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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Feb 17. 2024

14. 내 인생에 또 무슨 복이 있을 줄 알고?

이번 생에 나와 관없다고 지레짐작한 두 가지 있었다. 지만 결론부터 말해 모두 다  삶에 들어왔다.


1. 내 인생에 딸은 없나 봐.


14년에 출산한 첫째에 이어 17년에 출산한 둘째도 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17년 10월 2일 그날 너무나 중요했던 10초가 있데, 제왕절개 수술 직전 동의서를 받던 간호사가 '불임시술 같이 진행할까요?' 질문했던 순간다.

진료하던  의사가 미리 상담하지 않고 수술 침대 위에 누워있는 산모 통보하듯 질문하는 게 말이 되나 싶지만, 어쨌든 그건 논외로 하고.

'불임'이란 단어에 마음이 복잡해지는 속도를 이성이 따라잡을 수 없어 급하게 대답했었, 아니요!라고.

그저 '불임'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졌을 뿐, 이성적 판단이나 합리적 근거는 조금도 없었다. 만약 그때 나의 전두엽이 조금이라도 제 기능을 해서  예! 하고 대답해 버렸다면 막내딸을 영영 만나지 못했을 테니, 정신줄을 잠시 놓았던 그 순간의 내가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지 모른다.

나 자신 칭찬다.


2. 나 왜 이렇게 학교 복이 없니


지난주 인사발령이 났다. 지역을 달리해 근무지를 이동할 때 관'' 전보내신이라고 하는데, 이 경우 '' 신청자들의 희망 근무지가 우선 반영되므로 관외 신청자는 으레 그 지역에서 가장 근무하기 힘든 학교로 배정기 마련이다.

교사가 근무하기 힘든 학교라고 퉁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원인이 있다.

업무가 무작시리 많거나,

인성이 험한 관리자나 동료교사가 있거나,

출퇴근 거리가 멀거나,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어렵거나 혹은 학력 수준이 낮거나.

그중 내가 근무했던 학교들은 학생들의 생활지도가 어렵고, 전반적으로 학력 수준이 낮아 수업하는 보람이 덜한 학교들이었다.

그러나 이번 나의 발령지는 '00 학교'다. 지어 여고라니! 나의 교직 인생에 여고가 있을 줄이야. 업무가 무작시리 많아 다들 기피한 모양인데, 아이들이 순하고 수업하는 재미가 있다 하니 나에겐 충~분히 좋은 학교다.

여자아이들의 눈빛이 똘망똘망 나에게 향해 있을 교실을 상상하니, 아이구 어쩔 줄 모르겠.



딸 복이 없어 아들 둘이 내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고,

학교 복이 없어 다들 기피하는 학교만 골라 발령 난다 싶었다.

없을 줄 알았던 복이 생겼지만, 절로 생긴 복은 아니다. 만약 내가 육아부담에 압도되어 살았다면 아니오를 외칠 수 없었을 것이다. 육아할 수 있는 삶에 감사했다. 그런 마음 덕분에 '불임'이란 단어에 거부감을 느꼈고, 뜻밖의 가능성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또 수업이든 업무든 내가 해야 하는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업무량이 소문나서 내에서 아무도 희망하지 않은 00 학교에 발령 났고 예상대로 기피 업무를 맡았지만, 해 본 일이니까 두렵지 않다. 는 그저 해오던 일을 하면 되고, 수업 재미는 좀 더 생길 테니 이 정도면 나는 학교복 있는 셈이다.

무슨 복이 있니 없니 하는 말은 불필요하다는 걸 알겠다.

앞으로도 내 인생에 어떤 행운이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니, 그래서 더 기대해 본다.

난 참 00복이 없어,라고 처음 한탄하던 그 시간에서 멀리 돌아온 듯하너무 늦지 않아 다행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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