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 고양이_깨방정
내가? 내가 뭐? 하는 표정의 이 녀석은 깨방정.
본래 고양이들이 일 방해하는 데 타고난 재능을 발휘한다는 것쯤은 애묘가라면 다 안다.
나도 세 마리와 함께 사는 터라 일 방해는 자주 겪는 일인데도 그중 깨방정의 일 방해는 최강이다.
일 중에서도 책상에서 하는 일을 유독, 하지 못하게 한다.
평소 잘 안기지 않는 고양이의 성향을 이용해 폴짝 안기고는 "아이코 예뻐라~"하는 사이 스르륵 안겨 잠들어 버린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하거나, 아주 매력적인 수컷 남성처럼은 안 되겠지만, 상당히 귀여운 표정으로 "애앵"하면서 놀자고 유혹한다.
저러면 돌아나가다가도 나처럼 의지력이 매우 약한 사람은 풀썩 침대에 다시 주저 앉고 만다.
(매우 약한 나의 의지력 탓에 일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문득.)
혹은 의자에 앉을 수 없게 나보다 먼저 책상으로 달려가 의자에 폴짝 올라가기도 한다.
무릎에서 가만히 앉아 뭘 하는 지 쳐다보는 정도는, 그래, 조금 내 무릎이 불편하고 일하기 힘들어도 견딜 만하다. 무릎냥이가 먹히지 않음을 알았을 땐, 서서히 그 자리에서 기지개를 켜듯 온 몸을 뻗어 팔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러다가 인간에게 무릎 조차 허용을 거부당하면 슬그머니, 팔에 매달린다. 이 녀석은 단 1분이라도 레이저나 낚시로 놀아주지 않는 이상, 포기하지 않고 발톱을 옷에 걸면서까지 매달린다. 결국 1분쯤 혼을 빼도록 놀아준 뒤, 다시 일을 한다.
굉장히 적극적으로 안겨 잠든다.
마치 애기가 안긴 것 같은 폭신함에 나도 모르게 안고 궁딩이를 토닥토닥 두드려주게 된다.
그렇게 내 팔은 노트북에서 멀어지고 만다.
사람을 공략하다 되지 않으면, 수단을 이용한다.
노트북으로 일할 땐 노트북 위에, 데스크톱으로 일을 하면 키보드나 마우스를.
자판 위에 앉으면 원고는 내 맘대로가 아니라, 깨방정 맘대로 쓰여진다.
내려놓으면 다시 올라가고, 내려놓으면 또 올라간다. 그리고 사진처럼 소리지르기도 한다. "애애애애애애애앵!" 하는 거지. 길고-가늘게 울어제낀다.
또는 키보드를 베고 잠들어서 엔터나 숫자키 등을 사용하는 데 불편하게 한다거나,
무척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꼭 사람처럼-_-;;) "애애앵..."하고 힘 빠지는 울음을 들려주기도 한다.
당시엔 너무 귀엽고 안쓰럽고 등등의 마음으로 잠시 놀아주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쟈쉭, 굉장히 지능적이잖아?' 하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일을 하다가 발에 뭐가 차이는 느낌이 들거나, 간질간질한 게 느껴지거나 하면 영락없다.
발 밑에, 책상 밑에 와 저렇게 앉아 있다. 잠이 든 줄 알고 있다가 보면 어느새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을 마주하게 된다. 가끔 책상 뒤 소파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기도 하다. 책상 앞 거울에 비친 모습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 아니면 계속 신경 쓰이게 주변을 어슬렁 거리면서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그런다.
고양이가 일의 맥을 끊는 방법은 다양하다.
지능 수준이 나보다 좋은 거 같다 싶을 정도로 쉬지 않고 방해공작을 펼친다.
근데 이거에 딱히 대응할 수 있는 훌륭한 대처법 같은 건 없다. 그저 단 1분이라도 놀아주는 수밖에. 왜냐하면 목표를 달성하지 않은 고양이는 절대 포기하지 않기 때문.
장난감으로 놀아주든, 아니면 한번 쓰담쓰담이라도 해주든, 또 자기 일을 하러 간다. 물론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와서 방해한다. 자기 일을 하러 돌아갈 틈을 주고 그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하는 (힘든) 반복의 과정을 거치거나, 아니면 얘들이 방해할 것까지 생각해서 일의 시간을 좀 더 길게 잡거나. 하하하. 그런 수밖에는 답이 없;;다는 이런 비루한 대처법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