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말이 오가고, 수많은 글자가 화면 위에 수놓아진 뒤엔 늘 마음이 헛헛하다. 있는 힘껏 내 안의 것들을 모두 끌어내 쏟아부은 탓이려니 한다. 뱉어내기는 그리 쉬운 것이 채우기는 어찌도 그리 어려운지. 내뱉는 말의 책임과 활자의 무게가 이 일을 시작하고 유난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알았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데 내가 잊고 살았을 뿐이라는 걸. 그래서 일을 마치고 헛헛한 마음이 들 때면 꼭 커피 한 잔이 간절해진다. 수많은 종류의 커피 중에서도 묵직하고 또 묵직하게 내려앉는 이브릭 커피, 그 한 잔이 간절하다.
이브릭은 커피를 내리는 방법 중 가장 오래된 추출법이다. 이브릭 또는 체즈베라 부르는 구리로 만든 오목한 냄비에 곱게 간 원두를 물과 함께 넣고 마치 한약을 달이듯 천천히 끓여낸 것으로 커피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바디감을 보여준다. 맛 또한 사약같이 진하디진하다. 반복하면서 끓어오르는 동안 계속 추출되는 커피성분들이 커피 본연의 향과 맛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
바로 마셔서도 안 된다. 커피 가루가 가라앉기를 잠시 기다린 후에 마셔야 한다. 조용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탁했던 까만 물은 맑은 빛을 낸다. 그제야 조심스레 들어 한 모금 들이킨다. 그러자 ‘커피는 지옥처럼 검어야 하고, 죽음처럼 강해야 하며, 사랑처럼 달콤해야 한다’는 터키 속담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입안에 살짝 커피가루가 남기는 하지만, 비워낸 속을 다시금 무겁게 채워주는 탓에 자꾸만 찾게 되는 커피다.
게다가 첨가하는 재료에 따라 또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특유의 쓴맛을 가리기 위해 설탕을 넣기도 하고, 우유를 넣기도 한다. 그럼에도 커피가 진하게 우러나는 탓인지 그 본래의 깊이는 잃지 않는다. 아무리 수많은 수식어를 붙여도 단어 본래의 의미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또 한 사람을 만났고, 또 한 편의 인터뷰 원고를 끝냈다. 한 사람을 인터뷰하기까지 채워두었던 수많은 말들을 꾹꾹 눌러 백지 위에 채웠고, 그만큼 마음은 헛헛해졌다. 기분 좋은 헛헛함이지만, 어서 다시 채워야겠다. 헛헛함이 오래가 외로워지지 않게 이브릭 커피 한잔 하러 가야겠다.
- 그냥 덧붙이는 말. 터키에서는 이브릭 커피를 잘 끓이면 좋은 신붓감으로 인정받기도 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참 좋은 신붓감이 아니더라. 쳇.
<이브릭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
사실 이브릭 커피는 집에서도 내려 먹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늘상 해먹던 사람이 아니라면 보이는 것과 같이 쉽기만 한 일은 아니다. 이브릭 커피를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좋은 카페로 갈 것.
#1. 카페 이심 (070-4235-5050)
카페와 책방, 카레집, 멕시코 음식점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골목길, 진한 커피 향을 뿜어내는 곳이 있다. 바로 카페 이심. 에스프레소 머신도 없고, 오로지 손으로만 커피를 끓여 낸다. 투박하지만 조심스럽게 내리는 그 커피는 유난히 다정하고 따뜻하다. 특히 이브릭 커피 한 잔은 갑 오브 더 갑.
#2. 카페 사뿐 (064-711-5110)
요리선생님이었던 사장님이 직접 요리하고, 카페를 내리는 곳. 제주에 생긴 카페다. 특히 추출이 쉽지 않아 하루에 몇 잔 만들지 않는 이브릭 라떼는 찐하게 입안에 달라붙는다. 혀에 남는 텁텁함까지 싹 잡은 이브릭 라떼, 제주에 들를 일이 있다면 꼭 한 번 맛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