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제 Jun 11. 2022

300만 원짜리 중고 모닝의 최후

방전된 배터리와 펑크 난 타이어

꼬맹이 시절 같이 살던 외삼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외숙모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나와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에게 외삼촌과 외숙모는 특별한 추억을 선물해준 따뜻한 분들이었다. 소식을 들은 나는 곧바로 일산에 위치한 장례식장으로 이동할 준비를 마쳤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나에겐 아버지가 사주신 300만 원짜리 중고차가 있다. 면허는 있었지만 운전이 서투른 나에게 모닝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덕분에 네비도 볼 수 없었던 내가 지금은 네비를 보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찾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였기에, 나의 중고 모닝은 주차장 한 구석에 방치되어있는 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출퇴근도 대중교통이나 따릉이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 달 이상 시동 한 번 걸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장례식장으로 이동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고, 차는 가래 끓는 소리만 날 뿐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황급히 보험사에 전화하여 문제의 원인을 찾고 A/S를 불러 해결하는 데까지 약 30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원인은 너무 오랜 기간 차량을 방치하여 배터리가 방전된 것이었고, 나는 앉은자리에서 30분이 넘는 시간을 낭비했다.


네비는 약 한 시간 뒤 도착이라고 내게 알려주었고, 초행길이었지만 초보운전은 아니었기에 안전운행을 하며 찾아가기로 다짐했다. 한 30분쯤 달렸을 무렵, 어떤 아저씨(생명의 은인)가 내 왼쪽 차선으로 오시더니 창문을 내리라고 클락션을 울리며 바짝 붙었다. 순간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당황하지 않고 창문을 내렸다.


"어이 총각!! 타이어 빵꾸 났어!!"

"네?? 네?? 빵꾸요??"

"그래 인마!!"


아저씨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난생처음 겪어 보는 상황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도로를 빠져나가 갓길에 차를 세워 상황을 파악했다. 아저씨 말대로 오른쪽 뒷바퀴가 이미 오래전에 걸레짝처럼 바람이 빠져있었고,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에 아찔함이 밀려왔다.


결과적으로 당일에만 보험사에 연락을 2번이나 하게 되었다. 아마 하루에 다른 사건으로 두 번 연락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을 텐데 평소에 차량 관리를 소홀히 한 내 탓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30분이 넘는 시간을 보험사의 연락을 기다리는 데에만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보험사 직원분께서 나의 중고 모닝을 보시더니 타이어에 바람이 빠진 정도가 아니라 타이어가 너무 노후되어서 거의 찢어진 상태라고 말씀해주셨다. 여분의 타이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나는 하는 수 없이 차량 견인 서비스를 통해 가까운 카센터를 방문하여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카센터에서도 차량 상태를 보시더니 타이어 4개 모두 다 교체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내가 눈으로 봐도 멀쩡하지 않은 타이어들 뿐이었기에 이왕 온 김에 모두 교체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방전되었던 배터리도 교체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여기서도 나는 30분이 넘는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큰 지출과 함께.


우여곡절 끝에 1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3시간 만에 도착하게 되었다. 좋은 일로 찾아뵙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좋은 기억들로 자리 잡고 있는 외삼촌과 외숙모였기에 속으로는 굉장히 기뻐했던 것 같다. 두 분 모두 하시고 있는 일이 잘 되시는지 얼굴에는 안정과 여유가 보이는 듯했고, 간단히 나와 여동생의 안부를 전해드렸다. 그리고 퇴근 시간과 겹치지 않는 선에서 다시 나의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 같다. 집으로 오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 사고를 수습하느라 에너지를 쏟은 탓일까. 가볍게 조깅을 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곱씹어 보았다.


아마 내가 주기적으로 차량 관리에 신경을 썼더라면 오늘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급작스럽게 배터리가 방전되지도 않았을뿐더러 펑크 난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길에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지출을 줄일 수도 있었을 터이다.


우리 인간의 신체도 차량과 마찬가지로 소모품과 같다. 꾸준히 주기적으로 육체적 및 정신적인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면 언젠가는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할 수밖에 없다. 그게 언제가 되었든, 갑작스럽게 찾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나면 그제야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건강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당신은 주기적으로 당신의 몸을 관리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저의 중고 모닝처럼 방치하고 계신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