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다음 뉴스펀딩에 게재한 글.
“축구가 제일 쉬웠어요”라던 소녀가 있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오빠를 따라 김해의 한 유소년축구클럽에서 공을 찼다. 유소년 클럽에서 소녀의 동갑내기 라이벌은 현재 독일 아인트라흐트브라운슈바이크에서 뛰고 있는 류승우였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축구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가서 본격적으로 여자축구를 시작하게 된 소녀는 그야말로 축구에 미쳐있었다.
10대의 여민지는 남다른 재능과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고 한국 여자축구의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주목받았다. 여민지는 “중학생 때는 축구가 정말 쉽고 재미있었어요. 또래 친구들에 비해 순간적인 스피드나 힘이 좋았다 보니 축구가 더 쉽게 느껴졌고, 그만큼 축구를 즐겼죠.”라고 말했다.
샛별이 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출전한 2010 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여민지는 맘껏 빛났다. 6경기에서 8골을 넣는 활약으로 득점왕과 MVP를 차지하며 우승의 주역이 됐다. 특히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서 4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U-17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은 여자축구의 붐을 일으켰고, 그중에서도 여민지는 한국 여자축구의 별로 떠올랐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이 그에게 쏟아졌고,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써온 훈련일지를 담은 책 <일기가 나를 키웠어요>를 출간하기도 했다.
“주위에서 관심도 많이 받고 TV 출연이나 인터뷰도 늘어났죠. 하지만 그런 것들 때문에 훈련을 못하게 되거나 하면 너무 싫었어요. 어릴 때 관심이나 칭찬을 많이 받으면 거만해지거나 겉멋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그랬기 때문에 그런 관심을 받는다고 해서 거만해질 일은 없었어요. ‘겸손’이라는 단어가 항상 머릿속에 딱 박혀있었어요.”
여민지의 말은 어린 시절의 훈련일지가 증명한다. 훈련일지에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잘한다고 거만해지지 말자’는 이야기가 곳곳에 쓰여있다. 어린 나이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변함이 없었다. 이처럼 여민지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철든 소녀였고, 이후 겪은 시련들은 그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프지 않고 축구할 순 없을까?
2011년 시련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돼 치른 첫 경기에서 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것이다. ‘2011 키프러스컵’에서 A매치 데뷔골을 터트리며 성인 대표팀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직후에 당한 부상이었기에 더 아쉬웠다.
여민지는 “컨디션이 무척 좋았어요. 게다가 이기고 있던 경기였어요. 선수는 항상 컨디션이 좋을 때 부상을 조심해야 하는데 그땐 미처 몰랐던 거죠. 무리를 했고 부상을 당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여민지는 재활을 거쳐 2011 AFC U-19 여자챔피언십과 2012 FIFA U-20 여자월드컵에 연이어 출전했지만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재기는 쉽지 않았다. U-20 월드컵을 치르며 발등에 심한 통증을 느낀 여민지는 병원을 찾았고, 발목 인대와 연골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어린 시절부터 쉬지 않고 뛰어온 것이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여민지는 “축구가 마냥 좋아서 하루 이틀 쉬는 것도 싫어했거든요. 다쳤을 때 좀 쉬었으면 금방 좋아질 것을 계속 운동을 했던 게 누적됐던 것 같아요”라고 회상했다.
2012년 12월 발목 수술을 받고 다시 6개월을 재활에 매달려야 했다. 실업팀 입단은 물론 해외진출도 계획하고 있던 상황에서 오랜 기간 경기에 뛰지 못한 것은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그라운드와 동떨어진 곳에 오랫동안 있다 보니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나는 축구선수인데 왜 맨날 재활만 하고 있을까, 아프지 않고 축구할 순 없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여민지의 연속된 부상은 선수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한국 여자축구 전체에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2010년 U-17 대표팀의 월드컵 우승과 U-20 대표팀의 월드컵 3위의 좋은 성적을 이후 국제 대회에서는 이어가지 못했다. 여민지는 “주변에서 아쉬워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저도 안 다치고 죽 경기를 뛰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미 지난 일이고 일어난 일이기에 겸허히 받아들여요”라고 말했다.
여민지는 2014년 대전스포츠토토의 유니폼을 입으며 실업팀에 입단했지만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첫 시즌 동안 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소속팀에서의 출전 기회가 적다 보니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지 못했고, 때문에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여자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 스트라이커는 점차 잊혀 가는 듯했다.
