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범 Jan 31. 2021

1일 1 역 자세 챌린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챌린징 프로그램에 대하여


나에게 물구나무서기가 꼭 달성해야 하는 숙제가 아니라 연습 과정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즐거움과 의미를 느끼는 놀이이자 수련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수련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하면서 찾는 즐거움을 안다는 것이 매일의 연습을 시작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마음의 문턱을 낮춰주기는 하지만 아예 없애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여전히 막상 오늘의 수련을 해야 할 때가 오면, ‘좀 이따’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어느샌가 그 주문에 취해 밤까지 미루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시기에는 단기적인 목표를 설정해서 연습을 할만한 심리적 배경을 만들어놓는 것이 꽤 도움이 되었는데, 각종 챌린징 프로그램이 유용한 장치가 되곤 했다. 이 글에서는 내가 연습에 탄력을 받기 위해 시도했던 챌린징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과제 지향적/목표 지향적인 성향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특히 단기적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바짝 집중하고 결국 성취하는 데서 상당한 충족감과 자신감을 얻는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유행한 각종 챌린징 프로그램이나 애플리케이션들을 애용해 왔다. 물구나무서기 관련해서는 카카오 프로젝트 100(카카오플백)에서 누군가가 모집한 물구나무서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적이 있고, 지난여름에는 스스로 기획한 셀프 챌린징 프로그램도 해보았다.


일단 카카오플백의 경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100일 동안 매일 물구나무서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증하는 방식이었고, 참여를 위해 10만 원의 보증금을 내야 했다. 보증금 환급 제도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인증을 못할 때마다 일정 금액이 차감되는 방식이었고, 100일이 지난 후에 나는 7~8만 원 정도를 되돌려 받았던 것 같다. 약 10명 정도의 사람들이 참여했던, 작은 규모의 프로젝트였고 함께 진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교류도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100일', '매일' 같은 도전적인 문구들 때문에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얼마 가지 않아 억지로 혹은 가까스로 사진만 한 장 찍어서 인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날이 많아졌고, 그만큼 이 경험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졌다. 


10만 원이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음에도 인증에 대한 의욕이 별로 생기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해보면서 깨달은 것이지만, 날마다 일정이 유동적인 나와 같은 사람에게 '매일'이라는 규정은 너무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살다 보면 내 맘대로 안 되는 날이 분명히 있는데, 너무 빡빡하게 '매일' 인증을 해야 하니 뭔가 규칙에 매이는 느낌이 들었다. 인증을 하지 않으면 내가 낸 보증금에서 얼마가 차감되는지가 너무 명확하게 계산되다 보니 때로는 연습은 제대로 못하고서 사진만 겨우 찍어 올리기도 했고, 반대로 돈에 신경 쓰고 있는 내 모습이 오히려 짜증 나서 괜히 '에잇! 그깟 돈이 대수냐!' 하는 마음이 되어 그냥 포기해 버리는 날도 생겼다.


그래도 좋았던 것은 '물구나무서기 연습'이라는 것을 스스로 조금 더 가볍게 여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무 바빠서 인증을 위한 사진만 찍는 수준으로 몇 번만 올라갔다 내려오는 날들이 생겼는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아주 잠깐 연습하는 것이라도 나의 무드와 에너지에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억지로라도 사진을 찍으려고 하다 보니 어디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할 시간과 공간이 없는지를 호시탐탐 찾게 되었다. 전에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거나 잘 갖추어진 공간이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할 때가 많았는데, 플백을 하면서 꼭 갖추어진 환경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틈틈이 가벼운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그런 연습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그럼에도 내가 더 즐겁고 신나게 진행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많이 배우기도 했던 것은 오히려 셀프 챌린징 프로그램이었다. 일명 1일 1역 자세 챌린지.


