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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란 Feb 04. 2022

내가 사랑한 모든 당신들에게

뼈가 부러져도 좋으니까 미친 것처럼 나 좀 안아줄래

1.

언젠가 너는 왜 이렇게 취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왜 그럴까 싶을 정도로 취한 적이 없었고, 취하지도 않았고,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너에게 취했나 싶으면서 여러 말들을 건네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다고 표현하기도, 그냥 안고 싶다고 말을 하기도 애매했다.

너와 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


1-1.

슬픈 이야기지만,

내 인생에서의 너의 역할은 거기까지니까.

라는 말은 너무 차갑기에

너와 나는 아직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로 대답했다.

혹시 모르지 우리 사이가 어떻게 될지는.

난 가끔 널 사랑하고 싶거든.

네가 내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으면 해.


그리고 조금만 더 솔직해지면 사실.


2.

처음에는 내 글이 좋다며 나에게 다가왔고, 무릇 사람들의 말처럼 내게 착각을 심어줬고 나는 그 착각을 피어냈다.

그전에 나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했다.

내가 너와 자고 싶은 건지, 너를 사랑하고 싶은 건지에 대한 해답.


내 머릿속에 나는 너와 맥주를 마시던 그 순간에 너를 안으라 답 했고, 내 왼손은 나를 막았다.

우리가 아직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말도 좋았지만,

연애서적에 나오던 그 문장처럼 너를 지켜주고 싶다는 말은 네 나이와 맞지 않기에 쓰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아직 너를 안을 용기가 없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우리의 마지막 날, 영화처럼 달빛을 조명삼아 살며시 너에게 팔짱을 껴봤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너의 집까지 걸어갔고,

나는 네 얼굴을 보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며 입 맞추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채로 팔짱을 풀었다.


자다가도 가끔 생각난다.

아니 사실 눈을 감으면 생각나서 눈을 감기 무섭기도 하다.


2-1.

그때 내가 너에게 고백했다면,

내가 치는 피아노 선율 속에 네가 들어있지 않았을까?


2-2.

한 달이 지난 후,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사이가 되었고, 네 옆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있다.


3.

어이가 없을 만큼 너는 또 나에게 왜 술에 취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

우리는 한순간의 만남이었기에 너에게 잘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아니

모든 언어의 포장을 집어치우고, 단지 너와 술을 마신 것은 사회통념상 인정받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지. 너와 그날 밤 같은 숨을 들이켜고 싶어서가 아니다.


3-1.

어이가 없을 만큼 너는 나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나는 대답으로 너를 때렸다(줘팼다).


4.

아직도 양재역에 가면 네 소리가 들린다.

마치 나에 대해 모든 걸 안다는 듯이, 네 목소리가 나를 안아줬고 나는 황홀함에 취해 나도 모르게 네 입술을 껴안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우리는 커피 한잔과 하나의 단어를 주고받았고, 같은 시간을 건너왔음을 안 우리는 서로의 목소리와 하나의 공간을 서로 주고받았다.


우리는 좁은 곳에서 긴 도로를 여행하며 서로의 속마음을 터놓기도 했고, 나는 순수한 네 모습을 좋아하기도, 가끔은 어이가 없는 너의 고집을 좋아하기도, 나를 불러주는 네 목소리를 좋아하기도 했다.


4-1.

바닷바람을 손으로 더 잡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산으로 들어갔고 너는 도시로 나갔다.


엇갈린 운명이라 치부하며 다시 맞아떨어지기를 기다린 적도 있고, 금보다 비싼 내 시간을 너에게 줘가며 잡지도 못할 손을 보러 간 적도 있다.


4-2.

내가 지금 보도 듣고 느끼는 이 모든 걸 너와 나누고 싶었고,

네가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네 몫까지 내가 널 사랑하고 싶었고,


4-3.

너를 볼 때 네 눈에 비치는 나를 보면

너무 초라해지는 내가 보여


너를 생각하면

나는 약해지는 동시에

강해지는 느낌이 들어


이기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너를 좋아하나봐


4-4.

나는 바람 따라 파주가서 산이 되었고,

너는 물길 따라 태안에서 바다가 되었고,


4-5.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는 아름다운 연주곡이 되었다.


5.

난 가끔 네 손등에 그림을 그리고는 했다.

볼펜을 뒤집어 뭉툭한 부분으로 네 손등의 핏줄을 따라갔다.

그럼 너는 아무 말 없이, 그런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네 가장 친하다는 동기의 말처럼 내가 먼저 이야기해주기를 바란 걸까?

그걸 놓쳐버려서 너에게 볼펜을 사준 그 사람에게 간 걸까?


