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어른으로 인정받기
한가한 주말 오후, 남자친구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전화가 온다. 발신자는 부모님.
“부동산에 연락은 해봤니?”
핸드폰을 들고 카페 바깥으로 나왔다. 부모님은 바쁘냐고 물으시더니, 부동산과 어떻게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제대로 된 매물을 소개받았는지, 혹시 이상한 부동산을 만난 건 아닌지 등등.. 걱정이 꼬리를 물며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남자친구에게도 전화가 온다. 입모양으로 '부모님'이라고 하더니 남자친구도 카페 바깥으로 나와 통화를 한다.
통화가 끝나고, 남자친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매형이 은행에 있으니까, 연락해서 전세 대출상품 확인해 보라고 하시네.”
당시 다니던 회사에서는 복지 혜택으로 전세 대출을 좋은 조건으로 지원해 주었기 때문에, 굳이 은행 대출 상품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설명이 제대로 안 됐던 모양이다.
원룸에서 탈출하겠다며 이사 갈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집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일이 정말 어려웠다. 현재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있는지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아무래도 둘 다 이런 경험도 없고 지식도 부족하다 보니 부모님께서는 우려되는 점이 많았던 모양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괜찮다, 잘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우리가 이 상황에 대해 충분히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부모님 걱정을 어떻게 덜어드릴까 고민을 하다가,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회사일도 그렇고, 말로 전달이 안되면 글로 써야지!
우리는 노트북을 펼쳐 놓고 나란히 앉아 부모님께서 걱정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함께 이야기해 보고, 어떤 내용이 포함되면 걱정을 하지 않으실지 정리해 보았다. 지금까지의 통화 내용을 취합해 본 결과, 부모님의 걱정은 크게 3가지였다. 집은 어디로 갈 건지, 돈은 어떻게 구할 건지, 그 이후엔 어떻게 할 건지.
우리는 우리의 현재 자금 상황, 집 구매 계획, 대출 옵션, 그리고 미래 계획에 대해 내용을 작성했다. 집을 구하는데 얼마의 예산이 필요하고 부족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회사에서 지원하는 대출 상품이 은행에 비해 얼마나 이득인지, 이번에 전세 구하면 언제까지 거주할 생각이고, 결혼식과 출산 계획은 언제쯤으로 생각하는지 등. 부모님께서 특히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상세하게 작성했다.
작성한 보고서를 인쇄하고 비닐 파일에 담았다. 마치 회사 업무를 하는 것처럼, '나는 지금 상사를 설득하러 왔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부모님을 찾아뵀다.
각오가 통한 걸까.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정답이었다. 아니, 오히려 과했다!
작성한 보고서를 꺼내니 부모님께선 뭘 이렇게까지 했냐며 웃으셨다. 우리가 보고서를 작성해 왔다는 그 행동만으로도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제대로 해보려고 하는구나’라고 인정해 주셨고, 우리에 대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고 말씀하셨다. (보고서 내용은 따로 보지 않으시겠다고, 둘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으니 알아서 잘해보라고 격려의 말씀도 해주셨다.)
보고서의 효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보고서를 작성한 건 당장 집을 구하는 상황에 대해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 드리기 위해 했던 일인데, 부모님께선 집 구하는 것 이후로도 우리에 대해 아예 걱정을 놓으셨다. 우리는 '보고서 작성'을 통해 우리가 미래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하고, 얼마나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는지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던 것이다.
우리의 보고서는 우리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완전한 어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물론 우리가 부모님에 비해 경험이 부족한 만큼 지금도 필요한 경우에는 부모님과 함께 대화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지만, 부모님은 더 이상 우리를 '어린 자녀'를 대하듯 하지 않으시고 '어른 대 어른'이라는 동등한 입장에서 조언을 주신다. 우리는 그렇게 어른으로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