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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Feb 11. 2024

13.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일이 남과 비교하기

30년 친구와 나와 엄마 이야기

갱이와는 일곱살 때부터 친구였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기 시작했고, 급기야 같이 책방을 차리기도 한 친구다.

잘 어울려 놀기도 했거니와 친구가 개명하기 전까지는 나와 이름도 비슷해서 우리의 엄마들은 이름을 부를 때마다 헷갈려했는데, 닮은 점이 많아 그런지 비교도 많이 했다.

나는 입이 짧아 삐쩍 곯았지만 책을 잘 보는 아이였고,

갱이는 책은 큰 관심 없지만 잘 먹어 통통했다.

마흔이 넘은 지금은?

둘 다 통통하고, 둘 다 책을 잘 읽는다.

책방 일을 업으로 삼고 있으니 오히려 책을 많이 읽는 쪽은 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엄마의 비교가 끝났느냐?

엄마 눈에 나는 여전히 초딩 입맛에 입이 짧으며 , 빵,떡,파스타 등 살찌는 음식만 골라먹는 문제아다.

갱이가 우리집에 와서 우리 엄마가 해준 밥을 먹을 때면 나는 대놓고 경고한다.

야! 맛있게 먹지 마!

그러거나 말거나,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질만큼 맛있게 잘 먹던 사람이 깨작거리는 것도 어지간히 힘든 일이라

나는 결국 엄마에게 타박을 듣곤 한다.

"이렇게 맛있는 걸 해놔도 쟤들(우리 식구 다 입짧)은 손도 안 댄다니까. 갱이 니 좀 주까 싸갈래?"



2.


올해부터 내 친구 갱이는 대학원생이다.

마흔 넘어 학자금 대출이 웬 말이냐며, 생활비 대출도 있다는 말에는 나도 대학원 갈까? 하며 담같은 진담을 했다.

엄마에게 이 비교하기 좋은 소식을 전하며 내가 예상한 반응은 "니도 대학원 가라"였다.

남들이 하는 '좋아 보이는' 건 다 하라는 엄마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엄마는

'뭐 공부하노?, 돈 많이 들겠네' 하는 관심만 보이고 뒤끝없이 담백하다.

"엄마 왜 나도 가란 말 안해?" 물었는데 뜻밖이다.

그냥,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여태도 그렇게 잘 해왔으니까.



거실의 온도가 0.1도쯤 올다.

그리고 나는 용케 알아챘다. 일흔 살이 되어가는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였던 마흔 즈음으로 돌아가 어린 딸을 마주한 순간이라고, 그 시절 표현하지 못한 사랑을 지금 하는 것이라고.

늘 인정보다 비교에 익숙한 관계였고, 엄마의 진심과는 별개의 말이라고 머리로 이해하려 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정말이지 부단히 노력한 날들이었는데.

아무런 노력없이 엄마의 진심을 었으니 올해 나는 복이 터질 모양이다.

엄마도 계속 노력중이었던 것이다. 당신도 받아보지 못해 할 수 없었던 살갑고 애정어린 말, 믿음과 응원과 지지의 말을 언젠가는 딸에게 표현하 싶어서 밤마다 연습했을지 모른다.

아무튼, 엄마의 말에 나의 어린 시절이 다시 그려지는 느낌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외롭고 원망스러웠던 시간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며  삶은 내내 평화롭게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요즘 엄마이석증으로 잔어지러움을 많이 느낀다.

지난 주말엔 비명을 지를 정도로 어지러워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엄마는 병도 희한한 병이 걸렸다며 한탄하지만, 죽을 병이 아니라 나는 너무 다행스럽다.

작년에 뇌경색이라 진단받았던 것도 어쩌면 이석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니, 중한 질병을 하나 덜어낸 것 같아 또 좋.(확실한 건 없지만, 내 마음 편하자고 막 진단하는 이기적인 의사놀이 중이다)

살아있으면 언제든 기회는 있다.

성장할 기회가 있고, 서로에게 용기 낼 기회도 있고,

여전히 입이 짧지만 통통해질 수도 있다.

어쨌든 가능성은 반이니까, 좋은 방향으로 바뀔 확률 50프로다.


엄마가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서 더 자주,

우리가 옛날을 다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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