이름이 뭔가 거창한 뉘앙스를 풍기는 것과 달리, 사실 나 혼자 단출하게 시작해서, 소소하게 진행하다, 가볍게 마친 그런 챌린지였다. 방식도 특별할 게 없었다. 연습하는 모습을 짧은 영상으로 촬영해서 인스타에 스토리를 올렸고, (인간적으로... 주말 빼고) 주 5일 인증, 약 6주 정도 진행해서 총 30회를 채운 후 자체적으로 마무리했다. 인증 여부를 검사하는 사람도, 걸어 놓은 보증금이나 성공 상금도, 같이 도전을 진행하는 동료도 없이 혼자 시작해서 혼자 끝낸 기획이었지만 다른 어떤 챌린징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때보다 더 충만하고 인상적인 경험으로 남았다. 


어쩌면 카카오플백에서의 아쉬운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는 셀프 챌린지에서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이런 부분들을 보완할 수 있었고, 그래서 더 좋은 경험이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카카오플백에서 도전 의지를 고무시키기 위한 장치였던 보증금과 환급 제도가 결과적으로 ‘돈 때문에 억지로’ 하게 만듦으로써 나에게는 실제로 역효과를 발생시킨 것에 비해, 셀프 챌린징은 돈 같은 것을 걸 필요도, 내 인증 내용을 검사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자율적인 에너지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루하루 인증을 하는 행위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고, 인증 방식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정해진 기준이나 틀이 없었기에 자연스레 오늘은 어떻게 ‘재밌게’ 해 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그 아이디어들에 따라 더 재밌게 이것저것 시도했던 것 같다. 


인증을 위해 영상 매체를 활용했던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몸을 쓰는 활동들이 그런 것처럼 물구나무서기 연습 역시 올라가서 균형을 잡은 순간을 포착하는 것보다, 그 과정에서 내 움직임의 질이나 결이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더욱이 이렇게 인스타그램에 올릴 영상을 촬영하면서 스스로 내 움직임을 분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습 자체에도 도움이 되는 인증 방식이었다. 사실 혼자 연습을 하다 보면 객관적으로 봐주는 눈이 없기에 연습이 정체되기 쉬운데, 촬영을 통해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외부의 시각에서 보니 내 몸의 내부 감각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던 객관적 정보들을 얻고 발전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여기에 간혹 인스타 친구들로부터 받는 응원 메시지는 덤이었다. 그런데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도 느끼지만, ‘덤’은 별 것 아님에도 사람 기분을 참 좋게 만든다. 앞에서 혼자 시작해서 혼자 끝냈다고 썼고 그게 실질적으로는 사실이지만, 친구들이 보여준 관심이 없었다면 과연 끝까지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친구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낸 것은 아니었고 인스타 메시지를 통해 간혹 “멋져!”라던지 “많이 늘었다!” 같은 짧은 메시지를 보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응원은, 보증금을 깎아 먹는 것에 대한 아까움 보다는 훨씬 큰 격려와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요즘도 주변을 보면 ‘좋은 습관을 만들어 주겠다’는 많은 챌린징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를 볼 수 있고, 심지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어떤 챌린징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챌린지들은 보증금이든 상금이든 돈을 걸어 참여자들의 의욕을 자극한다. 어찌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효과 있고 쉽게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끌어낼 수 있는 방식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챌린징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면, 과연 이런 방식이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나에게 있어서 물구나무서기는 일종의 놀이이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창이고,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는 수련이다. 이런 의미를 알지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 항상 나의 의지를 불태우기는 어려울 때가 있기에 챌린징 프로그램들을 수단처럼 활용한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된다면 애초에 챌린징을 함으로써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던 활동의 재미와 의미마저 퇴색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챌린징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인증을 하는 행위가 애초에 목적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내가 습관화하고자 하는 행위를 통해 느끼고자 하는 가치와, 인증하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주는 충족감이 일치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가령 나의 경우에 물구나무서기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물구나무서기를 인증하는 과정에서도 즐거움을 느끼고, 나 자신을 볼 수 있고, 나의 한계에 도전할 수 있어야 더 의미 있는 도전이자 경험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커버 이미지: Gelard Yambao 님의 사진, 출처: Pexels.com

매거진의 이전글 찌질하게 꾸준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