 소소한 일상, 따뜻한 봄날... 혼자 이것저것 끄적여 본다.  

자기만의 방이 1순위였다.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제목인줄도 몰랐다. 내 무의식속에 [자기만의 방]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에어컨 컨트롤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방.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자기만의 방.  여성과 남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한 인간의 안정과 번영을 이야기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오늘 글은 누구나에게 에어컨 리모컨 결정권은 필요하다는 주장과 누구나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한다는 주제를 남기며 마무리해보려고 한다. 일기에 가까운 부끄러운 글을 이렇게 정리해본다. 여러분은 에어컨 리모컨의 결정권이 있는 삶을 살고 계신가요?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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