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velyhong Dec 20. 2019

[여행육아일기2] 아이와 책방여행 : 오키나와 그림책방

* 오키나와 그림책 책방 *

글쓴 날: 2018년 3월 25일


아이들과 세계 여행을 할 때 꼭 가져가는 것이 있다. 바로 그림책. 아이들과 이동하는 동안이나 자기 전에 책을 함께 읽곤 한다. 큰 아이가 4살 때는 스티커북도 챙기고 그림 그리고 놀 색연필도 챙기곤 했는데, 한 살 한 살 커갈수록 특별히 놀이감을 손에 쥐어주지 않아도 되었다. 둘째는 ‘형’이란 좋은 장난감(?)과 모방 대상이 있어서 다른 것은 필요가 없다. 얘는 사탕이나 초콜릿, 젤리면 되는 데,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다. 아이들과 공항에서 기다릴 때나 비행기 안에서 이,착륙을 기다릴 때 책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공항을 배회하는 아이들을 앉히고 책을 펼치면 아이들은 책 속 이야기에 빨려 들어간다. 


                                          

아이들과 여행 중이라면
그림책 하나 챙기세요                          




지난 2월 홍콩 여행, 밤비행기라 아이들은 늦게 까지 잠에 들지 못하고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자기 전 아이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 것이다. 약간 흥분되어 공항을 누비는 무법자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책을 꺼냈다.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의 ‘Willy's picture'과 루시 코즌스(Lucy Cousins)의 'I'm the best'이었다. 큰 아이는 ’Willy's picture'에서 바나나 찾기에 꽂혔고 둘째는 ‘I'm the best’ 노래를 들으며 따라하느라 바빴다. 형제를 키우면 좋은 경쟁이 되기도 한다. 형이 한 단어씩 읽으려고 시도하자 동생도 흉내 낸다. 개월로 따지면 훤이가 더 빨리 읽지 않을까 싶다. 새벽 2시까지 깨어있는 아들들에게 ‘공항에서 책 읽기’는 ‘자기 전 책 읽기’와 같았다. 그 날은 처음으로 엄마아빠가 아닌 할아버지와 따로 비행기를 타고 오는 날이기도 했다. 엄마와 앉아서 조곤조곤 그림책을 읽으며 상상의 세계에 다녀온 아이들은 쿨하게 인사하며 할아버지 손을 잡고 사라졌다. 와우! 물론 그 다음은 할아버지 몫이었지만. 



오키나와 여행은 그림책을 두고 다녀온 첫 여행이었다. 렌트카를 한 대로 움직이려다 보니 최대한 짐을 줄여야 했다. 평소 두 개의 캐리어로 다니는 걸 하나로 움직이려다 보니 편하게 짐을 쌀 수가 없었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책부터 넣고 보는 엄마인데, 이번 여행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모두 모시고 떠나는 첫 번째 여행이라 아이들과 나도 조부모님들과의 시간에 집중하고 싶었다. 렌트카에 몸을 실고 쫑알쫑알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이야기꽃을 피운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보다 더 중요하다.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며 어른들 이야기에 한 마디씩 거든다. 아이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는 여행메이트가 되었다. 혹시나 하고 챙겨간 동요cd도 틀지 않은 채 3열에 나란히 앉아서 저마다 한마디씩 한다. 차창 밖 에메랄드 빛 바다는 색이 왜 저렇게 다르냐며 과학지식도 총동원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여행 자체에 집중해서 하루를 살다보니 밤에는 세수도 못한 채 수유하다가 먼저 잠들곤 했다. 덕분에 아이들도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쪼로미 누워서 잔다. 자기 전 책읽기의 아쉬움은 ‘기도문’ 읽는 것으로 대신하면서.



오키나와 여행 셋째 날에는 국제거리로 갔다. 이번 여행은 남편이 나에게 여행일정을 짜보라고 했다. 매번 일정을 짜고 부인에게 점검(?) 받느라 머리가 아팠을 그의 짐을 덜어주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들과의 여행이라 신경이 더 쓰이기도 했다. 셋째 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다행히 차가운 바람은 아니어서 국제거리를 둘러보고 아메리칸 빌리지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국제거리는 예전 국제극장이 자리하던 곳이라 이름을 따 붙였다고 한다. 1마일(1.6km) 정도로 우리가 걷기엔 충분한 거리였지만, 날씨와 부모님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돈키호테만 보고 점심을 먹었다. 부모님께서 잠시 쉬시는 사이 한 시간 정도 우리끼리 국제거리를 구경했다. 



일본 여행을 오기 전에 가고 싶은 곳을 구글 맵으로 찾아 '하트‘ 표시를 해두었다. 이전에는 오프라인 맵을 설치해서 다니곤 했는데, 이번에는 와이파이 도시락을 빌려와서 편하게 움직였다. 국제거리 골목으로 들어갔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장소는 2군데. 하나는 MIMURI라는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상점이고 다른 하나는 hoccorie라는 그림책 서점이었다. 아이들과 다닐 때면 원하는 곳을 다 갈 수 없다. 자연스레 우선순위에 따라 목적지가 결정된다. 아이들의 부담을 줄어주기 위해서지만,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부모도 여행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여행지에선 서점에 꼭 들르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일반 대형 서점이 아니라 그림책만을 취급하는 작은 서점. hoccorie. 점심 먹은 장소에서 7분 떨어진 곳인데 아이들과 걸어가니 시간은 배로 걸린다. 골목길로 들어서자 작은 광장이 보여서 한눈을 팔고, 점심 먹은 후라 피곤하다고 더 이상 못 걷겠다고 주저앉고. 아이들과의 여행은 매번 이렇다. 집 앞에서 유치원 버스까지 가는 길에도 개미 보고 앉고, 나비 따라 뛰어가는 것처럼.





