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장착하다

by 아리따


만원 버스에 오르는 순간, 나는 작게 결심한다.

오늘도 살아남아야지.


웅성거림과 경적,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타인의 말들 사이에서 내 마음의 안감을 지키기 위해,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작은 버튼을 누른다. 곧 도시의 소음이 물밑으로 가라앉는다. 여전히 분주한 세상 속에 투명한 고요의 방이 생긴다.


플레이리스트를 연다. 오래 들어 익숙해진 선율들이 천천히 차오른다. 조금 전까지 날 서 있던 기분이 부드러워진다. 창밖을 바라보는 일은 그다음이다. 유리창 너머의 풍경과 귓가의 음악이 하나의 결로 엮이는 순간, 세상과 나 사이에 얇고 단단한 막이 생긴다.


이어폰이 없을 때 나에게 세상은 너무나도 버겁다. 타인의 대화는 예고 없이 귀에 꽂히고, 표정들이 내 감각을 거칠게 스친다. 그 모든 것에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자꾸만 받아들이고 만다.


노이즈 캔슬링이 그런 나를 대신해 말해준다.


'굳이 다 느끼지 않아도 돼.'


소음이 지워진 자리에서는 사람들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각자의 사연을 품고 흘러가는 무성 영화 속 장면처럼. 한 발자국 물러난 자리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덜 공격적이고, 나는 덜 방어적이다.


어느 정류장에서 멈춘 창 밖에서, 조그만 아이 하나가 버스를 향해 환하게 인사를 건넨다.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어른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풀어진다. 서툰 미소가 번지고, 눈가가 부드러워진다. 소리가 차단된 유리창 너머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진다. 이어폰을 끼지 않았다면 나는 그 웃음보다 엔진 소리나 누군가의 한숨을 먼저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고요한 방 안에만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이어폰을 꽂은 채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간다. 나에게 필요한 건 완전한 고립이 아닌, 스스로 조절 가능한 연결이다.


그런 나에게 노이즈 캔슬링은 투명한 우주복이다. 소란스러운 세상이라는 우주 속에서 내면의 산소를 잃지 않도록 돕는 든든한 장비랄까.


나는

세상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끝내 세상과 함께 나란히 걷기 위해

오늘도 버튼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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