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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bbie May 30. 2022

스웨덴 석사생의 졸업 논문 제출, 그리고 그 후

분석부터 제출까지의 소용돌이. 제발 졸업시켜주세요.

"교수님, 저는 4월까지는 논문 초안을 모두 작성할 거고, 5월에는 수정만 하려고요!"


4월 이스터 직후, 수퍼비전 미팅을 마치면서 신나서 교수님에게 나의 계획을 떠들었다.


"그러면 딱 2주만 고생해!"


5월 16일 졸업 논문 제출 마감일이 있는 그 주의 주말에 4년에 한 번씩만 열린다는 룬드 카니발이 있으니, 알잘딱깔센! 논문을 제출하고 마음 편히 놀고 싶었다. 교수님은 좋은 계획이라고 하시면서 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셨는데, 그때 그 의미를 좀 알아차렸어야 했다. 가장 집중이 필요한 그 시기가, 하필 또 벚꽃 만개 시즌일 건 또 뭐람. 논문 쓰는 것 빼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재미있어 보였다.


[연구가 재밌어!?]


3월 말까지 인터뷰를 완료했다. 인터뷰 참여자를 모집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약 한 달에 거쳐서 총 10명의 인터뷰 참가자를 모집했고, 2주 정도에 나눠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학부생 때도, 석사를 하면서도 몇 번 과제로 해봤던 녹취록으로 기록되었는데, 이전의 경험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터뷰 당 인터뷰에 소요된 시간의 약 3배가 걸렸다. 하지만 녹취록을 완료하고, 그 내용을 분석하는 과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혼자 너무 신나서, 분석 결과를 하루빨리 지도교수님에게 공유하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분석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기에, 여기에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많은 국제 학생들이 나처럼 자국의 케이스로 연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통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이슈가 어느 단계에서 번역을 할 것인가 였다. 영어권의 나라가 아닌 경우, 데이터가 다른 언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엔 이를 논문에 쓰기 위해선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연구자의 책임이었는데, 나는 분석까지 마친 후, 분석 결과에 쓰이는 데이터를 번역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야, 번역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언어적 의미의 차이가 연구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연구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결정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있어야 했다.


이런 과정들을 경험하면서 어느 순간, PhD 포지션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에게 연구에 대한 흥미가 폭발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논문이 여러 의미로 위험한 존재인 것 같았다. 물론, 이 생각은 실제로 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하면서 '연구가 재밌어'에서 '연구는 재밌어'로 다시 한번 뒤집히고 말았지만 말이다.


[하루에 1,000 단어는 껌이지]


마지막 한 달은 거의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SOL 도서관 3층에 있는 Quite study zone에서 머물렀는데, 평소에는 사람이 정말 없는 곳이지만 나처럼 당장 논문 작성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인지, 이 기간 동안에는 사람이 꽤 북적북적했다. 그래도 거의 마지막에 남는 건 나 혼자라, 아주 기분 좋게 스터디 존의 조명을 끄고 집에 돌아가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괜스레 뿌듯했다.


마지막 달은 분석까지 마무리된 단계였기 때문에, 논문 작성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초반에는 따로 글자 수를 세면서 진행상황을 체크하지는 않았는데, 2주쯤 지나서 확인해보니 하루에 약 1,000 단어를 쓰고 있었다. 예전에 5,000 단어 분량의 에세이를 쓸 때는 하루에 500 단어가 최대치였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내가 게을렀던 것이라 반성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초인적인 힘을 내고 있는 것인지 살짝 헷갈렸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나는 집에서 혼자 공부를 하고, 글을 작성하는 것을 꽤 효율적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기 시작해보니, 확실히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구나 깨달았다. 아주 가끔 학교 캠퍼스까지 이동할 시간도 없이 바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주 조금의 소음과 모두 공부하는 분위기의 학교 도서관이 나의 공부 생산성을 도와주는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겐 도서관에서 함께 만나서 공부하는 스터디 버디가 있었다. 그냥 정말 만나서 공부하고 밥 먹고, 가끔 논문 진행 상황을 서로 물어봐주기만 했는데, 서로에게 정신적으로나 공부 생산성에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거래를 한 것은 단 하나, Acknowledgement에 서로의 이름 써 주기였다.


