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범 May 15. 2022

우리 그냥 자랑하게 해 주세요

조회수 4만을 바라보며 제대로 기뻐하기

며칠 전 오랜만에 쓴 한 편의 글이 난데없이 조회수가 치솟더니 지금은 4만에 가까워졌습니다. (이전 글 <너 월 300은 버니?>​) 차분히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해보기로 했는데 덕분에 초장부터 마음이 산란해졌죠. 여전히 얼떨떨해요. 이 글은 지금껏 내가 세상에 내놓은 것들 중에 가장 많은 사람에게 도달한 것이 되었으니까요.


'잘하고 싶다. 잘해야 한다. 다음번에는 더 잘해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내가 마냥 가벼워지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음에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눈치를 봅니다. 글에 대해 고민하고 쓰는 시간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겨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4만이라는 숫자는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 충분한 커다란 자극입니다. 이 자극 앞에서 나의 '하고 싶다'는 너무도 쉽게 '해야 한다'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럼에도 꿋꿋이 지금 내가 쓰고 싶은 글은 무엇 일지에 천착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요동치는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는 것을, 흘러넘칠 것 같은 감정들을 글에 담아내고 싶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회수가 마구 올라가던 첫날 밤에는 막 심장이 쿵쾅거렸어요. 신이 난 거겠죠? 그런데 왠지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인데요. 스치듯 지나가는 한 번의 관심이라고 할지라도 받아보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요? 왜 나는 묘하게 스텝이 꼬인 느낌을 받는 것일까요? 이 두근거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일상에서 벗어날 만큼 크기가 크면 긍정적인 자극도 스트레스가 되나 봅니다. 화들짝 놀란 마음을 워~워~ 해보려는 건지 어떤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조회수가 대체 뭐라고? 3만이면 어떻고 10만이면 어떤가? 애초에 나 좋자고, 나를 위해서 쓴 글이잖아. 연연하지 말자!'
이 사건이 나에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자신을 설득하고 싶나 봅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겸손함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이런 일로 일희일비하지 마. 그런 건 자랑하는 거 아니야.'
이 목소리는 한 발짝 나아가 스스로를 깎아내리기도 하죠.
'네가 잘해서 사람들이 클릭을 하는 줄 아니?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니고?' 심지어 브런치 괴담을 상기시켜주기도 합니다.
'브런치에서는 오래 활동 안 하던 사람이 글쓰기 재개하면 한 번씩 밀어준다던데 너도 그런 거 아냐?'

나는 어쩌면 이 상황이 불안한 것이 아니라 신나 하는 자신을 보는 것이 불안한가 봅니다. 나는 왜 그저 신나지 못하는 걸까요?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 성적을 자랑하다가 엄마께 꾸중을 들을 적이 있습니다. 당시 연년생인 언니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전교 이십몇 등을 했었고, 저는 초등학교에서 전교 3등인지를 했더랬습니다. 어느 날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와 엄마의 동료 선생님과 언니와 나 이렇게 네 명이서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늘 겸손하게 행동할 것을 강조하셨던 엄마로서는 이례적으로 동료 선생님께 언니의 학교 성적을 자랑삼아 이야기하셨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부를 하느라 공부와는 담을 쌓았던 언니가 중학교 들어가서 제법 공부를 잘한다고 대견해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저는 나도 이번에 전교 3등 했음을 상기시켜드렸는데요. 엄마는 "얘가! 그런 거 자랑하는 거 아니야. 초등학교 성적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황급히 제 말문을 막아버리셨습니다. 당시 저는 꽤나 강한, 어떤 감정을 느꼈습니다. 민망하고 수치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엄마도 언니도 이 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저만은 당시 상황과 풍경까지 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과 기억에 대해서 엄마를 비난하고 싶은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리고 그렇게 겸손함이라는 사회적 행동 양식을 배웠고, 이로 인해 제 삶에서 혜택을 받을 점도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위 문단은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엄마를 탓하고 싶지도, 글을 읽는 분들께 엄마를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적은 생각들 같은, 지금의 나에게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머릿속 만트라들, 자동적인 생각들의 뿌리를 찾다 보면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 저 사건이기에 빼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렇기에 나를 위해 쓴다는 이 글쓰기의 목적을 되새기며 다시금 마음을 잡아 봅니다.