아이들의 컨디션에 따라 움직이면서 약간의 욕심만 내어본다. 몇 번이나 주저앉으려는 아이들을 여러 말로 다독인 후, “바로 저기다! 엄마 먼저 간다!”하고 뛰어갔다. hoccorie. 골목길 안  상점에 큰 간판도 없다. 작게 hoccorie라고 적혀 있고 유리창 안으로 익숙한 그림책들이 보인다. 책만 보면 왜 그리 좋은지. 책벌레도 아니었고 어렸을 때 책 읽는 것보다 바깥에 뛰어다닌 기억이 많은데 어른이 되고 책이 재밌어 졌다. 좋아졌다. 책 속 이야기의 가치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놀라운 건 10개월 된 딸아이는 굴러가는 공보다 책을 더 좋아한다는 것. 나도 그랬을까? 혼자 상상하며 책방으로 들어선다.





엄마 뒤에 따라온 녀석들은 나보다 눈도 손도 더 빠르다. 원하는 책들은 몇 권 들고 오더니만 옆에 놓인 의자에 털썩 자리 잡고 앉는다. “엄마 이거 읽어줘요!” 둘째가 들고 있는 책을 보며 말한다. “미안해. 엄마가 읽어줄 수 없는 글자야.” 제2외국어로 배운 일본어지만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다른 외국어에는 관심이 많은데 오히려 일본어는 마음에서 놓았다. “그래도 괜찮아. 그림이 있으니까 엄마가 읽어줄게.” 그림책이 좋은 이유다. 그림만으로 충분히 나눌 거리가 있다는 거. 영어그림책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글자를 모른다. 엄마가 읽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눈으로 그림을 ‘본다’. 서점을 둘러보며 미소가 지어졌다. 아는 그림책이 보인다. 아이와 그림책 읽기를 하면서 표지만 보고 아는 척 하기 시작했다. “어머, 산아. 애벌레 책이네. 어머, 훤아. 이 책 읽어 본 적 있지?” “엄마, 저 책 우리 집에 있어요.” 일본어로 번역된 책인데 표지만 보고 아는 척 하는 건 엄마나 아들이나 같다. 세상의 서점을 들르는 이유는 이것이다. 우리 집 도서관이 세상의 도서관과 같다는 것. 아이들이 집과 세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시작점을 만들어 주는 것.





혹시나 영어 그림책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서점 주인은 영어를 잘하지 못하셨다. 옆에 계시던 한국분이 대신 일본어로 전달해주셨다. 고베에 살고 계시는 데 지금 여행 중이라 하셨다. 이런 그림책방을 다니시는 할머니셨으니 작가님의 느낌이 난다며 남편과 상상만 해본다. 유일하게 있던 책은 고미 타로의 일본어, 영어 단어 책이었다. 그림책을 읽어준 엄마라면 일본의 고미 타로 작가를 알 것이다. ‘Fun with katakana, fun with hiragana. fun with kanji'라는 3권의 책에서 일본 아이들은 일본어와 영어를 배울 수 있다. 일본어까지 아이들에게 노출 시킬 자신은 없는지라 고미 타로의 그림만 넘겨보고, '영어 단어를 이렇게 읽다니!'하며 혼자서 웃다가 책을 덮었다. 



엄마보다 재빠르던 아이들의 집중력도 재빠르게 흩어졌다. 아직 좀 더 둘러보고 한 권이라도 쥐고 나오고 싶었던 엄마와 달리 아이들의 관심사는 바깥으로 향했다. 나오기 전 큰 아이와 한 권의 책을 보았다. “산아, 이거 ‘고함쟁이 엄마’ 책 아니야?” “엄마, 맞네. 이 책 읽어줘요.” 그렇게 둘이 앉아서 책장을 넘긴다. 고함치는 엄마에 아기 펭귄의 몸이 다 흩어졌다. 머리는 여기에, 부리는 저기에, 두 팔은 호랑이의 등에 날개처럼 달렸다. 마지막 장면에 엄마 펭귄은 흩어진 아기 펭귄을 모아서 실로 꿰맨다. “엄마? 어떻게 실로 몸을 꿰맬 수가 있어요?” 아이는 그림책의 작은 부분도 세세하게 관찰한다. 글을 읽느라 바빴던 엄마도 오늘은 그림을 함께 본다. 20분 남짓의 짧은 책방 여행을 통해 아이의 그림책 욕구를 채워줄 수 있었길. 물론 아쉬웠지만, 엄마도 이 정도면 충분해!



#아이들과세계여행
#아이와책방여행
#삼남매세계여행



책방 주인에서 초콜릿 가져다줬는데 남은초콜릿 형에게 빼앗김


작가의 이전글 [여행육아일기1] 아이와 여행 3년차, 계속 해도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