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Aug 06. 2021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이 싫다

너의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거냐. 사랑이 뭐길래

머리로 생각할 겨를 없이 손가락에서 자판으로 0.01초의 버퍼링도 없이 타타닥 타다닥.. 폭풍처럼 휘갈겨 써지던 글들. 감정이 정제되고 있는 걸까. 먹먹한 마음 때문에 꾹꾹 마음을 눌러 담다가 결국 한 글자도 못썼다.


셋째와 넷째가 너무 보고 싶어서 주중에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휴가를 다녀온 지 3일 만에 반차와 반반차를 합쳐 시간을 만들고, 아이들과 신나게 놀았다. 아이들은 정말 신나 보였다. 복층으로 된 엄마의 집이 너무 멋있다며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하호호 깔깔깔, 우당탕 우다다닥....난리가 났다. 하루만 데리고 있다가 보내려고 했던 내 계획은, 하루가 이틀로, 이틀이 삼일로 바뀌어 결국 막내는 지금도 내 곁에서 곤히 자고 있다. 왔다갔다 할 집이 2곳이나 생긴 아이들에게 원래 우리 집과 엄마 집은 그저 신나고 재미나고, 신기한 공간 정도로 느껴지나 싶었다. 한치의 그늘도, 한치의 슬픔도, 한치의 우울도 없어 보이는 12살 아이와, 8살 아이. 그래서 잠깐 안심했었다. 아니 방심했었다.



같이 놀던 언니는 학원을 가야 해서, 원래 집으로 보내고 막내와 단둘이 자동차에 타고 있었다. 막내가 기어를 잡고 있는 내 손을 살며시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운전하느라 제대로 못 봤었지만 분명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아니.. 분명 너 조금 전까지 삼겹살집에서 고기가 너무 맛있다며, 너무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었니...)

아이: "엄마... 아빠가 엄마 사랑한데...."


아이 :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는데, 엄마가 그 마음을 잘 몰라주는 것 같은데... 아빠는 엄마랑 살고 싶은데, 엄마는 엄마 집에서 혼자 살고 싶어 하잖아. 그러니까.. 엄마. 아빠 좀 다시 봐주면 안 돼?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


나 : 침묵..


아빠한테 엄마를 설득해 달라는 미션을 받은 걸까. 신나고 즐겁게 이틀을 보내고 나를 깜쪽같이 안심시켜 놓은 막내는 언니가 떠나고 엄마와 단둘의 시간이 생기자, 눈물을 삼킨 마음을 전했다. 결국 아이는 울고 있었다. 작은 마음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작은 얼굴과 볼을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하필, 아이가 꺼낸 말은 "아빠는 엄마를 사랑하고 있어... 엄마는 잘 모르겠지만..." 였을까.


침묵을 깨고 내가 한 말은 너무 담담했고, 너무 담담해서 잔인하게 들리는 말이었을 것이다.


"사랑? 00야. 너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니? 엄마는, 아빠랑 살 때 많이 힘들었어. 그건, 00도 알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면 안 돼. 사랑하면 사랑하는 상대를 그렇게 대하면 안 되는 거야. 엄마는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

막내가 눈물을 훔치더니,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말을 더 못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설득하기를 멈췄다.

  



남편과 대화를 시작하면, 한 시간쯤 지나갈 때 나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어 진다.

어디서 끊어내고, 어디서 다시 호흡을 붙여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대화 패턴. 그러다가 나는 울며불며 빌게 된다. "다 내가 잘못했어.... 잘못했다고...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해.. 제발"


남편은 상한 감정이 풀릴 때까지 집요하게 나의 사과를 요구했고, 눈기에 독기도 빼고, 말투에 담긴 분노도 빼고, 꼬랑지를 내린 강아지처럼 변할 때까지 말꼬리를 잡고 나를 돌리고 흔들었다. 잡힌 건 말꼬리인데, 나는 진짜 꼬리를 잡히고 360도 회전으로 뱅뱅 돌려지고 있는 동물처럼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대화의 흐름 속에서 점점 미쳐가고 있었다.


