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의 계절-샛노랑과 샛빨강 사이
제 몫의 명찰이 없는 내 인생의 색깔
1. 파프리카의 계절
여름이 되면, 빨강 노랑 주황 파프리카를 가늘게 썰고 월남쌈을 만든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빨주노초파남보, 자연이 주는 색감이 너무 좋아서 재료를 넋 놓고 쳐다본다. 그 자체가 힐링이다.
월남쌈이 너무 좋다. 각종 야채가 소스와 어우러지는 이 맛. 요맘때가 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씩 초대해 월남쌈을 꼭 먹이고 싶어 진다.
여름이 되면, 야채 피클도 담그고 오이지도 담그고, 레몬청 자몽청 이것저것 만드는 게 계절에 대한 나만의 응답이었다. 청량하고 선명한 컬러의 야채들, 무더운 여름을 거뜬히 물리칠 수 있을 것은 여름맞이 의식이었다.
그러나 올해 여름은 파프리카도 월남쌈도, 내가 좋아하는 이들을 초대하여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일이 사라졌다. 코로나도 코로나지만, 가정이 흔들려버렸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진짜 내 감정을 마주한 것이다. 핑계 대지 않고 마주했다. 그동안 피하고 외면해오던 내 속마음을. 폭발하듯이 마주했다. 더 이상 내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남아있지 않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인생의 큰 과제를 해결해야 만한다.
2. 가을방학의 '샛노랑과 샛빨강 사이'노래를 듣는다.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내 인생의 색깔은 제 몫의 명찰이 없어."
제 몫의 명찰도 없는 내 인생의 색깔.
내 공식 주제가로 정해야 하나.
결혼은 나와 다른 타인을 만나 버무려지고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과정인데, 나는 나의 색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엉망진창 팔레트 같다.
과연 이것이 그의 잘못인가. 나의 잘못인가.
(말해 뭐해... 둘 다 잘못인 거지. 그러니 이지경이 됐지.)
3. 생각은 머리로 하고 있는데, 아픈 건 심장이다. 가슴형 인간이 맞나 보다. 심장이 깔딱깔딱, 꼴딱 꼴딱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순환되지 못한 혈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올 것 만 같다. 지끈지끈 뇌가 아파야 하는데, 가슴의 답답함이 머리의 아픔을 이겼다. 결국 어제 새벽 구토를 하고 말았다. 잠결에 울렁거리는 속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 쏟아냈다. 그래도 남은 것들이 있는 모양이다. 하루종이 속이 울렁울렁거린다.
4.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건 마치 생존을 위해선 팔과 다리 중 하나는 꼭 잘라내야 하는데 다리를 자를래, 팔을 자를래.. 뭐가 더 네 인생에 도움이 되겠니.. 하는 무서운 선택 같다. '다리를 잘라. 걷지는 못하겠지만, 손이 자유로우니 먹고 쓰고 씻는 일은 가능하잖아? 뭔 소리. 손을 잘라. 니가 가고 싶은 곳에 스스로 움직여 가려면 다리는 있어야지.'
내 울렁거림은, 이렇게 잔인한 선택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과연 어린아이 둘을 남편이 키울 수 있을까. 저 어린아이들을 남편에게 보내고 첫째 둘째만 데리고 나오는 게 정말 답일까? 이 가정을 그대로 지켜주는 게 아이들을 위하는 길일까? 어떤 선택을 해야 후회가 없을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다시 이전 삶으로 돌아가는 게 맞을까. 과감히 여기서 벗어나는 게 맞을까. 팔을 자르는 게 수월할까 다리를 자르는 고통이 덜 한 걸까. 어떤 선택을 하든 피를 봐야 한다.
팔을 자르던 다리를 자르던, 엄청난 고통을 수반해야 한다.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다시 이전처럼 숨죽이고 살아가면 된다.
나는 내 인생의 색에 제 몫의 명찰을 달아주고 싶은데.
파프리카처럼 선명하고 예쁜 컬러를 갖고 싶은데.
5. 막내는 임신 10주 차에 융모막 검사를 통해 성별검사를 받고 나의 의지로 태어난 아이다. 넷째를 갖게 된 과정은 참으로 바보 같았다.
셋째가 네 살이 되던 해 남편은 "○○야, 우리 넷째 갖자. 내가 알아봤는데 중국 황실 달력에 따르면 4월에 아이 가지면 무조건 아들이래.."