얼마 전 <이타주의자의 은밀한 뇌 구조>라는 책에서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설명을 읽었습니다. 거칠게나마 옮겨 보자면 대략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항상성이 깨지는, 그로써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 오면 생명체는 다시 항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적응 행동을 해야 한다.
-'감정'은 나의 항상성을 깨뜨리는 상황에서 적응 행동이 필요하다고 뇌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이다.
-이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우리가 선택하는 적응 행동이 달라진다.

이례적인 사건을 맞아 꽤나 강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저는 지금 이 감정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그에 따라 지금 나에게 적절한, 가장 필요한, 나라는 존재를 가장 잘 굴러가게 할 적응 행동은 무엇일까요?


위에 적은 저의 마음속 목소리들은 내가 어떤 성취를 이루었다 느끼는 상황에서 나에게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목소리를 들으며 신난 스스로의 모습에 대한 묘한 수치심을 되새기고, 기쁨, 들뜸, 자랑스러움과 같은 열정적인 감정들을 잠재우는 것이 저의 하나의 인지 패턴이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성적은 자랑하는 게 아니라던 엄마의 말씀에 자극받아 기어이) 중학교 때 처음 전교 1등을 했을 때도, 연극 공연을 한 후 친구들이 제 연기가 좋았다고 칭찬을 해 주었을 때도 비슷한 사고의 패턴을 거치며 펄떡이는 심장을 달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건대, 저에게 꼭 필요한 적응 행동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판단이라는 미명 하에 '넌 별 거 아니야. 네가 한 일도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주고 있었으니까요. 평정심이 되찾아졌다기보다는 평정심을 가장하는 법을 배웠고, 그렇게 겸손함의 가면을 쓴 채로 스스로 잘한 것을 박하게 평가한 후에는 다음 스텝을 어디에 어느 방향으로 놓아야 할지 혼란스러워지곤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만족스럽고 행복하게 해 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번에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려고 합니다. 어디 한 번 제대로 일희일비해보려고 합니다. 이 사건이 작은 일인지, 큰 일인지, 남들이 인정해주는지 아닌지, 운이 얼마나 좋았던 것인지 상관 않고 내가 잘한 것들을 보아주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들뜬 기분을 누려보고 싶습니다.


셀프 칭찬 목록

-눈길을 끄는 제목을 선정했다.
조회수가 이렇게나 올라갈 수 있었던 건 제 글이 다음 메인 화면에 노출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포털에서 클릭해서 들어오는 분들은 제목을 보고 들어오시겠죠. 아무 맥락이 없어도 "너 월 300은 버니?"라는 제목이 많은 사람들의 어떤 기억을, 그리고 그 기억과 붙어있는 강렬한 감정을 소환시켰던 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섬광처럼 찾아온 영감님께 박수를!

-포기하지 않고, 한 편을 완성했다.
며칠 전 오랜만에 글을 썼던 날 다시 글을 써보겠다고 카페에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 하나와 커피 한 잔을 다 먹고 마실 때까지 한 자도 쓰지 못한 채 앉아만 있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고 막막해서 몇 시간 동안 끄적이다 지워버렸다, 장을 펼쳤다 덮었다 마냥 시간만 보내다 거의 그냥 집에 갈 뻔했죠.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떠오른 글감은 단단히 붙잡았고 결국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영감님을 기다려준 인내심에 박수를!

-꾸준히 쌓아온 글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조회수 급등 사건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던 것은 다른 글들의 조회수가 함께 올라갔던 점과, 꽤 여러 분들이 구독과 좋아요를 눌러 주신 일이었습니다. 유투버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가 정말 그렇다는 것을 느꼈죠. 브런치에 로그인을 해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나 구독을 누르는 것이 퍽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간 이렇게 반응을 보여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비록 글쓰기를 못하며 1년 여 지내 왔지만, 그전에 써. 놓았던 글들이 없었다면 이런 어려운 선택을 해주신 분들이 많지 않았을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짧은 글 한 편으로는 제가 어떤 생각을 어떻게 글로 쓰는 사람인지 읽는 분들이 알 길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간의 성실함에 박수를!


뻔뻔하게 스스로를 치하하는 글을 쓰고는 있지만 사실 이 글의 발행 버튼을 누를 생각을 하면 여전히 쑥스러움에 얼굴이 벌게집니다. 그래도 기분 좋은 일은 기분 좋게 자랑도 하고, 대차게 스스로에게 박수도 한 번 쳐 주고 가려고 합니다. 그래야 이 벌떡이는 마음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 월 300은 버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