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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Dec 31. 2021

아이를 낳고 싶다는 친구에게

서울에서

 지난 늦여름, 퇴근길에 버스에서 조금 일찍 내려 윤중로를 걸었다. 여름이 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고팠던 마음이 방해받은 것은 매미 때문이었다. 벚나무 가득한 매미들이 어찌나 악을 쓰며 울어대는지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도시의 매미가 밤낮없이 울어대는 것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7년 혹은 그 이상을 땅 속에서 굼벵이로 지내다 마침내 밖에 나오면 고작 한 달 남짓 살고 죽는다는 매미의 생애가 워낙 유명한 이야기가 됐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매미의 발악을 측은하게 여기는 듯하다. 나도 그렇다. 여름마다 귀를 괴롭히는 매미들에 짜증이 나다가도 '그래. 너네도 참 애쓴다' 싶어지는 것이다.


 매미들이 처절하게 몸을 떨며 울어대는 이유는 번식. 모든 생명체가 그렇듯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많이 퍼뜨리는 것이 사명이라고, 긴 우주의 역사로부터 프로그래밍된 세포들이 그들의 몸을 이루고 있다. 매미보다 훨씬 복잡한 유기체인 사람도 근본적으로는 존재의 목적이 다르지 않다. 비혼, 비출산을 결심한 이후에도 나는 나라는 생명체가 일개 유전자 캐리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전부는 아니라고 믿는다.


 매미들의 악악 소리를 들으며 상상했다. 수많은 매미들 중에 어떤 매미들은 우는 목적을 알고 울 것이고, 어떤 매미들은 경쟁심으로 울 것이고, 어떤 매미들은 다른 매미들과 섞이기 위해 따라 울 것이다.


 그리고 어떤 매미들은 울지 않을 것이다. 어디가 모자라고 아파서 울지 않는 매미들도 있겠지만, 사회적 정상성에 대한 욕구가 적거나 없어서 울지 않는 매미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수컷 매미가 가장 크게 우는지 궁금하지 않은 암컷 매미들도 있을 것이다.


 한 달 남짓의 바깥 생활을 다른 매미들과는 다르게 꾸려보고 싶은 매미들도 있을 것이다. 태어난 곳으로부터 멀리 떠나보고 싶은 매미들도 있을 것이고, 가장 맛있는 먹거리를 찾고 싶은 매미들도 있을 것이고, 번식 없이 그저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매미들도 있을 것이고, 그냥 하늘을 왕왕 날아다니고 싶은 매미들도 있을 것이다. 그저 가만히 나무에 붙어있고 싶은 매미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번식 탈락에 성공(?)한 매미들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의 쓸모없는 찬란한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라는 존재의 의미에서 번식의 기능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나는 죽을 때까지 그 무엇을 찾기 위해 헤맬 것이다. 그 의지와 행위가 곧 그 무엇이 될 때까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매미들도) 의미를 찾을 수 없어, 의미를 찾기 힘들고 괴로워,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의미(혹은 성취)로서 아이를 낳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보고 들어 알면서도 그것이 낫다는 무의식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존재의 '남은' 의미라고 칭할 것은 아이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여분 하나 없이 오롯하고 충만한 나의 삶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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