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였나, 당시 방송반 부장으로 있던 내게 친한 후배가 와서 말했다. 2학년에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 이야기했다고. 처음으로 든 생각은 뭐 어쩌라는 거지. 였지만 당시에는 그럴만한 베짱이 없어 같이 오버하며 좋아했고, 그 이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 진짜로 이게 세상이 말하는 통상적인 이야기의 진행 방식이다. 그런데 세상 참 무서운 게 살아보니 이런 전형적인 이야기 진행으로 가는 게 없더라.
1. 웃는 게 이쁘다.
강남역 테헤란로 8길에는 봄꽃이 줄지어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건넨다. 미세먼지가 없어져 화창해진 날씨는 내가 누리지 못했던 평화를 대리 만족시켜준다. 이렇게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리 만족시켜주는 존재가 있다면 아마 당신일 거다. 굳이 테헤란로가 아니라도 당신과 꽃을 보러 가고 싶다. 봄꽃은 내년에도 또 피니까 지금이 아니라도 좋다.
2. 조용히 이야기한다.
가끔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나 싶어 나도 모르게 당신의 얼굴을 계속 바라본다. 숨소리가 들릴 정도는 아니지만, 가까워진 거리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편하게 이야기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이렇게까지 하고 싶다. 쓰다 보니 글이 좀 이상해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냥 그런가 하고 넘어가 줬으면 좋겠다.
3. 궁금하다.
이 정도면 당신에 대해 충분히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당신이 어디에서 뭘 하는 사람인지.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주말에는 또 뭘 하는지, 일이 끝나면 집에서 정말 유튜브만 보는지 궁금하다. 아 그리고 정말 내 글을 좋아하는지도.
4.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쓰고 싶은 사람이라 듣고 싶은 이야기는 더 많다. 내가 당신을 문장으로 기억해야 한다면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기억하겠다. 당신에게 한 문장을 주어야 한다면, ‘당신은 내가 읽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다’라는 문장을 주고 싶다. 사실 이거 말고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꽃이 있다 / 강남역에는 꽃이 있다 / 꽃이 이쁘다 이렇게 아무 말이나 당신에게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 확신한다 / 상상한다 영화에 나올 법한 대사라 소름 끼치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 영화 속에 조연보다는 주연이 되고 싶다.
세상이 말하는 그 전형적인 이야기를 깨준 당신과 결국 나를 다시 이곳으로 끌어들인 당신에게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