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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정 Jul 29. 2022

반경 100m 안에 여자가 나 하나뿐이다

 축구기자 사회는 남초다. 축구도 남초이고, 기자도 남초이니, 축구기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쩔 때는 정말 문장 그대로 ‘반경 100m 안에 여자가 나 하나뿐’이라 놀랄 때가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시대에 남자축구 취재를 위해 현장에 가면 선수, 지도자, 심판, 취재진, 관계자 할 것 없이 ‘나 빼고 다 남자’일 때가 많았다. 새삼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에는 등허리에서부터 스멀스멀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남초 사회에서 활동하는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장점, 그러니까 어떤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눈에 잘 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점도 역시 눈에 잘 띈다는 것. 눈에 잘 띈다는 것은 주목받기 쉽다는 것이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언행 하나하나에 쉽게 의미가 부여되고, 내가 결코 바란 적도 부탁한 적도 없는 특별(?) 대우를 받기도 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눈에 잘 띄면 배제되기도 쉬워진다는 것이다. 특별히(?) 무시당한다고나 할까? “여자가 축구기자를 해?” 이런 말은 너무 1차원적이라서 보탤 말도 없지만, 성인부 경기를 가면 “선수 여자 친구예요?”, 초등부 경기를 가면 “선수 어머니세요?” 이런 말을 들으니, 도대체 이 바닥에서 ‘일하는 여성’은 유니콘이나 해태쯤으로 여겨지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여자인 축구기자는 나 말고도 더 있다. 소수이지만 오랫동안 훌륭하게 커리어를 쌓은 선배 기자도 있고, 역시 소수이지만 나처럼 축구에 대한 애정으로 이 바닥에 뛰어든 후배 기자도 있다. 어떤 사회의 어떤 소수자 집단이 모두 그렇듯 우리는 ‘여기자’라는 호칭 아래 쉽게 일반화되고 쉽게 퉁쳐진다.


 몇 년 전 한 프로 구단의 전지훈련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선수단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한 구단 직원이 나를 선수들에게 소개하며 “축구계 최고 미녀 기자”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그 순간 사십 쌍 정도의 눈이 나를 향했고, 나는 눈 둘 데를 몰랐다.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올랐고, 나는 깨달았다. ‘나 빼고 다 남자’다. 나는 그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돼온 권력관계를 실감했던 것 같다. 몇 년이 지나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 이유다. 기자와 취재원 사이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수의 남성들 앞에서 평가의 대상이 됐다. 아마도 호의(?)였을 그 수식어가 나를 ‘한 명의 기자’가 아닌 ‘여기자 1’로 만들었다. 아직도 분한 감정이 드는 것은 의례적 칭찬(?)을 한 그 직원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이다. 나는 그냥 웃었다. 빨개진 얼굴을 좀 가렸던 것도 같다. 아마 과분한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여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지금이라고 해도 찡그린 표정으로 ‘예?’ 되묻는 것이 최선의 반응이겠지만, 이마저도 못했다는 것이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을 것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아쉬움은 차고 넘친다. ‘섹드립’을 가장한 성희롱이나 먼지처럼 날아드는 여성 차별적, 여성 혐오적 농담(?)에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반응은 딱 두 가지다. 못 알아들은 척하거나, 쿨한 척 받아치는 것. 나는 상황에 따라 두 가지 반응을 적절히 섞어 활용했다. 그러고는 곧장 후회했다. ‘방금 나 때문에 여성 인권이 한 50년쯤 후퇴했다.’ 이런 자책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잠들기 전에 문득 떠올라 이불을 발로 걷어차게 되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 또 생기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말아야지!’ 날이 밝도록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 밤도 많았다. 그러나 보통 두 번째 기회는 잘 주어지지 않는다. 트렌드에 맞춰 유형을 바꿔가며 반복되는 차별과 혐오의 발언들로 인해 나는 좌절의 기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설사 내가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이 바닥을 뜰지라도 이런 좌절에서 자유로워질 리는 없다. 남초 사회가 어디 축구기자 사회뿐일까? 사회 전체가 남초다. 일하는 데 여자, 남자가 어디 있느냐고 하지만, 당위와 현실은 구분해야 한다. 일하는 데 여자, 남자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며 다양한 여자, 남자를 만날수록 느끼는 것은 여자, 남자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이다. 성인이 돼 함께 일하는 여자, 남자가 쉽게 협화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여자, 남자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때는 출장을 다닐 때다. 지방 소도시나 군 단위 지역으로 출장을 갔을 때 회사의 정해진 예산 안에서 숙박 가능한 업소란 대체로 정해져 있다. 보통 방 전체가 담배 냄새로 찌들어 있고, 조명은 붉은색이나 푸른색이며, 냉장고에는 생소한 이름의 주스 캔이 한두 개 들어 있고, 티슈 갑에 성매매 업소 광고가 인쇄돼 있는, 그렇고 그런 모텔. 다른 것들은 다 차치하더라도 문 잠금장치가 허술하면 꽝이다. 심한 곳은 80~90년대 방문에 많이 쓰이던 똑딱이 단추가 전부다. 한국은 치안이 좋은 편이라지만, 경험적으로 체감되는 공포는 유럽이나 미주의 기숙사형 숙박 업소에서 혼숙을 할 때보다 한국의 모텔에서 혼자 잘 때 더 크다.


 그런 숙소에서 어쩔 수 없이 잠을 청할 때면 이중고에 시달린다. 내게 실제로 닥칠 수 있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첫 번째 고통이고, 내가 그런 두려움을 견뎌야만 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두 번째 고통이다. 물론 성별에 관계없이 그냥 겁이 많아서, 모르는 곳에서 혼자 자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출장지에서 만난 ‘남기자’들은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한 번은 취재가 끝나고 다른 기자들과 함께 술을 마셨는데, 같은 방에 숙박하는 두 명의 ‘남기자’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른 한 명에게 “문 열어 놓고 자고 있을 테니 알아서 들어오라”고 말했다.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모텔에서 문을 열어놓고 잔다고?’ 멀티버스도 아닌데, 같은 시공간에서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억울함이 몰아쳤다.


 세상에 태어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 시점부터 항상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여성들은 언제나(심지어 집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을 유지하며 산다. 대화를 나눠보면 개인 차는 있을지라도 안전에 대한 일상의 공포와 그에 따르는 무력감에 모두 공감한다. 내가 문제없는 듯 출장을 다닌 것은 특별히 용감해서도 아니고 충분히 둔감해서도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포기다. 내가 출장을 다니다가 여성 대상 범죄의 피해자가 되면? ‘어쩔 수 없지. 산재 처리나 됐으면 좋겠다.’ 당연히 나는 최선을 다해(어떻게 해서든)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터넷 어딘가에 공중 화장실이나 숙박 업소에서 불법 촬영된 내 모습이 돌아다닌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다.


 소수자의 사회생활은 그런 것이다.  자존감을 깎아먹는 온갖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의식적, 무의식적인 시도들로부터  멘탈을 지켜내며 다수자와 같은(혹은  ) 생산성을 발휘해야 한다. 실재하는 차별과 더불어  쉬듯 지불해야  심리적 비용이 있는 셈이다. 두려워하고, 참고, 해명하고, 자책하고, 검열하고, 싸우고, 좌절하고, 방황하고, 다시 일어나고다수자라면  필요 없었을 에너지들. 결코 계산되거나 인정되지 않을 비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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