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
프라하의 6월 하늘은 저녁 9시가 넘어서도 밝았다.
다리 초입에 서서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블타바강 너머 하나둘 빛을 발하는 천년 넘은 성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찰나였다.
지어진 지 오래된 순서대로 점등된다지만 막상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순식간인 느낌이었다.
흐르는 강에 프라하의 야경이 사라져 가는 노을과 함께 흔들렸다.
문득 시간이 흐르는 것이 참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7세기와 8세기의 시간 차는 도무지 와닿지 않는데 21세기의 어느 밤은 너무나 까마득했다.
눈앞에 십수 세기의 시간을 간직한 도시가 마치 그대로인 듯 있는 와중에 나는 십수 년 전의 어느 밤을 떠올리고 말았다.
너와 내가 지금보다 훨씬 싱그러웠던, 흔들리는 야경 속에 춤을 추었던, 그때.
그때를 떠올리기 위해 나는 다시 프라하를 찾은 것인가 보다.
다리 초입에서 점등을 기다릴 때부터 이미 그때를 떠올리자 마음먹어 놓고 아닌 척을 했다.
정리하고 정리해서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을 펼쳐내어 다리 밑으로 뚝뚝 떨구었다.
그때의 너와 나는 흐르고 흘러서 멀리 희미해지고 있었다.
용서하고 싶어서 미워했던 시간이 있었다.
미워서 이해하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다.
이해해서 저주하고 싶었던 시간이 있었다.
늘 그렇듯 시간 탓을 해보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친애하는 소피, 가엽고 그리운 나의 소피.
나는 또다시 결코 전하지 못할 말들을 떠올려 놓고는 묻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