5-1.

돌이켜 보면 사랑보다는 애정이다.

가끔은 네 볼을 잡고 귀엽다 쓰다듬어 주고 싶지만,

너를 안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 옆에 있었으면 했다.


5-2.

아마 내가 너에게, 너와 같은 사람들에게 했던 가장 못된 생각이고 행동이었다.


6.

축하한다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하던 너는 생각보다 유명했다.

으레 남자들이 그렇듯 냄새나는 이 공간에서 너라는 향기는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까

너는 가끔 그걸 즐기면서도, 기분 나쁜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 말로 표현을 하기도 했다.


사실 그때도 너에게 이야기했지만, 너는 아름답다 라는 말보다 멋있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우리는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반말을 하며 서로 가까워졌고, 나는 가끔은 너의 발이 되어주었고, 너는 내 손이 되어주었다.


6-1.

지금 생각해보니 완전 미친년놈들이었네


6-2.

우리는 다른 사람을 축복해주러 가기도 했고, 서로의 품으로 돌아가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 정도의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를 안지 못한 게 신기하다.


아니면 우리가 서로 얼굴만 보던 그때, 내가 먼저 널 안았어야 했나?


6-3.

너는 그 엿 같은 지옥 속에서도 나에게만은 웃음을 보여줬고, 나는 그 웃음에 답하고 싶어서 너와 함께 지옥에 남아 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6-4.

우리는 안녕이란 말보다는 소리 없이 손을 잡았고,

이제 1년에 한 번 안부문자를 보내는 사이.

네 말대로라면 가끔 자유로를 달리며 한강과 임진강을 볼 때 그런 시절이 있었지 하고 추억을 좀 먹는 사이가 되었다.


7.

술 한잔하러 나간 친구를 데리러 간 날에 너를 만났다.

너는 내게 친한 척 말을 건넸고, 2016년의 나는 그런 너를 싫어했다.

옆자리에 앉은 너는 내게 계속 다가오며 몸이 맞닿았고 불편함을 느끼고 구석으로 들어간 내 어깨를 두드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어디서 이런 애를 데리고 왔냐며 큰 소리로 웃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이렇게 순수한 애가 아직도 있냐며 어린 아이 다루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낯선 사람의 손길에 설레기는 개뿔이고,

내 몸에 함부로 손대는 사람이라 더 싫어졌다.


아마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아 우리는 다시 마주쳤다.

또 술 한잔하러 나간 친구를 데리러 간 날이었다.

너는 술이 취하지 않으면 정말 도도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조금 멍청했다.

어떻게 이런 말도 모르지 하며 내심 나는 내 상식의 기준선이 어디인가 헷갈렸다.


그때가 슈퍼문이 뜬다는 날이었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와 임진각을 간다는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그럼 나하고 영화를 보러 가자는 이야기로 덮어 씌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흔쾌히 응해준 너와 서울에서 영화도 보고, 눈물도 흘리고, 술도 먹었다.

어릴 때 귀신을 보게 돼서 기도하는 개신교를 싫어한다는 이야기와 왜 그렇게 남자가 건전하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술을 좋아해서 자주 먹지만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했고,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손을 잡았다.


7-1.

당시 술집, 마셨던 술, 주변에 있던 사람들, 음악.

다 기억나지 않지만.

구라고 미치도록 소름끼치고 이기적인 기억력 덕분에 모두 다 기억나지만

그래도 가슴에 박혀버린 기억은.


나는 어쩌면 너로 인해서 내가 변하기를 기대했다.

내가 원하는 남자는 아니지만 네가 원하는 남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7-2.

몇 번의 만남이 더해졌고 몇 번의 손이 오갔지만 서로 안지는 못했다.


7-3.

아니 안했다.

가끔 손잡고 미래를 꿈꾸던 나는 너무 먼 미래를 넘보았고,

매일 밤, 술을 먹으면 전화해서 나에게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속삭여주는 너를 보고,

나는 질린 것 같다고 표현했고, 산 속 바닥으로 기어들어갔다.


7-4.

지금 생각해보니 먼저 안아주려던 너를 거부한 내가.

너에게 큰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7-5.

우리의 세 번째 만남이었던 슈퍼문이 있던 날.

나는 달은 못 봤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너를 보았다.


너는 몇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다는 달을 보지 못해 아쉬워했지만,

나는 그렇게 내 생에 한번 올까 말까 했던 당신을 떠나보냈다.


8.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다.

잠에서 깨고 일어나니 병사가 와서 소개팅을 하라고 이야기했다.

별로 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스쳐 지나갔던 사람이라 명확하게 기억나지는

구라고, 다 기억나는데 세세하게 적기 귀찮다.