'아니 이 시부렁 같은 얘기는 뭐냐. 듣도 보도 못한 중국 황실 달력이 여기서 왜 나오냐! 나는 유산한지도 얼마 안 됐고 진짜 이 집 안에서 아들 안 낳고 못 사는 거면 휴직하고 아들 낳을 수 있는 체질 만들어서 시도할게! 지금은 아니야. 복직하고 이제야 업무 익히고 있는데 또 임신해서 울렁거림과 피곤함 안고 직장 생활하라고? 위로 애가 셋이나 있는데?'-> 마음의 소리임.
나는 따지길 포기했었다. 꼭 아이를 한 명 더 낳아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남편이 저렇게 우길 때 시도해보고 그다음 결과와 책임은 남편 몫으로 돌리고 싶은 얄팍한 계산이 있었다. 내 선택이 아니고 니 선택이었다고, 네가 아들일 거라고 확신하지 않았냐고.
가져서 아들이면 다행이고, 딸이라면 중국 황실 달력 어쩌고 호언장담한 남편이 다시는 아들 얘기를 하지 않을 거라는 샘을 했었다.
그러나 보기 좋게, 그 샘은 틀렸다.
넷째를 출산하고 4년 후 내가 마흔이 되던 해
나는 다섯째 문제로 매일매일 시달려야 했다.
마음의 소리를 뱉어내지 못한 죄다.
책임을 회피한 죄다.
내 목소리를 내지 않은 죄다.
내 결정에 당당하지 못한 죄다.
도대체 나는 언제부터 내 목소리를 잃어갔던 것일까?
내 색깔이 없어진 것일까?
나는 그런 어중간한 사람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내내 반장을 했고, 학생회 임원을 하며 학생의 목소리를 내는 일을 해왔다. 일 년밖에 하진 않았지만 대학 학보사 출신이다. 회사에서는 홍보팀장, 전략기획팀장, 정책실장까지 했다.
공부를 잘하는 것과 일을 잘하는 것.
사랑을 잘하고 결혼생활을 잘하는 것은
간극이 있나 보다. 전혀 다른 문제 인가보다.
나와 그의 관계는 참 이상했다.
나는 그 앞에서는 만은 세상 바보 멍청이 모지리가 됐었다.
질질 질질 끌려다녔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리 끌리고 저리 끌려 온몸이 성한 곳이 없어졌다.
5-1. 융모막 검사를 통해 10주 차에 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남편은 아이를 포기하자고 했다. 차마 시부모님께 말을 못 하겠다고 했다. 융모막 검사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기다란 바늘이 임산부의 배속을 관통하고 양수를 지나 자궁 안 융모를 건드린다. 콩알만 한 태아가 꿈틀꿈틀 주삿바늘을 피해 다닌다. 놀랍게도 그 작은 몸에 팔다리가 다 있다.
검사 결과를 듣고 온 날 하염없이 울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은 내 노력으로 됐었는데, 이건 내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었다. 억울해서도 눈물이 났지만 아이에게 너무 잔인해서, 미안해서 통곡을 했다. 사람이 어찌 신의 영역을 건드리려하는가. 사람의 계획으로 한 인간을 만들어내고 포기하길 결정하는가!
그날 밤 가만히 누워 남편의 손을 잡았다.
"오빠.. 우리 넷째 낳자. 내가 잘 키울게. 지금까지 첫째 둘째 셋째가 우리 삶에 너무 큰 기쁨이 되었잖아. 나는 우리 넷째도 그럴 거라는 확신이 있어. 나 믿지? 내가 잘 키울게"
남편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내가 본 남자의 눈물 중 가장 깊고 슬픈 눈물이었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원하는 걸 갖지 못하는 이와 원치 않지만 하나 더 갖는 이중 누가 덜 불행할까?' 그 당시 나는, 간절히 원하는걸 손에 못 넣어 괴로운 남편이 안돼 보였고
아이를 좋아해서 힘든지 모르고 셋이나 키운 내가 한 명을 더 키워내는 일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라고 생각했었다. 시부럴.. 대한민국 평균 출산율이 0.92인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구만...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극단적으로 감정적인 사람인 것이었다.
넷째 탄생과 양육의 책임을 나 스스로에게 부여해버렸다. 누가 등떠밀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남편의 황실 달력에서 시작해서 나의 원대한 포부로 태어난 넷째를 내손에서 못 키운다는 사실은 내 속을 계속 울렁울렁하게 만들고 있다.
-선명한 파프리카에서 시작해서 울렁거림으로 끝난 오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