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추억에서도 행복을 재발견합니다.
여행에 대한 추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다양한 명소, 맛난 음식, 그리고 가끔 우연히 만난 사람들 또한 내게는 즐거운 기억의 하나다. 그들은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한 줄기 햇살 같은 이들과의 만남은, 즐거움을 두 배로 남겨주곤 했다.
작년 2022년 6월 2일.
국립현대미술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다녀왔다. 거의 끝무렵이라, 연장에 연장은 불가할 것으로 보여, 더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지하철 역에 내려, 너무 오랜만의 방문이라, 스마트폰 지도를 펼쳐야 했다. 그런데, 누가 말을 건넨다. 고개를 드니, 어떤 중년의 여성이 앞에 서 있었다. " 국립현대 가는 길이 이쪽... 인가요..."
"저도 지금 가는 길이에요."
그렇게, 약속이나 한 듯, 함께 같은 장소로 향하게 되었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입구에 도착. 이제 볼 사람은 다 본 것 같은데... 그건 내 생각. 이미 줄은 입구를 벗어났고, 그 끝을 찾아 찾아가야 했다. 다행히 실내로 진입하기까지는 약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앗, 그런데...
바깥보다 더 긴 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치 파이가 겹겹이 쌓이듯 줄도 여러 겹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솔직히 잠깐 고민했다. '정말 볼 수 있을까....'
다행히 동행인이 생겼기에, 열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건, 그 분과 나는 마치 알던 사이처럼, 끊임없이 화제가 이어졌다.
서로 나이, 직업 이런 것은 물어보지도 않았다. 종종 그래왔듯. 그냥 관심사가 같아, 대화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생각한다.
아주머니는 나보다 키도 조금 더 컸고, 연세도 분명 나보다 많아 보였다. 흰색 남방에 청바지 차림인데, 단순한 복장이 무척 잘 어울렸고, 꾸미지 않았음에도 품위가 느껴졌다. 당시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목소리도 듣기 편한 저음에 가까웠다.
어쩌다 보니, 책, 미술관, 그리고 과거의 여행담까지 자연스럽게 주고받게 되었다. 자제분이 독일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롯, 올 (2022년 당시) 가을에 독일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행이란 단어, 얼마만인지, 듣기만 해도 즐거웠던 탓에, 여러 곳을 추천하게 되었고, 그분은, "오케이, 좀 더 무리해서 가야겠네" 라며 재밌게 들어주셨다.
기억나는(내가 들은) 에피소드가 많다. 성북 구립미술관 <윤중식전시>에 대한 소감, 영화 테이큰을 연상시켰던 에어비엔비 이야기(물론 아무 일도 없었고 모두 상상), 고등학교 시절 특별했던 미술선생님의 지도방식등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나 또한, 그간 묵혀온- 내 구체적인 여행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내 여행기는 나만 재밌다고 생각한다. 혼자 알지만, 그게 가끔 꺼내먹는 초콜릿처럼 달콤했기에 말을 아꼈던 것 같다.- 여행의 자잘한 추억부터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책, 음악, 미술 등)에 대해 술술 풀어내게 되었다. 그날은 기분 탓인지, 상대에 대해 완벽하게 무장해제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만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오래 서 있었던 탓에, 체력이 바닥날 지경에 이르렀다. 아주머니는 내게 " 커피라도 한 잔 마실래요? 제가 살게요."라고 묻는다. 나는 사양했다. 뭔가 받는다는 것이 좀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벽에 기댈 수 있는 위치에 도착, 아주머니는 휴대용 방석을 꺼내더니 바닥에 착석, 그리고 자신의 책을 건네며 나에게도 앉으라고 한다. 쿨하게. 미안했지만, 나도 허리가 아파 결국 책을 깔고 앉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또 한 권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하는데, 우연의 일치겠지만, 나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 이기진 박사가 쓴 <파리로 간 물리학자>. 밝은 연두색 바탕의 표지..."
그리고 견과류를 하나 건네주신다. 감사합니다.
결국 두 시간 반이란 긴 시간을 버텨냈고, 우리의 차례가 돌아왔다.
내부엔 관객이 너무 많아, 그냥 웅성웅성 윙 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림을 보다 보니, 도중에 자연스럽게 흩어지게 되었고, 신경 쓸 경황이 없었다. 어느 순간 그분이 보이지 않았다. 감상을 마치고 나올 때 즈음 다시 전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지만, 이제는 정말 누가 누구인지 분간조차 힘들어졌다.
헤어지는 인사는 하고 싶어, 밖으로 나와 쉬는 동안에도, 나오는 사람들을 둘러보았지만, 너무 많은 인파로 인해 불가능했다. 이미 소진한 상태라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인사를 못한 건 아쉬웠지만, 나에게 잠시 왔다간 또 하나의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그분이 떠오른다. 가끔 궁금해지기까지 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오래 만나다 어느 날 연락이 끊어진 관계처럼, 생각나곤 했다.
취향에 대해 대화가 이렇게 잘 통했던 사람을 만나 본 적은... 최근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가족과도 나누지 못했던 주제, 심지어 엄마와도 이런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었다. 영화, 책, 여행에 대해 자주 대화를 나누지만, 구석구석까지 말을 꺼낸 적은 없다. (엄마는) 굳이 많은 것을 묻지 않으셨다. 그저 잘 다녀오기만 바랐을 뿐. 나를 믿으니까라고 해야겠지. 그리고 나도 무사히 잘 다녀와서인지, 늘 여행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전부였던 것 같다.
겨우 두세 시간 함께 한 사이임에도 이런 감정이 든 건, 상대가, 나라는 사람 자체를 환대해 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서로 예의를 갖추고 대했다는 게,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대게 우리는, 나도 분명 그렇지만, 모르는 이들은 경계하는 것 같다. 때와 장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그런데 나는, 길에서 만난 이들 중, 절로 마음이 열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 다행히 운 좋게 아무 일도 없었다. (세상 무섭지 않은가. 아무 일도 없는 거, 운 좋은 것 맞다.)
물론, 가끔 비행기 옆좌석에 누가 앉을까를 상상하기도 하지만, 곧장 실망으로 연결... (나만 그런 건 아닐 듯!)
말 그대로 짧지만 강렬하고 스위트한 만남 덕분에, 그 긴 대기 시간을 견뎠고, 지금도 가끔 미술관을 가면 그분이 생각난다.
내게만 좋은 추억이었을까? 그럼 어때. 살면서 이런 경험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날, 고대하던 전시를 보게 되어 기뻤다. 선물 받은 하루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선물이란 건, 어쩌면 전시가 아닌, 사람이 아니었을까.
자발적 고독이라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또 이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우연이라도 다음에 마주치면 그때는 연락처를 물어봐야겠다.
하지만 이야말로 확률적으로 가능하기나 할까.
그저 행복한 추억 하나로만 남겨도 어딘가.
오늘 이 글에는 내 감정의 절반도 다 담아내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그날은 특히 햇빛 찬란한 하루였다는 것.
살면서 모두 좋은 감정과 추억을 많이 간직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많은 부분이 지워지고 소각될 테니까, 고로 되도록 많이.
이야말로 인생의 큰 자산이자 버팀목이다.
국립현대에서 만났던 아주머니,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겡끼데쓰~~"
생각나는 음악은
When I get old _ 청하& Christop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