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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21. 2019

기생충 (Parasite, 2019)

선으로 구분지어진 사람들


    누구보다 뒤늦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봤다. 다 떠나서 근래 가장 흥미로운 관람 경험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처음부터 엔딩까지 따라갈 수 있는 영화는 흔하지 않으니까. 생각할 거리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만듦새가 훌륭해서 의문을 던질 일이 없다는 뜻이다.


칸에서 동양의 '가난'에 대한 영화에 왜 황금 종려상을 줬느냐 하는 말들이 있지만 어쨌든 난 충분히 받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나라의 영화든 어느 감독의 영화가 되었든 탄탄한 스토리와 만듦새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건 흔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봉준호 다운 영화였다. 특히 나는 120분 이상 넘어가는 영화를 정말 싫어하는데 - 농담으로 2시간 이상 넘어가면 감독의 자의식 과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말하곤 한다 - 2시간을 넘으면서도 지루할 틈을 안주는 영화라 좋았다.


봉준호 감독이 왜 처음 발표될 때 현장의 관계자들에게 앞으로 영화를 만나게 될 타 관객들을 위해 스포를 참아달라고 했는지도 알았다. 뒤늦게 봤지만 스포를 모르고 본 덕에 정말 긴장감 가득한 채로 따라갔다.


    당연히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니 배우 하나하나의 연기가 다 좋았다. 극 전반을 이끄는 건 이정은 배우, 조여정 배우, 최우식 배우다. 내가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던 이유도 세 사람 때문이었다.


우선 조여정 배우, 늘 그녀의 연기력에 한치의 의심도 해본 적 없다. 주어지면 주어진 걸 100프로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이 영화의 팔 할은 조여정-이정은 배우들이 했다고 본다. 누군가는 조여정의 연기가 늘 한결같다고 하는데 글쎄 다른 배우를 데려와도 그만큼을 해낼 수 있냐고 하면 나는 모르겠다. 그녀의 연기가 한정적이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 영화에서 여자 배우에게 주어지는 역할들이 한정적이라서 아닐까.


이정은 배우는 말 할 것도 없다. 정말 인터폰 신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왜 봉준호 감독이 현장에서 소름 끼쳤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비교적 부드럽게 흘러가던 극이 그 장면 때문에 뒤집힌다. 마지막에 캐릭터가 소비된 방식은 좀 아쉽지만.


최우식 배우는 예상 외였기 때문에 좋았다. <마녀>에서의 연기도 좋았지만, 사실 외모 때문에 맡을 수 있는 역의 한계가 큰 배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였다. 이런 얼굴도 있구나, 이런 감정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구나 싶었다.앞으로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궁금해서 보게 될 것 같은.


기대했지만 아쉬웠던 건 박소담. 사람들의 평에 비해 특별하다는 느낌을 못 받았다. 물론 다른 배우들과의 상대적인 이야기다.


    영화는 가난과 부를 완벽하게 구분 짓고, 선으로 좌우를 가르고, 위아래를 나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그들을 철저하게 구분 짓는다. 스토리만 생각하면 후반부는 꽤나 끔찍했다. 가난 때문에 일어난 일들, 그들의 삶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부자들의 시선 같은 것들. 잔인한 것도 잔인한 거였지만. 보고 있자면 고통스러웠다.


특히 이선균이 송강호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할 때, 집으로 돌아갔더니 홍수에 집이 다 잠겨 더러운 물로 가득할 때 관객도 같이 무너진다. 왜 이 영화를 보고 힘들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누군가에겐 이 영화를 보는 일이 꽤나 끔찍한 경험이 될 수 있었을 것 같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떠올린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물론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고, 등장인물들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계획한 일이든 아니든 비교적 대중성을 띠는 (장르를 비롯한 여러 요소를 떠나서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는 걸 대중성을 띤다고 말한다면) 면에서 완전히 결을 달리한다고 생각된다.


<설국열차>도 흥미롭게 봤지만, 이번 편이 훨씬 좋았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점이 있지만 그를 제외하곤 어쨌든 한국에서 자주, 쉽게 만날 수 있는 완성도의 영화는 아니니까 반가운 마음이 크다.


한국어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콘텐츠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도 기쁘다. 어렸을 때, 영화를 한참 막 좋아하기 시작할 때 전도연이 칸에 간 일이 참 충격적이었는데.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러서 매년 많은 우리 영화가 칸에 가더니 결국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영화를, 특히 한국 배우들이 한국어로 연기하는 작품을 제일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영화가 세계적인 상을 수상했다는 건 어찌 됐든 뭉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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