도서관에서 보던 봄 풍경. 덕분에 정말 힘들었다. (Photo: Debbie)

[나의 마지막 세미나]


우리 전공에는 약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다른 대학 혹은 다른 전공의 교수님을 초빙해서 진행하는 세미나가 있다. 석사생만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고, 박사생, 교수진 등 모두 참석할 수 있어서 세미나의 수준이 비교적 높다. 다만, 필수 참석을 요구하지는 않아서 석사생의 참석 비율이 높지는 않은 편이다. 나의 경우, 우리 학부의 헤드이기도 한 지도교수님이 정말 친절하게 매번 각 세미나가 어떤 식으로 내 논문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설명해 주시면서 참석을 추천해 주셨기 때문에 논문 학기 동안 모든 세미나를 참석했다. 사실 4월 세미나는 참석할지 말 지 고민이 참 많았다. 당장 논문 작성 때문에 하루에 한 시간이 소중한데, 세미나에 참석하면 최소한 세 시간은 그냥 지나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번 세미나가 석사생으로서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세미나였기 때문에, 차라리 잠을 줄여서라도 참석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세미나 그 자체보다도 나에게 행복하면서도 미묘하게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준 에피소드가 있다.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 스몰토크를 짧게 나누었는데, 지도교수님이 내 졸업 논문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 얘기를 들으며 다른 교수님들도 굉장히 흥미롭다고 반응해주셨고, 나도 내 논문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기회를 얻었다. 나는 조금은 멋쩍었지만, 누군가 나의 연구 주제를 이렇게 좋아해 준다는 게 참 기뻤다. 아무리 박사생, 교수님들이라도 내 연구 주제에 대해서는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알고 있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줬다는 게 참 뿌듯했다. 즐거우면서, 감사하면서, 긴장되면서, 아주 복잡한 감정이기도 했다.


[이게_정말_진짜_파이널_최종]


논문 제출 4일 전, 지도교수님의 마지막 피드백을 받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작성하고 또 업데이트를 한 논문 파일을 공유했다. 그리고 딱 5시간이 걸려,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았다. 그런데 파일을 열어보니, 교수님의 피드백이 담긴 빨간색 글씨가 정말 많았다. 정말 정말 많았다. 아주 세세한 부분에 대한 피드백이 많았다. 그렇게 교수님의 피드백을 반영해서 논문을 한 차례 수정해 보니, 맙소사. 무려 3,000 단어가 날아갔다. 논문 자격이 되려면 20,000~23,000 단어가 되어야 하는데, 고작 18,000 단어가 되어버렸다. 3,000 단어는 타격이 좀 컸다. 그동안 내 논문 생산성은 하루 1,000 단어가 최대치였는데. 이대로라면 최종 점검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논문을 제출하게 생겼다는 걱정이 덜컥 들었다. 하지만 걱정을 하고 있을 시간조차 아까웠다. 날려버린 3,000 단어를 업데이트된 내용으로 복구하는 데에는 딱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렸다.


이 내용을 지도교수님께 다시 한번 공유했는데, 답변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아주 미세한 부분에 대해서만 수정을 요하는 피드백을 받았고, 업데이트 이후에는 바로 제출해도 좋겠다는 교수님의 의견을 받았다. 드디어! 마지막으로 피드백을 받은 부분을 수정하는 데에는 약 반나절 정도가 소요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계속 논문 전체를 몇 번씩 돌려 읽어가며 문법적인 오류, 오타 등이 있는지 검토했다.


"아, 이게 최선이다."


이제 잠을 좀 잘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나는 아까 분명히 해가 지는 걸 봤는데. 커튼을 열어보니 세상이 밝았다. 그제야 시계를 확인하니 오전 5시 반, 이른 아침이었다. 하하. 웬만해선 밤을 새우지 않는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약 2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오전 시간을 활용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오후에는 친구와 논문을 제본하러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때가 점검을 위한 마지막 기회였다. 시간은 정말 훌쩍 지나갔다.


프로그램에 따라, 졸업 논문 프린트와 제본 비용을 프로그램 측에서 부담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프로그램의 경우는 따로 지원이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 비용으로 지불했다. 가장 효율적인 프린팅과 바인딩 서비스를 같은 전공 친구들과 함께 알아본 결과, 프린팅은 그냥 학교 도서관에서, 바인딩은 Lexis Papper라는 문구점에서 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Lexis Papper

주소: Klostergatan 3F, 222 22 Lund

Soft-binding 가격: 바인딩을 요하는 페이지의 수가 모두 합쳐 100장 이상일 경우, 권당 80 SEK (2022년 봄학기 기준)

