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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티 Feb 26. 2022

마빡귀신

  삼성동 선릉으로 소풍을 갔다. 어찌하여 고교 시절 마지막 소풍을 누군가의 무덤으로 가야만 했을까? 지금은 의구심이 들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국어보다는 수학이, 사회보다는 과학이 좋아 이과를 선택한 우리는 역사 상식에 취약했다. 선릉이 누구의 능인지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곳이 조선 제9대 왕, 성종의 무덤이라는 것은 최근에야 알았다.

 그때 찍은 스냅 사진을 보니 우리는 성종의 무덤 앞에서 춤을 추었던 것 같다. 왕릉에서 춤이라니! 춤을 춘 기억은 없으나 사진 속 내가 춤을 추는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춤을 추었다고 할 수밖에. 이 상황은 학원 공포물의 전형적인 시작 장면과 비슷하지 않은가? ‘조선의 왕과 왕비가 잠든 곳에서 철없는 여고생들이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밝게 웃고 있다. 그 순간 어디선가 긴장감을 높이는 음악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가 서서히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갑자기!’ Y 여고 3학년 2반, 우리의 귀신 이야기도 이런 복선을 깔고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소풍은 평범했다. 여고생들의 소풍은 동네 아줌마들의 야유회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떠들고 먹고 노래를 좀 흥얼거리다 흥이 오르면 몸도 조금 흔들어 주는 정도의 야유회. 다른 점은 졸업앨범 때문에 전문 사진사가 와서 그룹 사진과 단체 사진을 찍었다는 것 정도였다. 

 소풍을 다녀온 며칠 후 담임 선생님이 현상된 단체 사진을 교실 게시판에 부착했다. 우리는 우르르 사진 앞으로 달려가 사진 속 자신의 얼굴부터 열심히 찾았다. 얼굴이 통통하게 나왔다고, 눈을 감았다고, 투덜거리며 사진을 훑어보다가 ‘그 이마’를 발견했다. 앞사람에 의해 얼굴이 가려진 누군가의 이마. 이마의 주인은 일부러 얼굴을 가리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마엔 십 대라고 보기 힘든 옅은 주름이 보였고, 미간엔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와. 얼굴이 안 보여. 이거 누구냐?” 


 이마의 주인이 궁금한 우리는 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사진 속 ‘그 이마’ 주변에 서 있던 친구들 누구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출석부까지 동원해 1번부터 끝번까지 얼굴을 대조해봤지만 소용없었다. 반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구 이마인지 알 수 없다, 라는 말은 잠시 후, 귀신의 이마다, 라고 바뀌어 교실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귀신이다, 라는 말은 이과반 전체로 퍼져 다른 반 친구들까지 사진 앞으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그 이마를 ‘마빡 귀신’이라고 불렀다. 표정을 숨기고 기괴하게 이마만 들어낸 마빡 귀신. 귀신의 등장은 우리를 오싹하게 했다. 귀신이 여전히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화장실도 못 갔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묘한 흥분감에 들떠있었다.   

 알다시피 여고에서 귀신의 출몰은 흔한 일이다. 다양한 귀신 이야기가 떠돈다. 다리 없는 총각 귀신, 거울 귀신, 벽화 귀신 등. 그런 Y 여고 귀신 리스트에 마빡 귀신이라는 새 귀신 이름을 우리가 올린 것이다. 전설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 며칠 동안 우리는 마빡 귀신 이야기로 들떠있었다. 그제야 사진 속 배경이 왕릉임을 알게 된 친구는 마빡 귀신은 억울하게 죽은 궁녀일 거라 했고, 또 다른 친구는 몇 년 전 자살한 선배의 유령이 소풍에 쫓아 온 것이라 했다. 하지만 그 소란은 며칠이 지나면서 슬그머니 잠잠해졌다. 

 우리는 늘 작은 소문의 씨앗도 놓치지 않고 부풀려 떠들어대다가도 언제 그랬나 싶게 시들해지곤 했다. 마빡 귀신 스캔들도 그렇게 관심 밖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그 후로도 몇 가지 소문들이 왁자지껄 우리에게 왔다가 조용히 사그라졌고 몇 달 후 우리는 졸업을 했다.      


 먼지 쌓인 앨범에서 그 단체 사진을 꺼내 본다. 반 친구들 대부분 눈을 찡그리고 있다. 햇빛이 강했나 보다.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아있고 마빡 귀신은 세 번째 줄에 서 있다. 

 나는 이 사진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 속 풍경이 너무 환하다. 사진은 빛으로 가득한데 사진을 바라보는 내 가슴 속에선 어둠이 차갑게 냉기를 뿜어낸다. 기억의 어두운 주름 속에 숨겨놓은 슬픔이 밀려 나온다. 세월이 삼켜버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얼굴들이 사진 속에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동안 친구 대부분은 적당히 행복하고 적당히 불행한,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누군가는 끔찍한 범죄로 인생을 뒤흔드는 상실의 아픔을 겪었고, 누군가는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또는 마음의 고통 속에서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사진 속 그 친구들은 우리와 함께 청춘의 입구에서 가슴 설레는 소녀의 모습으로 멈춰있다. 예고 없이 나타나 거침없이 삶을 뒤흔드는 불행의 홀씨들이 소녀들을 품은 빛 사이에서 나풀거리고 있는 것 같다. 가을빛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뻔뻔하게 친구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사진을 통해 지금 이곳 현실의 내가 그때 기억 속으로 들어간다. 기억의 뿌연 안개 속을 걷다 보면 1990년 가을 선릉이 나타난다. 왕릉 앞 넓은 평지에 3학년 2반 아이들이 모여 있다.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다들 졸업 앨범에 들어갈 그룹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사진사가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겠다며 아이들을 부른다. 사진사 근처에 있던 열아홉 나는 친구들과 앞자리에 앉고 학교에서 최고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담임 선생님도 앞줄에 앉는다. 멀리 가 있던 아이들이 뛰어온다. 얼추 사진 대형으로 줄을 맞춘다. 마흔넷의 나는 아이들과 섞여 얼떨결에 세 번째 줄에 서 있다. 사진사가 이제 찍는다고 소리친다. 

 3학년 2반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한 명도 빠짐없이. 거기엔 고통, 범죄, 죽음 같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을 햇살만 가득하다. 쏟아지는 빛에 눈이 부시다. 열아홉인 아이들은 눈을 찡그린다. 마흔넷인 나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다. 고개를 숙인다. 그들에게 내 얼굴이 보이지 않게. 내 슬픔이 보이지 않게. 

 하나, 둘, 셋!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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