결론은 나는 난생 처음 금강이 있던, 맞나?

공주로 내려갔고 너와 만나 잠시 걷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대학교도 구경하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뭐 할 거 다했던 것 같다.


첫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올라오던 버스 안에서 너에게 끝을 고했지만.


8-1.

분위기 있어 보이려고 일산으로 가서 혼자 술을 먹었던 것도, 혼자 영화를 봤던 것도 기억난다.


8-2.

너는 기억나지 않지만.

너의 말대로 멀리서가 아닌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기를.


9.

군대에 가기 전 잠깐 일했던 공장에서 너를 만났다.

웃기게도 네가 먼저 아는 척을 했고, 먼저 번호를 물어봤다.

그리고 너는 나의 처음이 되었다.


따로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 당시에는 그러려니 했고,

지금도 그러려니 했다.


9-1.

군대 가기 한 달 전이었는데 뭘 못했겠냐.


10.

날짜까지 적어버리면 소름끼칠 사람들이 있을테니 적당하게 고등학교 1학년 3월 중순으로 치장해도 괜찮을 것 같다.

창가에 기대서 핸드크림을 바르던 너는 햇빛과 어울리는 사람, 미소가 어울리는 사람, 빛이 나는 사람. 나의 빛.

웃으며 다가와서 ‘너 기타 친다며? 손 관리 잘해야해’ 라고 말하며 핸드크림을 손등 위에 올려주었다.


8년간 너를 사랑하면서 나는 평생 연애를 못할 것 같았는데 간간이 하기도 했고,

다른 사람의 손도 잡아봤지만 너를 잊지는 못했다.

지금도 너를 지우기 위한 글임을 알고 있지만,

내 심장에 굳은 살처럼 박혀버려서 그냥 통째로 빼내는 수밖에 없나.


가끔은 집에 데려다 주기도 했다.

가끔은 이야기도 했다.

가끔은 손도 잡을 뻔했다.

가끔. 가끔. 가끔.

가끔 나는 사랑에 빠졌고,

가끔 네가 날 사랑하지 않을까 착각에도 빠져봤다.


가끔 너와 영원할 상상도 했다.


네가 같이 공부해서 하루에 4시간 자며 공부도 해봤고,

너가 듣고 싶다는 노래도 굳은살 터지도록 연습도 했었다.

네가 다른 사람과 사귀게 되었을 때 제발 행복하게 해달라고 신의 멱살을 잡고 울기도 했다.


너는 나를 바꾼 모든 것.

너는 나를 바꾼 그저.


10-1.

너를 이곳에 적을까, 나 혼자 간직하고 싶은 기억이기도 한데,

세상 사람들에게 네가 얼마나 빛나고 사랑스러운 사람인지 가르쳐주고 싶다.


10-2.

너는 내 안에 지지않는 낙화다.

나의 첫 글, 첫 시, 첫 꽃, 첫 사랑, 나의 처음인 당신.


10-3.

이 글을 끝으로 너를 잠시 심장 깊숙한 곳으로 묻으려 한다.

그 누구도 꺼내볼 수 없게,

언젠가 내가 사랑에 치이고 세상에 치여서 혼자 있더라도, 널 꺼내볼 수 없게.

이제는 다른 사람과의 사랑을 바라고, 너도 바랬으면 한다.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 아무도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널 다시 꺼내봤을 때.


너를 품에 안고 산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너처럼 빛나는 사람이.


누구의 인생이건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는데, 너는 내게 머물다 갔다.


1-2.

“오빠는 왜 이렇게 안 취해요?”

라는 너의 물음에 답을 하면,


나는 술에 취하지 않고 너에게 취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네가 이미 번진 마스카라가 부끄럽다며 화장실을 2번 정도 갔었을 때,

그때 이미 난 취했다.


그 작은 방 안에서 둘이 같이 밤바다에 별과 달의 수를 세볼 때, 난 우울한 가시감을 떨쳐내고 정말 신이 된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다시 취했다.


언젠가 네가 읽던 책의 주인공이 나인가 하고 착각이 들었을 때 다시 취할 뻔하다가

네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페이지를 넘기고 그 사람을 읽는 걸 보고 정말로 취했다.


내가 왜 이렇게 안 취하냐는 물음과 함께 새근새근 조는 너를 보며.

술 한잔 못 마시게 하고 싶은 내 마음과 달리 너와 평생을 함께 마시고 싶은 나를 보며.

결국 이렇게 술친구라도 되고 싶어, 늦은 시간 짧아진 달과 길어진 태양을 등지고 한잔 기울인 우리를 보며.


난 또 너한테 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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