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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Sep 11. 2021

타인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는 보통의 인간

최악의인간이라고썼다가 보통의 인간이라고 정정한다.

연재소설처럼 기술하고 있던 글인지라, 한번 손을 놓으니 어디서부터 써 내려가야 할지 막막하여 잠시 글쓰기를 멈췄다.

토요일 아침, 막내딸은 가방에 걸 이쁜 키링을 얻기 위해 연산 문제집 2장을 이른 아침부터 풀고 있고, 셋째 딸은 어젯밤 내가 부쳐놓은 김치오징어부침개를 맛나게 먹고 있다. 식탁에서 펼쳐지는 풍경, 또다시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나의 뜨겁고 차가웠던 여름은 지나갔다. 가을이 왔다.  


이혼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의 응원을 받으니, 잔다르크가 된 것만 같았다. (꼭 해내리라.. 다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응원들에 보답하고 싶었다. ^^; 사회적 이슈도 아니고, 무슨 응원에 보답... 피식 웃음이 나네)

부모님과 깊은 이야기를 하고 돌아온 그날 나는 마음이 완전히 정리되었다. 밤 12시에 도착한 집.. 아이들만 올려 보내고 원룸으로 돌아가려는데 남편이 이야기 좀 하자고 한다. 그동안 그와의 대면을 피해왔었다. 속이 울렁거려서, 숨이 안 쉬어져서, 머리가 아파서. 말이 안 나와서... 하지만 그날은 자신이 생겼었다. 정말 마음의 바닥 끝까지 깔끔하게 정리가 되었으니까.


남편은 한 달 동안 딱 10킬로가 빠졌다. 매일 술을 먹었다. 담배를 엄청 피웠다.

그리고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눈빛에 독기가 빠져있었다. 몸에 잔뜩 들어있던 힘이 빠져있었다.

결정적으로... 남편의 손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파스였던 것 같은데, 나는 그걸 왜 칭칭 감고 있는 붕대로 기억할까.. 감정이 증폭되어 더 크게 인지되었던 것 같다.)

다 정리되었다고, 끝이었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또다시 피어오르는 "연민"....


어쩌면 나는 나의 두려움을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포장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다 정리되었다고 담담히 말했던 내 마음속에 일고 있는 깊은 두려움을 나는 알고 있었다. 선택과 결정이 가져올 책임.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의 무게를 말이다. 나 자신과 얄팍한 셈을 했고, 누가 왜 이런 결정을 했냐고 물으면 연민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 자신이 앞으로 변하겠다 말했고, 그를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고. 나는 이전과 다르게 살 수 있고, 그럴 자신이 있다고.


브런치 어느 누군가가 쓴 글이다. 마찰을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이 완전히 마모된 후에나 끝을 이룰 수 있다고. 내겐 아직도 연소되고 마모될 감정들이 남아 있다. 홀쭉해진 그의 몸과 인사불성 되어 넘어져 다쳐버린 손. 그 손으로 설거지며 이것저것을 했을 모습을 상상하고 가슴 한켠이 찌르르하는 내 마음이 마모되야 할 감정들이다. 나의 여느해와 같이 평범한 가을은 이렇게 파스가 붙여진 손에서 시작되었다.




온통 나의 이야기로 집중된 여름을 보냈기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살피지 못했다. 내 문제가 가장 심각했고, 그것은 나의 생존의 문제였으니까.

간만에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본연의 직업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아픈 세상들. 낮은 곳에 위치한 삶들. 업무차 대면하게 된 어느 집의 이야기가 그날따라 내 머릿속에 깊이 남아있다.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과 어린 자녀와 아내를 떠나보내는 사별의 아픔. 홀로 양육해야 하는 어린 두 딸을 둔 그분을 보며, 꼭 절망의 고통을 이겨내셨음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그 아픔과 원망과 괴로움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희망이라는 걸 놓지 않길.. 어린 두 딸이 건강한 세상을 접할 수 있도록 어른인 그분이 힘을 내어주길 응원했다. 어두컴컴한 반지하 공간을 나오면서 스며드는 위안... 정말 나는 최악의 인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안을 느끼다니.. 나란 인간 정말 최악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원들을 돌아보게 되었다.나는 몸이 건강하고, 안정된 직장이 있다. 딸의 삶을 응원해주고 딸의 선택과 결정을 믿어주는 부모님이 계시고 늘 내편인 언니와 동생이 있다. 엄마를 사랑해주는 네 명의 딸이 있고, 무엇보다 늘 곁에서 넘어지지 않게 힘을 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다. 글을 쓸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길.. 주님의 은혜도 내 안에 있다.(^^;무늬만 기독교인이라.. 이건 부끄러워서 말하기 싫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지리지리 한, 거지 같은 내 삶을 그냥 깊은 심해로 가라앉히기에는, 아직 소진되지 않고 남아있는 재원들이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불행을 보며 위안을 얻은 최악의 인간이라는 제목도 다시 "보통의 인간"이라고 정정한다. 이제 스스로를 자학하고, 자책하고, 낮추고, 업신여기며 무시하는 행동을 멈출 것이다. 보통 정도의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못났다고, 모자라다고 비난하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 갖고 있는 도덕적 잣대와 기준도 좀 내려놓을 생각이다. 역할에 대한 기대 수준도 내려놓겠다. 나는 최악의 인간이 아니라 (어쩜 최상의 인간을 기대하고 살고 있기 때문에, 그 기준에 못 미치는 나를 최악의 인간이라고 낮추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보통의 인간의 삶을 살 것이다. 미안하고 죄송하지만, 그날 업무상 느낀 나의 감정도 어느 보통이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고 정리하겠다. 나는 어느 정도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보통의 사람일 뿐이다.    



내가 이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나의 삶에 그린 라이트가  켜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주황 신호등 앞에 서있다.

단지 신호가 바뀌면 가야 할까 말아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잘 운전해서 갈까를 고민하고 있다.


주황 신호등 앞에 서있는 당신에게,

운전을 잘하는 법을 고민하며 여전히 글을 써내려 갈 것이다.

내려놨던 우쿨렐레를 다시 들었다. 놓았던 책도 다시 짚었다. 사라졌던 웃음도 다시 지어졌다.

사람을 만난다. 운동화도 운동복도 장만했다. 차 안을 기분 좋게 할 향기도 채웠다.

좋은 재료를 보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도 생겼다.

멈췄던 나의 일상이 다시 복귀되고 있다.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주는 타인으로부터 전해진 따뜻한 에너지로  내 삶이 시작되고 있다.


이제 가을이 시작됐다. 9월, 높은 하늘과 선들한 바람, 나는 볕 좋은 가을날에 태어났다.

나의 계절이다. 내 인생의 선샤인(sunshine)...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나의 이야기가 다른이들에게도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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