"미안하다고?. 그게 미안하다는 말이야? 그게 미안하다는 말투냐고!  "

"아까 내가 신경질적으로 말해서 미안해. 나도 오늘 회사에서 힘들었어. 힘들어서 들어온 사람한테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처음에는 감정적으로 그렇게 반응한 거야. 내 말투가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아니 그러니까.. 니가 아까 그렇게 말한 게 잘한 거냐고"

"아까는 나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그렇게 반응했었던 거야.. 미안해. 그런데 내입장도 생각해주면 안 돼? 회사에서 힘들어서 나도 예민했었어. 그래서 그랬어. 미안해"


내가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내 감정과 상황에서 차분히 설명해서도 안 끝나는 이 대화. 나는 알고 있다. 이 대화는 대화의 컨텐츠가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분이 풀릴 때까지, 시간이 정해져 있는 대화였다. 

그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지속될 거다. 당신의 기분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그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일단 정신을 빠짝 차린다. 정신을 놓고 감정적으로 대화하기 시작하면 아주 큰 싸움으로 번지기에, 적당히 이성을 잡고 감정을 흔들지 않아야 한다. 내 감정도 선을 넘어 올라가면 우리 싸움은 주체할 수 없이 커지기에... 책에서 배운 "I  message"를 최대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그를 비난하지 않으려고, 내 상황과 감정을 설명하려고 했다.


안 통했다. 또 한 시간 또는 두 시간... 아... 당신의 분을 삭힐 시간이 필요한 거구나.


물리적 폭력만이 폭력이 아니다. 나는 두드려 맞고 있는 기분이었다. 팔로 막아봐도 몸을 웅크려봐도 나보다 몸집도 크고, 힘도 센 남자가 휘두르는 폭력을 감당할 수 없듯이 심리적으로 맞고 있는 이 상황도 집안의 권력을 쥐고 있는 그 앞에서 나는 무참히 두드려 맞고 있었다. 정신으로 맞았고, 마음으로 맞았다.



우리의 대화는 두 가지 패턴으로 끝난다.

하나는 내가 울면서 빌게 되는 거다. "이제 그만해 제발..ㅜㅜ 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오빠가 원하는 대로 해야 끝나는 대화잖아.) 시간을 되돌려서 내가 그 행동을 다시 할 수도 없는 거잖아.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만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


또 하나는 내가 미쳐 날뛰게 되는 경우다.

"으악~~~~ 악~~~~ 제발~~~ 제발 그만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잖아!!!! 그만해!!!!!!! 악~~~~~~아~~~~~~~"


일 년에 셀 수 없이 잦은 이런 패턴의 대화가 오가고, 큰 싸움을 피하기 위해 감정을 누르다가 결국 나는 미쳐가고 있었다. 미친년 널뛴다는 표현이 딱 맞는 표현이다.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만해.. 그만해... 제발 그만해!!!!




내가 집을 나가고 나서 남편은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당신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문자를 보내오고 있다. 예전의 나라면 흔들렸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니다.

사랑이 식어버린 마음은 이렇게 차갑다. 얼음같이 차다.


당신의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나는 사랑은 원한다. 나는 외롭다. 그러나 당신이 주는 게 그게 사랑이라면 나는 당신의 사랑은 받고 싶지 않다.  당신의 사랑은 거절하겠다.

내가 누군가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슬플 뿐이다.


사랑하는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주지 않는 사랑, 타인의 마음은 살펴보지 않는 사랑, 그걸 "사랑한다"라는 동사로 표현해도 될까?

대접받고 싶어 하는 사랑. 당신은 늘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이제 그 사랑을, "사랑한다"라고 표현하지 말길 간절히 바란다.


사랑이 뭘까.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나는 그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고, 마음이 사라진 내 마음을 감당할 수도 없다.


이 마음으로 그의 곁에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내 집으로, 이 마음을 안고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콩나물 한 박스와 천육백팔십원 계란 한 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