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티 Jul 30. 2019

명왕성 퇴출에 관한 애정학적 고찰

수필

1930년, 명왕성(冥王星, Pluto,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의 신)이 발견되었다. 해왕성 밖의 새로운 '행성 X'를 찾기 위해 천문학자들이 경쟁적으로 하늘을 관찰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명왕성은 곧 ‘행성계 왕따’가 되고, ‘천문학계 골칫거리’가 되고 만다.


  명왕성이 아홉 번째 행성이 되자 다른 행성들은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명왕성을 바라봤다. 크기가 달보다 작은 명왕성은 해왕성 옆에서, 거대한 수박에서 떨어져 나온 수박씨 같았다. 거기다 천왕성, 해왕성과 달리 표면이 단단한 고체인 것도 튀어 보였다.

 가장 못마땅한 것은 공전 궤도였다. 행성들은 태양을 중심으로 원에 가까운 타원 궤도를 도는데, 그 궤도면이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명왕성은 보란 듯이 삐딱하게 공전한다. 다른 행성 궤도보다 약 17° 정도 기울어진, 그것도 길고 가느다란 타원형으로…. 행성들은 명왕성을 바라볼 때 17° 기울어진 방향으로 올려보거나 아니면 내려다봐야 한다. 그러니 명왕성을 바라보는 행성 형님들의 시선은 당연히 삐딱할 수밖에….

 심지어 명왕성은 1977년 1월부터 1999년 2월까지 해왕성의 안쪽으로 공전하는 버르장머리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명왕성의 긴 공전 주기와 길쭉한 타원 궤도가 원인이었다. 혜성이나 소행성과 같이 계급이 천박한 것들이나 찌그러진 긴 궤도를 도는 법,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해, 명’의 순서는 곧 태양계의 순리인 것을…. 명왕성은 찌그러진 긴 궤도를 돌며 해왕성의 뒤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순리에 어긋난 요망한 짓을 하고 만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때  해왕성은 속으로 몹시 분개하며 명왕성을 삐딱하게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옥빛 몸을 부르르 떨었으리라.

 명왕성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속속 밝혀질수록 천문학자들은 당황했다. 1978년 위성으로는 너무나 큰, 명왕성의 위성 카론(Charon,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으로 가는 강의 뱃사공)이 발견되고, 그 후 명왕성과 비슷한 천체들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상황은 점점 꼬여갔다.

 2004년에 발견된 에리스(Eris, 그리스 신화에서 분쟁의 신, 처음엔 제나라고 불림)는 여러 가지로 명왕성과 닮은 천체다. 에리스를 발견한 천문학자는 에리스를 열 번째의 행성으로 인정해 줄 것을 국제천문연맹(International Astronomical Union, IAU)에 요구했다. 그는 아마도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명왕성은 되면서, 에리스는 왜 안 되는 건데?”

 이 한 마디에 명왕성은 사면초가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 후 명왕성과 비슷한 천체가 또 발견되면서, 2006년 국제천문연맹은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은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박탈했다. 국제천문연맹은 명왕성의 새 이름을 ‘왜행성(矮行星, dwarf planet) 134043’이라 발표했다.

 행성들은 이 결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해왕성은 자신이 행성의 막내이고 더는 새로운 행성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해왕성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위기는 여러 번 찾아왔다. 명왕성의 다섯 번째 위성이 발견되었을 때, 뉴허라이즌스 호가 명왕성 주변을 탐사했을 때, 명왕성을 행성으로 복귀하자는 여론이 일었다. 해왕성은 깜짝 놀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국제천문연맹을 굳건히 믿고 있다. 번복의 번복은 ‘수치(羞恥)’가 될 것이므로 국제천문연맹은 그들의 결정을 지킬 것이라고.

 사람들은 명왕성을 비운의 왕자라도 되는 양 동정하기 시작했다. 과학교사였던 나도 행성 수업 중 교과서에서 사라진 명왕성을 떠올리며 애잔한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행성 모형에서 명왕성이 빠지고 행성 관련 과학책에서도 명왕성은 삭제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명왕성의 존재를 꾸준히 지워갈수록 명왕성의 빈자리는 더욱 선명해졌고 사람들은 점점 상실감에 젖어들었다.

 시인들은 명왕성에 대한 시를 썼고, 영화감독은 명왕성이란 제목으로 영화를 연출했다. 2006년 미국 방언협회(상당히 전통 있는 유명 단체임)는 그해의 신조어로 ‘명왕성 되다(plutoed)’를 선정했다. ‘그 짜식, 명왕성 됐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 짜식’의 잘나가던 명성이 한순간 추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명왕성이란 단어는 명왕성의 이름이 사라진 후 유행어처럼 더 자주 불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동안 명왕성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국제천문연맹은 명왕성의 행성 퇴출 이유가 ‘궤도 장악력’이 없기 때문이라 발표했다. 명왕성은 자신의 궤도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지 못해 궤도가 일그러진다. 그 원인 중 가장 큰 하나가 바로 위성 카론이다. 명왕성의 공전 궤도를 흔들 정도로 카론은 막강하다. 그래서 명왕성과 카론의 무게 중심은 둘 사이의 우주 공간에 있다. 여기서 무게 중심은 회전축이다. 지구와 달의 무게 중심이 지구에 있기에 달은 지구 중심으로 돈다. 하지만 명왕성과 카론의 무게 중심은 둘 사이에 있기에 서로 마주 보며, 서로를 돌고 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빙글빙글 돌듯이.

 2015년 7월 뉴허라이즌스 호가 최초로 명왕성에 접근했다. 뉴허라이즌스 호에서 보내온 사진 속 명왕성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커다란 하트 모양의 지형이었다. 명왕성은 카론을 향한 애정을 과시하듯 큰 하트를 표면에 새기고 있었다. 구애의 하트가 그려진 명왕성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아주 오래전부터 오직 카론만을 바라보며, 카론의 손을 꼭 부여잡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자신의 공전 궤도가 일그러지든 말든, 해왕성이 노려보든 말든, 뉴허라이즌스 호가 접근해 슬쩍 간을 보고 가든 말든 무신경한 채로.   


 명왕성을 둘러싼 일들에 대해 정작 명왕성은 냉담했을 것이다. 지구인들이 명왕성을 발견하면서 환호하고, 명왕성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며, 명왕성을 행성 자리에서 쫓아낸 후 아쉬워하는 그 모든 순간에도 주인공 명왕성은 무심(無心), 즉 마음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명왕성의 마음은 오직 카론을 위해서만 존재하므로.


명왕성이 사라진다고 해도
명왕성의 궤도가 혼자 남지 않게.
명왕성의 이름이 없어져도
명왕성이 쓸쓸하지 않게.
- 신해욱의 시, <정각> 중에서 -

 명왕성이라고 불리는 왜행성 134043은 쓸쓸함을 모른다. 쓸쓸함은 명왕성의 이름을 지운 우리에게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낮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