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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콕맘 예민정 May 30. 2021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가슴이 두근거린 이유

늦은슬의생(슬기로운의사생활)정주행기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지만 하루 더 나이 든 내가 2021년 6월을 기다리게 되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이 시즌 2로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평소 드라마에 민감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은 아니다. 만약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면 슬의생이 이슈가 됐을 때 챙겨 봤을 것이다. 남들은 흥미를 잃고도 남았을 이제야 정주행 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메이킹 필름 때문이었다.


슬의생은 응답하라 시리즈로도 유명한 신원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보통 드라마 연출자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가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 거라 짐작해 본다. 그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같아 보였고, 무엇보다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 사람 같았다. 

이 또한 메이킹 필름과 그들이 편집해서 내보낸 영상을 통한 것이었기에 제작자의 의도가 연출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간의 작품 분위기나 후일담으로 미루어보아 과장되었을 수는 있지만 크게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앞서 언급했듯 늦은 슬의생 정주행은 메이킹 필름을 통해 시작되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메이킹 필름을 보게 되었고 이후로 드라마를 찾아봤다. 정주행의 순서가 바뀌니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곧 시작될 시즌 2도 본방보다 이후에 나올 메이킹 필름이 더욱 기대된다. 


시청률이 좋았던 드라마에 NG컷이나 감독판을 덧붙여 스페셜로 방송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배우들이 배역을 맡기 전에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나 드라마에서 감독과 작가가 가장 우선시하는 가치(슬의생은 배우 간의 찐케미를 꼽았다)를 오픈하는 건 흔하지 않다.


‘하드를 정리하다 보니까... 혹시 몰라서 다 찍어 놓거든요... 오디션 영상이나 첫 만남 이런 거. 지워지기 아까운 영상들이 있어서... 보시면서 시즌 2를 덜 지루하게 기다리셨으면 합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슬기로운 하드 털이는 각 배우들의 인터뷰 영상과 연습 과정 등이 담겨 있다.





이 드라마에 매료된 이유



1. 변화를 꿈꾸지 말고 먼저 변화하자.


주 1회 방영 1년 중 6개월 제작.  

신 감독은 인터뷰 중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열악한 근무환경에 무척 놀랐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밤낮 없는 촬영과 살인적인 스케줄은 드라마 제작을 전혀 모르는 일반인도 알 정도로 유명하다. 흥행 드라마의 주인공은 만성 수면 부족 상태에서도 최상의 연기를 보여야 한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더 이상 비하인드가 아니다.


그는 이런 풍토를 바꾸고 싶었단다. 시즌제 드라마로 자리를 잡아서 드라마 제작자도 워라벨을 논하는 삶이 가능한 길을 먼저 열어보고 싶었다며 혹시 실패하더라도 누군가는 그 길을 또 따라올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 스텝들이 워라벨을 입에 담을 경험을 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주 5일 촬영이라는 룰을 세웠다는 것부터 파격적인 제안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룰이 있었기에 배우들은 드라마 촬영 중에도 계속해서 악기를 연습하고 밴드를 맞춰보는 등의 활동도 가능했다고 했다.


물론 드라마가 끝나고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가장(다른 일 많이 하는 신 감독) 에피소드가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그들의 시도가 실패하지만은 않았던 듯하다. 무사히(?) 시즌 2가 시작되니 말이다.




2. 어떻게 신뢰를 쌓을 것인가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의 비결 중 하나로 꼽히는 요소가 ‘현장 분위기’다. 슬의생은 메이킹 필름이나 NG컷만 봐도 배우 간의 케미, 배우와 스텝 간의 신뢰가 돋보인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이 드라마만 좋은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을까 하는 것이다. 수많은 스텝과 배우가 모인 환경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은 'NO'다.


실제로 촬영 전후의 영상과 캠핑하는 모습을 보면 참여자 모두의 진정성 있는 노력이 찐케미를 이끌어 냈음을 알 수 있다. 


배우들은 역할 속 밴드 연주를 소화하기 위해 1년 동안 손가락이 아프도록 베이스 기타를 튕기고 건반을 두드린다. 촬영 중간에도 틈틈이 스케줄을 맞춰 합주 연습을 한다. 그리고 연습 시간이 헛되지 않게 더 많은 시간을 앞서 투자한다. 누구 하나 ‘대역 쓰면 되지’ ‘흉내만 내자’ ‘녹음은 전문가가 하겠지’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배우 전미도는 실제 드라마에서 24초 나가는 장면을 위해 텐트 치는 법을 두 시간 동안 배우고 30분이 넘도록 혼자 텐트를 치고 걷는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힘이 들지만 웃으면서 연기를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저절로 신뢰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뭐든 한 면만 보고 전체를 짐작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하지만 어느 장면을 봐도 이들은 정공법을 택한다. 비겁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모습은 없다. 

배우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캐릭터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영상에 담기지 않는 시간 동안 원하는 모습이 나올 때까지 반복했을 혼자만의 ‘다시 한번 만’이 그려졌다. 아마도 그들은 혼자서 수백 번 대사를 외우고 또 외웠을 것이다. 


이런 노력이 배우와 배우, 배우와 스텝 서로가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단순히 자주 만나고 마음을 나눈다고 해서 친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좀 더 쉽게 마음을 여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들이 보여준 찐케미의 진수를 모두의 최선에서 찾았다. 불편하고 부당한 것을 상식에 맞는 당연한 것으로 바꾸려고 노력할 수 있는 제작자의 용기. 내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의 최선을 다하는 배우의 노력. 드라마 흥행의 보이지 않는 일등 공신은 여기에 있었다. 





나는 슬의생이라는 드라마에 빠졌다기보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 빠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장면 하나를 보면서 OK CUT이 나올 때까지 무수히 많이 연습하고 다시 찍고 웃고 울었을 배우와 스텝들을 떠올리는 그 시간이 좋아서 12회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주행 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들이 수천 번 건반을 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그들이 수만 번 대사를 다시 읽는 동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단순히 그들이 하는 일을 '돈'과 '일'로 일축하지 않았으면 싶다. 세상에는 '돈'과 '일'이 모두 엮여도 꼼짝도 않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말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삶에도 돈을 받고 하는 일이 있고, 좋아서 하는 일이 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속에 열정이란 것이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일이 주어지더라도 혹은 선택하더라도 저들처럼 즐겁게 무수히 반복하며 제대로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선택한 일에 수천수만 번 '다시'를 외칠 생각을 하니 오랜만에 두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직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은 기분을 동력으로 오늘을 마감하기 전에 글을 마친다. 내일 또 '다시'를 외칠 테지만. 더 이상 두렵지만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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