Soft-binding 시간: 10~30분 소요 (2022년 봄 학기 기준)



사실 프로그램에서 요구한 것은 논문 2권이었지만, 나는 개인 보관용으로 하나를 가지고 싶어서 총 3권을 만들어서 바인딩에 총 240 SEK를 지불했다. 제본 서비스를 맡기고, 친구와 근처 카페에 가서 짧은 피카를 하고 오니 깔끔하게 바인딩이 되어있는 정말 최종 완성본 논문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이와 별도로, 온라인 LUP에 논문을 등록해야 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 논문이 퍼블리싱되는 것은 아니고, 논문 디펜스가 끝난 후 성적을 받고 나서야 프로그램 외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도록 퍼블리싱이 된다.


제본까지 완료된 나의 논문 (Photo: Debbie)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논문 제출을 끝내고 긴장이 풀렸는지, 11시간을 내리 잤다. 주변에서 논문 제출을 끝낸 것에 엄청난 축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논문 제출이 끝은 아니다. 아직 나에게는 마지막 과제, 논문 디펜스가 있다. 올해 우리 프로그램의 논문 디펜스는 5월 30일부터 6월 3일까지 총 5일에 거쳐서 이루어지는데, 나는 비교적 앞 순서인 둘째 날에 디펜스를 하게 되었다. 디펜스에서는 내 논문만 신경 써도 안 된다. 논문 디펜스를 하게 되는 학생들은, 다른 학생의 논문에 대해 질문을 하는 student rapporteur가 된다. 나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이 역할이 정확히 무엇인지 조금 헷갈려했는데, 가이드라인에는 아래와 같이 나와있다.



Student Rapporteur


As a student rapporteur, you will be allocated a thesis by the course leader and asked to act as a reader. You can prepare for this by reading the thesis, making notes and writing comments on the student’s thesis topic and questions that will be covered in the examination relating to the thesis aims and objectives, research questions, literature review, methods, and analysis. As a student rapporteur you are asked to briefly summarise the thesis, making notes for each chapter, and also making notes on the general contribution to knowledge of the thesis. You are also asked as a student rapporteur to discuss specific aspects of the thesis with the writer. Upon completion of the seminar, you will receive a pass/fail grade as a student opponent.



학생들은 최대 1시간의 디펜스를 가지게 되며, 15분은 Student Rapporteur와, 20-25분은 Examiner와,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그 외의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 오픈 디스커션 시간으로 구성된다. 논문 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student rapporteur와 examiner는 디펜스 열흘 전에 공개된다. 내가 준비해야 할 것은 말 그대로 디펜스. 나의 논문을 방어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프로그램은 디펜스에서 방법론에 관한 질문이 많다고 알려져 있어서, 방법론에 관한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들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내 지도교수님은 지도 학생들을 불러 각자의 논문에 대해 어떤 질문들이 들어올 수 있는지, 예상 질문 리스트를 공유를 해 주셨다. 물론, 이것은 우리 지도교수님의 시각에서 나온 질문이고, 실제로는 어떤 질문이 나올지 확신할 수는 없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디펜스까지 단 하루가 남았다. 내 지도교수님은 디펜스를 위한 몇 가지 팁을 주셨다.


1. 용기를 가질 것. 2만 단어가 넘는 논문을 제출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대단한 일을 한 것이다.

2. 자신감을 가질 것. 나의 논문은 어차피 내가 가장 잘 안다.

3. 동시에 겸손할 것. 100% 완벽한 연구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연구의 한계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자.

4. 필요하다면, 질문을 받는 동안 노트 테이킹을 해도 좋다.

5. 답변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질문은 시간을 두고 답변해도 전혀 문제없다. 마지막으로 미뤄서 답변하겠다고 해도 괜찮다.

6. 디펜스 하는 동안 해당되는 논문 내용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논문을 곁에 둘 것.


교수님의 엄청난 격려와 응원을 받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떻게 보면 길었고, 어떻게 보면 짧았던 나의 논문 학기가 이 디펜스로 종료된다니 감정이 복잡하다. 논문 학기의 종료는 (패스를 받을 수 있다면) 곧 졸업이고, 나의 유학 생활이 끝난다는 것이니까 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돌아봤을 때 그동안 꽤 성실하게 잘 해왔듯, 마무리도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고생했다, 나 자신! :)




커버 이미지 Cover Image (Photo by Ekrulila: https://www.pexels.com/photo/person-holding-diploma-2293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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