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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효민 Mar 27. 2023

불편해서 편한 전시 : 마우리치오 카텔란 WE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 WE》 전시 관람 후기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전시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우리치오 카텔란 WE>를 이야기할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이탈리아 출신의 현대미술작가로 조각을 베이스로 활동하는 행위예술가이기도 하다. 카텔란의 작품은 어딘가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정상이라 여겨지는 것에서 빗겨나간 풍자와 해학을 보여준다.

상식과 정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국인들의 기본적인 성향을 생각해 본다면, 카텔란의 전시가 왜 리움미술관 예약 시스템에 오픈되자마자 매진되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카텔란의 작품을 보며 소위 말하는 일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카텔란의 해학은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메인 게이트와 전시장 입장을 기다리는 홀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시장 입구에는 마치 걸인처럼 보이는 인물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쓰러져 있는 것과 같은 그의 조각이 놓여 있고, 홀에는 공항에서 밤을 새우며 환승을 기다리는 여행자 같은 인물이 무척이나 현실감 있게 비치되어 있다.

인간은 경제발전과 맞물려 장소에 맞는 매너와 톤이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규정화 해왔다. 순수예술 혹은 고급예술이라 불리는 클래식 공연과 전시장에서 지켜야 하는 수많은 규칙들이 그렇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전시에 앞서 관람객이 미술관을 가장 먼저 경험하는 장소에 소위 어울리지 않는 인물들을 존재시켜 전시의 권위와 무게를 스스로 내려놓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관람객은 전시와 마주할 준비를 채 마치기 전에 이미 카텔란을 만나버린 셈이다.


카텔란은 자신을 형상화한 조각들을 공간 여기저기에 비치함으로써 풍자를 시작하는데, 타인의 모습이 아닌 자화상인 것은 (내가 해석하기에) 대상을 타자화하여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에서 그 누구도 완벽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의 작품 중 눈에 들어왔던 것은 금기시되는 것들에 대한 도전이었는데, 이번 전시에는 없지만 이탈리아인들의 삶이자 인생이라 불리는 축구에 대한  비판이라든지(정확히 말하면 축구와 연루된 정치 및 경제계의 부패), 그들이 아버지라 부르는 교황이 운석에 맞아 쓰러져 있다든지, 너무나도 성스럽게 여기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의 벽화를 카피해 놓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시스티나 성당의 복제가 조금은 감동으로 다가왔는데, 유럽의 성당에 그려진 벽화들은 그 당시 가톨릭의 권위와 권세를 자랑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성경 책이 귀했고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는 일반인들이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고, 보더라도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추억으로 남길 수 없게 되어있다. 하지만 카텔란은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 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난 이게 종교계에 던지는 카텔란의 메시지로 느껴졌다.

만약 하나님이 있다면, 교황이 운석에 맞는 조각을 만들었다고 해서 카텔란을 지옥으로 보내버릴까? 오히려 칭찬하며 천국에 함께 있도록 하지 않았을까?


이탈리아 사람들뿐 아니라 유럽인들에게 금기시되는 히틀러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는데, 뒤에서 볼 때는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이 기도하는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으나, 작품의 조각을 정면에서 봤을 때는 악마와 같은 인물인 히틀러가 있는 것에도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히틀러가 화가를 꿈꾸었던 예술가 지망생이었다는 지점은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히틀러가 수많은 육체를 전쟁 가운데서 죽어가게 만든 인물이 아닌 예술을  통해 수많은 영을 풍요 속에 살아가게 만든 인물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또한, 경찰로 대변되는 국가 공권력에 대한 풍자도 의미가 있었다. 프랭크와 제이미라는 이름을 가진 경찰 두 사람이 거꾸로 뒤집힌 채로 존재하는 것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마주한 일종의 무정부 상태를 의미한다. 대규모의 참사 가운데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것을 카텔란을 보여주고자 했다.


금기시되는 것에 대한 풍자와 해학으로 소개하는 마지막 작품은 <모두>라는 작품이다. 전 세계 사람들 중 누가 봐도 이 작품 앞에서는 숙연해지고 어딘가 슬픈 마음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미디어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익명의 죽음들' 때문일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군가의 죽음은 자극적인 콘텐츠로 제작되고, 인간의 존엄은 그렇게 상실되는 것을 우리는 SNS의 범람으로 뼈져리게 체험하고 있다.


이번 전시가 금기시되고 불편한 것들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것에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전시였으나, 뜻밖의 위로를 받아 개인적으로 큰 감동을 느꼈던 전시이기도 했다.


갤러리스트인 '마시모 데 카를로'를 덕트 테이프로 벽에다가 붙여버린 작품이었는데, 미술계에서 일종의 '갑'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을 벽에 고정시켜 버림으로써 주도권을 잃어 '을'로 바뀐 모습이 너무 재밌었다. 하지만 카텔란의 이 작업은 예술가와 갤러리스트라는 두 직업군을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사랑이 있는 관계로 엮고 있다.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는 과정에는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이 존재한다. 대중들은 전시장에서 예술가와 그의 작품만을 마주하게 되지만, 전시장 벽 너머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전시를 위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움직인다.

예술가와 함께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 전시장을 구성하는 목공, 도장을 비롯한 설치팀, 전시의 전반적인 행정을 담당하고 지원하는 행정팀, 전시를 최대한 많은 미디어에게 노출시켜 관람객을 전시장으로 오게 만드는 홍보팀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

'마시모 데 카를로'가 대표로 전시의 일부가 되어 관람객에게 노출되었지만, 전시 개최를 위해 밤낮없이 고생한 내 노고도 인정받고 내가 하고 있는 업무가 전시를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받을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사회에 던지는 풍자와 해학은 다양하다. 작품과 마주하는 사람들마다 가지고 있는 철학과 상황에 따라 정말 다양한 감상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전시다. 카텔란이 자신의 모습을 조각으로 옮겨 풍자와 비판의 최전선에 세워두었듯, 나도 무언가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는 순간이 올 때면,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지를 먼저 살펴보고 언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편했지만, 너무 편안했던 시간을 선물해 준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리움 미술관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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