모든 것이 공부다
경기에 뛰지 못하며 자신감은 떨어졌지만, 여민지는 이 시간이 깨달음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특히 아시안게임이 그랬다. 여민지는 “아시안게임은 제게 힘든 시간이 아니었어요. 북한전을 직접 경기장에 가서 봤는데, 언니들이 뛰는 것을 보면서 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얼마나 모자란 지 깨닫게 됐죠. 더 강해지고 단단해졌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강호 북한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후반 막판 실점으로 아쉽게 역전패했다. “지금도 언니들이 이야기하는 게, 아시안게임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게 훈련했다는 거예요. 더운 날씨에 강도 높은 체력 훈련을 이겨낸 것이 경기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요. 후반전에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여민지는 “매 순간 경험하고 배워요. 인생이 사실 그것의 반복이잖아요. 대표팀에서 언니들과 같이 훈련하고 경기하는 게 저한테는 다 공부예요”라고 말한다. 여민지는 다시 조금씩 올라서고 있다.
지난해 11월 여민지는 반년 만에 다시 대표팀에 승선하며 2015 EAFF 동아시안컵 예선에 참가했다. 여민지는 외모부터 사뭇 달라져 있었다. 머리카락도 제법 기른 데다 젖살이 빠져 성숙한 분위기가 풍겼다. 컨디션도 많이 올라온 모습이었다. 여민지는 괌과의 1차전에서 1골, 홍콩과의 2차전에서 4골을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올해 3월 16일 열린 IBK기업은행 2015 WK리그 개막전에서는 서울시청을 상대로 골을 터트렸다. WK리그 2년 차에 터트린 데뷔골이다. 지난해의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을 치유해 주는 의미 있는 골이었다. 좋은 출발이다. 여민지는 “첫 경기에서 골을 넣어 기분이 무척 좋아요. 작년보다 자신감이 많이 커졌어요. 좋은 경기력을 계속 유지해서 올해는 골을 많이 넣고 싶어요”라며 웃었다.
다시, 세계 무대로
여민지는 6월 열리는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을 준비하고 있다. 5년 전 U-17 월드컵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던 그지만 이번 대회를 앞둔 마음은 사뭇 다르다. “그때 우리 팀은 멋도 모르는 꼬맹이들이었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경험이 쌓인 만큼 그때처럼 마냥 자신감만 있진 않아요. 청소년 대회와 성인 대회는 전혀 다르니까요.”
키프러스컵에서 유럽 팀과 상대하며 가장 피부로 와닿는 세계 무대의 벽은 신체적인 조건이다. 성장기를 지난 유럽 선수들은 연령별 대표팀 때와는 다른 체격으로 우리 선수들을 막아선다. 지난 2015 키프러스컵에서 당한 조별리그 3연패는 신체적 한계를 여실히 느끼게 한 결과였다.
“우리 선수들이 분명 공을 잘 다루지만 힘에서 밀리다 보니 버거운 게 사실이에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 많이 뛰어야 하고, 더 영리하게 움직이고, 더욱 하나가 돼야 해요. 이번 키프러스컵에서는 체력적으로 준비가 덜 돼있었어요. 월드컵을 앞두고서는 체력 훈련을 정~말 많이 하게 될 거예요.”
여민지는 세계 강호들과의 또 다른 차이로 배움의 환경도 꼽았다. 유럽은 물론 가까운 일본에서는 즐기는 축구를 가르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결과와 성적에 연연한다는 것이다. 여민지는 “남자축구도 마찬가지지만 당장의 성적만 중시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여자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여민지는 “자기 몸을 아끼고 부상을 예방하는 법을 어렸을 때부터 알아야 해요. 여자선수들은 남자선수들에 비해 근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부상당하기도 더 쉽고, 회복도 힘들어요. 늘 체크하고 꾸준히 관리할 줄 알아야 해요”라며 몸소 느낀 부분을 설명했다.
우리 나이로 스물셋 밖에 되지 않은 여민지가 큰 부상을 두 차례나 겪은 것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여민지는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를 딴 별명 ‘여날두’도 조심스레 반려했다. 여민지는 “부상 전에는 순간적인 힘과 스피드가 좋은 선수였어요. 하지만 지금은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의 제게 맞는 경기를 하다 보면 또 다른 별명이 생기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
여민지는 자신의 인생그래프가 2010년 이후 계속 하락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아마도 ‘부상 많은 선수’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제 그 이미지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할 차례라고 말한다. 여민지는 ‘골 잘 넣는 선수’로 기억되고프다. “이제 다시 올라가야죠. 점점 올라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아직 어리잖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