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문은 간결하고 친절해야 한다. 수습기자 시절 첨삭 지도를 받으며 하루에 서너 번씩은 꼭 들었던 말. 인이 박일 만도 한데 여전히 기사를 쓸 때마다 의식적으로 그 말을 되새기는 걸 보면, 간결하고 친절한 글쓰기는 영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기자가 되기 전까지 나는 글쓰기에 제법 자신이 있었다. 대단한 문장가까지는 당연히 아니어도 소위 ‘글 좀 쓰는 애’로서 친구 편지를 대필해 주거나 지인의 자소서를 손봐주는 정도의 일을 못 이기는 척 맡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쓰는 일기장에 우연히 남은 문장에 ‘오, 꽤나 그럴듯해!’하며 뿌듯해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기사문은 내가 좀 만만히 여겼던 분야다. 수사 없이 단순한 문장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쓰는 것이 뭐 그리 어렵겠냐는 오만한 생각이 있었다.
막상 기사 쓰는 것을 업으로 삼고 나서 글쓰기에 대한 내 자신감은 뚝 떨어졌다. 내가 간결하고 친절한 글을 쓰기 어려워한다는 것을 깨닫는 데 일주일도 안 걸렸다. 수사 없이 단순한 문장 하나 쓰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한/글 창에 바이라인(by line)만 겨우 적어 넣고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멍을 때렸던 시간이 참 많았다. 나름 핑곗거리를 찾아보자면 기자가 되기 이전에 썼던 글이라는 게 대학 4년 동안 줄줄이 제출했던 레포트나 시험 답안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때의 글이라면 대략 ‘있어 보이는’ 단어 선택의 반복과 은근한 중언부언으로 분량을 늘리는 데 집중했던 것들 아닌가. 학기말에 성적표를 확인하며 ’후훗, 이번에도 나의 무지를 감추는 데 성공했군!‘하며 만족하면 그만이었던,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데서 자신감을 얻었다는 게 귀엽기도 하고 가엽기도 하다.
모든 글은 하나의 가면(프리드리히 니체)이라지만,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글을 쓴다는 것이 내게는 늘 소프트 스팟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감춘다는 것은 진실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명확하다. 중학교 1학년 때 다니던 종합 학원 국어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그 학원은 서울의 유명한 입시 학원이 강릉에 첫 분점을 낸 것으로 일대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강사진 또한 서울에서 초빙됐는데,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딘가 새롭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약속된 것인지 지방 소도시에 적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인지 몇 개월 만에 서울로 돌아갔다.) 별명이 ‘곰탱이’였던 국어 선생님도 그중 하나였다.
그날은 전에 내준 작문 숙제를 돌려주며 피드백을 해주는 날이었다. ‘곰탱이’는 반에서 잘 쓴 글을 몇 개 뽑고 그 이유를 설명해 줬는데, 내 글도 포함이었다. 그는 내 글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태정이 글은 대회에서 상 받기 좋은 글이야. 대회 심사위원들이 좋아할 만한 글.”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잊히지 않는 말. 당시에는 ‘이게 칭찬이야, 욕이야?’하고 웃어넘겼지만, 지금도 글을 쓸 때 종종 그 말이 떠오르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유효타였음이 분명하다. 무언가 들통난 기분. 상처라면 상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곰탱이’를 더 신뢰하게 됐고 강의도 더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소위 ‘글 좀 쓰는 애’가 된 것은 초등학생 때 각종 글짓기 대회에 나가 상을 타오면서부터다. 그때는 글짓기 대회가 참 많았다. 과학의 달, 효경의 달, 호국의 달 등등을 기념하는 무슨무슨 글짓기 대회, 무슨무슨 독후감 대회, 무슨무슨 대기 백일장… 교내 대회, 시 대회, 도 대회 할 것 없이 나가기만 하면 꼭 상을 타왔다. 월요일 애국조회 때 조회대에 올라가 상을 받고 내려오면 반 아이들의 부러움 섞인 눈초리에 겸연쩍게 웃고는 했다. 아이들의 눈초리는 사실 상 자체보다 시상품을 향해 있었는데, 그것은 벽돌만 한 국어사전일 때도 있었고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일 때도 있었고 자전거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시상품으로 기억되는 내 글짓기 대회 수상의 역사는 ‘곰탱이’의 ‘그 말’과 함께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마침 사춘기가 온 것일 수도 있다. ‘곰탱이’는 적절한 구실이고 그저 머리가 커버린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고즈음 나는 내가 썼던 글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인정 중독에 빠진 아이가 어른들의 입맛에 맞춰 쓰는 가식으로 가득한 글. 어린 나이에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평가를 내린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글쓰기를 아예 놓아버리지는 않았던 것은 대견하다. 어쩌면 그때부터 비로소 글쓰기를 (몰래)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글을 ‘짓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조금 다르니까. ‘글짓기’에 앞서 ‘글쓰기’를 배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생긴 시행착오다, 지금 그렇게 생각해 본다.
여전히 글쓰기가 어려운 것을 보면 학부모들이 왜들 그렇게 조기 교육에 목을 매는지 알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나는 아직도 글에다 무언가를 감춘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해 자꾸만 덧칠을 한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담백한 글을 쓰고 싶다면서 막상 나오는 글은 어딘가 모호하고 뿌옇고 번져있다. 가끔은 부러 이중적인 문장을 써놓고 혼자 히히 웃는다. 그래서 너무 어렵다. 간결하고 친절한 글을 쓰는 것이. 뭐든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힘들다.
이것도 일종의 자의식 과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에다 나를 숨겨두고 글이 내가 되기를 바라는 것. 기사문이 어려운 이유는 기사에는 나를 숨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정보 전달이 핵심인 글에 자꾸 나를 숨기려고 하면 충돌이 발생한다. 그야말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를 잘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기자로서 경력이 쌓이면서 내가 노력한 것은 기사를 쓸 때만큼은 자의식을 맨 밑 서랍에 넣어두는 것이었다. 답답함을 참다 보면 가끔은 공들인 기획 기사에 나를 숨길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물론 기사문은 휘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서랍을 나온 자의식이 뛰어놀 시간은 매우 짧다. 그래서 이렇게 다른 글쓰기에 눈을 돌리는가 보다. 다 잘하고 싶은데. 내 것인 글쓰기도(그게 뭔데) 내 것이 아닌 글쓰기도 다 잘하고 싶다. 인정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뭐든 잘하고 싶고, 그중 첫 번째는 역시 글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