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에 알맞게큐레이션 한 책들이 나무책장에 정갈히 진열된 그런 책방은 전국에 수도 없이 많지만, 1:1로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눈 뒤 현재의 취향이나 고민에 맞춰 두세 권의 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는 사적인 서점이 처음이었다.
그곳에 손님으로 가고 싶던 나는 어찌 된 일인지 친구와 함께 그림책 서점을 차리고야 말았다. 둘째 육아휴직 때였다.
학교에 복직하며 서점일에 한 발걸쳐놓은 채 끝까지 내가 놓지 않았던 일은 '구독 서비스'였다. 많게는 서른 명, 적을 때는 스무 명 안팎인 구독자의 취향과 필요를 고려해 매달 세 권의 책을 편지와 함께 보냈다. 그림책서점이라 어린이 손님들이 많아서 초기엔 그림책 위주로 선별했는데,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 입학을 할 정도가 되니 문고책까지 범위를 넓혀 골라야 했다.
다행이랄까, 우리 집에는 그림책을 읽는 유아부터 더듬더듬 읽기 독립을 시작하는 유치원생에, 책 좀 꽤나 읽는 초등학생까지 있으므로 서점인으로서의 일과 엄마로서의 일을 구별할 필요 없어 좋았다.
좋았지만,
정말 보람 있고 의미 있는 부캐였지만,
버겁기도 했다.
여러 이유중에서 어떤 책이든 내가 '그냥' 읽는 책이 없다는 사실이 제일 힘들었다.
'이번 달 구독책으로 적절한가?'를 염두에 두고 집어든 책은 아무리 재밌어도 마음 한편에 '나를 위한 책'같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은 그냥 좋아하는 일로 남겨 뒀어야 하나?
내가 하고팠던 사적인 서점의 그 일과 지금 하는 이 일이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나?
아니 애초에 서점 일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맞나?
어느 철학자가 지적한 것처럼 내가 타인의 욕망을 욕망했던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됐고, 결국 작년 가을에 구독일을 쉬기로 했다.
그리고 책을 둘러싼 나의 진짜 욕망은 무엇인지 오래오래 들여다봤다.
이 일을 나의 브랜딩과 제대로 연결 지어 본 일이 없는 것,
그게 문제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기에, 분명한 목표를 세우거나 에너지를 집중하는 데 소홀했음을 인정한다.
나의 욕망이 곧 성장이고 브랜딩인데!
몇 년을 꾸준히 구독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한 마음만 잔뜩 있었을 뿐, 구독자 덕분에, 혹은 구독자와 함께 성장해야겠다는 마인드는 없었다.
내 손으로 판을 깔아놓고도 기회인 줄 모르고 바쁘다고, 힘들다고 투정 부렸다.
언젠가부터 구독자 수가 정체되었던 것 또한 이런 나의 어리석은 기운이 우주에 닿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새해가 되면서 구독서비스를 새롭게 시작했다.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나의 욕망 중 하나는 '계속 읽는 사람'으로 남고 싶음이다.
나뿐 아니라, 나의 아이들이 어린 시절 반짝 독서로만 끝나지 않고 읽는 청소년에서 읽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란다
다들 '보는' 시대에 미련스러울 정도로 '읽기'를 놓지 못하고 동네서점에 애정을 보이는 이들 또한 계속 읽는 사람이기를 꿈꿀 테니,
그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목표다.
해서, 구독 서비스의 이름 또한 한자 '오래 구(久)'를 사용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래오래, 끝까지 읽는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비스 비용도 개선했다.
기존에 책값만 받던 것을 큐레이션 비용 및 택배, 포장비 등의 비용을 감안해 책값에 1만 원씩을 더했다.
그렇게 시작한 구독서비스의 1월 신청은 총 6분,
책값은 동업자의 몫, 나에겐 6만 원의 수익이 발생한 셈이다.
(엄연히 계산해서 큐레이션 비용은 5천 원이지만, 관대한 나의 동업자는 나의 수당을 1만 원으로 책정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