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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ug 31. 2015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년

그리고 그 아이의 계란과자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종종 ‘알 수도 있는 친구’가 뜬다. 여섯 다리만 건너면 다 알게 된다는 소셜 네트워크다 보니, 구 남친은 물론이고, 구 남친의 현 여자친구까지 ‘알 수도 있는 친구’에 뜨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년이 떴다. 



아홉 살, 나는 누군가를 보고 콩닥콩닥 심장이 뛰는 경험을 처음 했더랬다. 2학년 1반으로 처음 등교했던 날, 선생님이 정해준 순서에 따라 그 소년과 나는 짝꿍이 되었다. 또래 아이들과 달리 까무잡잡한 피부, 쌍꺼풀은 없지만 또렷한 눈매, 하얀 바지에 털코트! 콩닥콩닥 심장이 뛰기엔 충분했다. 게다가 소위 바보 보조개까지 갖춘 이 귀요미는 내게 “과자 먹을래?” 하며 먼저 계란과자를 한 주먹 쥐어주는 게 아닌가! 단언컨대, 그때 나는 이 소년이 나의 풋사랑이 될 것을 확신했다. 두고두고 떠올리며 피식-하곤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풋사랑. 그리고 내 확신은 현실에서 드러났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장난기가 많지 않아 ‘매너남’으로 꼽혔던 그 아이는 1학기 남자 반장으로 뽑혔다. 두루두루 반 아이들과 빠른 친화력을 자랑했던 나는 1학기 여자 반장으로 뽑혔고, 우린 한 학기 동안 선생님 심부름이며, 학급회의, 각종 소풍 등 행사에 앞장서 열심이었다. 짝꿍이라 수업시간에도 언제나 함께였고, 이런저런 활동까지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아이들보다 친해졌다. (나도 그땐 나름 백옥 같은 피부에, 눈웃음이 넘쳐 났던 귀요미였다. 흠흠.)

요즘 아이들 말로 특별한 ‘남자친구, 여자친구’라 규정짓지 않았지만 그 어린 나이에도 서로를 챙겨주었더랬다. 예를 들면, 밥은 먹었니? 라든가, 교환 일기라든가. 그리고, 생일 같은 것. 

2학기 가을, 내 생일날. 엄마는 반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생일파티를 해주셨다.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홈 생일파티는 상당히 거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만드느라 엄마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김밥을 싸고, 치킨을 튀기고, 닭강정을 만들고, 탕수육도 만들었다. 제일 먼저 그 소년을 초대했다. 하지만 그 소년은 그날 아동복 모델 촬영을 가야 해서 생일파티에 오지 못한다고 했다.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무척 서운했다. 그런데, 생일파티 한 시간  전쯤 집으로 전화가 한 통 왔다. 그 소년이었다! 잠깐 1층으로 내려오라던 그 소년은 내게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건네곤 엉성한 자세였지만 꼬옥 포옹해주었다. 그리곤, “생일 축하해, 같이 파티하고 싶은데 못 가서 미안! 빨리 사진 찍고 올게!”라는 (지금 생각하면 무척) 손발이 오글거리는 멘트까지 잊지 않았다. 그 아이가 건넨 선물은 자신과 똑같은 필통과 그 안 가득 연필 한 다스. 그리고  그중 한 자루에는 문방구에서 파는 꽃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아홉 살의 그 생일은 그렇게 기억되고 있었다. 거한 상차림을 해준 엄마에게 미안하지만, 내겐 그런 풋사랑의 흔적으로 더욱 짠하게 가슴 한 편에 기록돼 있다. 2학년 겨울, 나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가게 되었고, 그 소년과 헤어지기 싫었던 나는 이사를 가고 한동안 꽤 오래, 엄마에게 툴툴거렸던 기억이 난다.




클릭과 동시에 뜨는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 조금 더 남자다운 그 소년이 거기에 있었다. 찬찬히 그의 타임라인을 훑어보았다.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그 소년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스크롤해 내려가던 순간 발견한 사진첩, 뚜둥.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선물을 건네던 그 소년은 어디 가고 해맑은 눈동자를 가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뭐, 이 정도쯤 되는 나이에 흔한 일이라 무척 놀랐다기 보단, 마냥 그 친구가 풋풋한 소년이길 바랐던 나의 욕심이 조금 서운해 한 정도? 이제는 계란과자를 그 아기와 먹겠구나 싶어서. 

첫사랑 그 남자는 그렇게 그립지 않은데, 풋사랑 그 소년은 못내 그립고 아쉽다. 아마도 설익었기에 더욱 살아 있었던 그 감정들이 조금씩 익어가고 있기 때문이겠지. 농익은 감정들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다시 풋풋해질 수 없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리라. 

오랜만에 나는 그 시절의 소년을 떠올리며, 계란과자를 만들었다. 그 아이가 계란과자를 유독 좋아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재료들로 만들어 내는 계란 과자에 유난스러운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우유에 찍어 먹으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이 재밌다는 이유였다. 차가운 우유 한 잔에, 계란 과자를 찍어 먹고 있자니 조금은 어려진 기분이 든다. 적어도 오늘, 마음만큼은 한껏 풋풋해졌다.





[그 시절 그 소년이 좋아했던 계란과자]


재료_
박력분 50g, 옥수수 전분 5g, 버터 50g, 슈가파우더 50g, 소금 한 꼬집, 전란 1개, 노른자 1개, (계란은 보통 크기), 바닐라 시럽 1~2g

만들기_
1. 부드러운 버터에 슈가파우더, 소금을 넣고 섞어준다. 크림처럼 부드럽게 만든다.
2. 전란과 노른자를 3번 정도로 나눠 넣으며 휘핑한다.
3. 미리 체 쳐 둔 가루를 넣고 자르듯이 섞어준다.
4. 짤주머니에 넣고 동그랗게 2cm 정도 크기로 짠다. 
5. 160도 오븐에 넣고 10분 정도 구워준다. 약간 노릇해지면 완성. 
6. 차가운 우유에 콕 찍어 함께 먹을 것. 다른 음료는 절대 안된다. 무조건 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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