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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Feb 23. 2023

23-5. 경양식집에서

우고의 서재 _ Hugo Books

경양식집에서


경양식이라 하면 가벼운 서양 음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수프-돈까스-후식' 으로 이어지는 코스 음식을 일컫는 경우가 많다.

돈까스는 서양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언제나 그렇듯 이 음식을 한국스럽게 변형시켰다.

'카츠'로 불리는 일본식 돈까스가 고기를 두껍게 썰어 튀기는 것이 특징이라면, 우리나라의 돈까스는 고기를 얇게 다져 튀겨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양식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각 레스토랑 마다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대부분 전식으로 수프와 빵이 나오고, 메인으로 샐러드, 마카로니, 시금치 등이 돈까스와 한 접시에 나온 뒤, 디저트로 커피나 오렌지주스 그리고 아이스크림 등이 제공된다.

우리나라에서 돈까스는 일종의 밥반찬으로 여겨지기도 했기에 밥이 같이 나오는 것도 일반적이었는데, 어릴 때 경양식 집에서 식사를 하면 하얀 접시 바닥에 얇게 펼쳐진 채로 나오던 흰쌀밥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돈까스를 찍어 먹던 포크의 뒷면으로 밥을 꾸욱 눌러 소스와 함께 밥을 먹었던 게 지금도 떠오른다.

지금만큼 먹거리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특별한 날 가족들끼리의 외식은 거의 경양식 집으로 향했던 것 같다.

멀리 불국사와 석굴암을 품고 있는 토함산이 보이던 구정동에 살 때, '녹색지대'라는 경양식 집이 있었는데, 자주 가족들과 함께 방문했던 기억이 있다.

부드럽고 담백한 수프의 맛과 새콤달콤한 돈까스 소스와 잘 튀겨진 돼지고기의 맛이 오랜 기간 지났지만, 어제 먹은 음식처럼 선명히 떠오른다.

그리고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경주역 앞 흥국생명인지 교보생명인지 경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상층부에 있었던 경양식집도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직사각형의 커다란 어항이 있었고 음식이 나오기 전, 형과 함께 물고기들을 구경했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저마다의 추억이 담긴 경양식집이 한 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요즘 친구들은 경양식이라는 이름조차도 낯설어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경양식집에서>는 '피아노 조율사의 경양식집 탐방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말 그대로 피아노 조율사가 전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혹은 여행을 다니며 방문한 경양식집에 대한 이야기다.

남초 회사 앞에 있는 '백반집', '제육덮밥집', '국밥집'과 함께 '돈까스집'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돈까스는 아마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음식일 것이다.

피아노 조율사인 책의 저자 조영권 작가는 조금 더 나아가 돈까스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돈까스를 시켜놓고 수프가 나오면 소주와 함께 반주로 즐기는 진정한 매니아 말이다.

책에는 조영권 작가가 살고 있는 인천을 필두로 서울, 이천, 수원, 속초, 울산, 군산 등 다양한 도시의 노포들이 등장한다. 소개되는 경양식집에 특징이 있다면, 오랜 기간 영업을 한 가게들이라는 점과 가격이 저렴하고 경양식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사장님들이 운영한다는 점이다.

요즘이야 돈까스가 일종의 분식처럼 여겨져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90년대만 해도 고급 음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호텔 출신의 주방장들이 경양식집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프도 직접 만들고, 깍두기도 직접 담그고, 돈까스도 정성껏 두들기고 반죽을 입혀 튀겨내는 전통 그리고 정통 경양식집의 돈까스를 김밥천국의 돈까스가 이겨낼 수 없는 게 당연함에도 노포들이 이제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경주에 가면 부모님이 늘 물어보신다. "효민아 경주에 오랜만에 왔는데 뭐 먹고 싶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늘 한결같다. "나나 돈까스 먹을래요"

나나돈까스는 레스토랑도 아니고 배달 전문점인데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양식 돈까스의 맛이 나서 자주 생각이 나는 식당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니 계속해서 나나돈까스가 생각났다.

책에 등장하는 경양식집도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려면 인건비를 아껴야 하니까), 나나돈까스도 부부가 함께 운영하신다.

아무쪼록 오래오래 돈까스를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돈까스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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