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들
언제부터인지, 행복 강박에 걸린 것처럼, <행복> 관련된 책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 더 나아가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피해야 할 사람들 유형까지... 대체로 특별한 행동이 아니고, 단순하고 다 아는 것들인데, 상황이 닥치면 그렇게 대처하기 어려운 게 아닐까 싶다.
읽는 동안 도움은 되었지만, 이런 책이 내게 행복을 가져다줄 순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체로, 행복을 발견하는 것은, 내 마음에서 먼저 시작된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마음가짐, 일체유심조.
오래오래 전 일이 떠오른다.
직장 선배인데, 나보다 10살 가까이 많은 그분은 늘 활기차고 즐거워 보였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밝은 기운을 전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였다. 상대의 저급한 유머도 재치 있게 받아치는 순발력 하며, 일 처리도 공정해, 마음 가는 것도 당연했다. 무엇보다 자신보다 어리다고-내가 조직에서 가장 막내-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체 살지만, 한때는 내가 멘토로 삼은 분 중 하나였다.
그분의 가장 큰 장점은, 별 것 아닌 것도 아주 큰 행복으로 여긴다는 점. 허세와 허풍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태도가 그런 것이었다.
당시 그분은 여러 번 자주 말하곤 했다. "우리 아들, 피아노 정말 잘 쳐. 다음에 집에 와, 꼭 들려줄게." 그리고, 드디어 아들의 피아노 연주를 듣게 되었다. 집초대를 받았고, 마침 방학이라 자녀들이 모두 집에 있었다.
약속한 것처럼, 아들을 불러내 피아노 앞에 앉게 한 다음, 악보를 펼쳤다. 첫 몇 마디만 들었는데, 살짝 당황스러웠다. 실력이 아니라 준비가 안되었겠지. 다시 몇 차례를 시도했으나, 계속 더듬거리더니 결국 몇 마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서로 머쓱하게 쳐다보다, 자연스럽게, 그 정도 노력했으면 됐습니다... 하는 합의에 이르렀다. "손님 앞이라 긴장한 탓"이겠거니 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음식과 관련된 것이다.
함께 박물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주변에 식당이 제대로 없어, 도시락을 준비했다며 내게도 권하는데, 사실 별로 내키지 않았다.
나는 두 번 사양하면 그야말로 진심 어린 거절인데, 계속 권하니, 무척 난감했다. 어쩔 수 없지만, 맛을 보아야 끝이 날 것 같았다. 좋아하는 단호박이 보여, 조심스럽게 하나를 입에 넣었다.
순간, (미안하지만) 정말 뱉고 싶었다. 이런 말 하면 내가 나쁜 사람 같아 보이겠지만,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은 너무 괴롭다. 게다가 단호박이 이렇게 맛이 없기란 어려운 일인데.... 처음 맡는 향이 마구 뒤섞여 삼키키 힘들었다. 집밥이란 게, 그 집만의 고유의 손맛이 있다는 걸 느꼈다. 내 입에는 엄마 손맛이 익숙할 테니,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그토록 진하고 강한 향은, 너무 생소했다.
예전에도 "나는 내 김밥이 제일 맛있더라. 나, 김밥 정말 잘 만들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속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예민해서일까. 자꾸 맛있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엄청 기대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자기 입에 맞는 음식일 텐데.
여하튼 자꾸 자기 것이 최고인 양 하는 일이 여러 번 자주 반복 되었기에, 어느 날부터 그 말을 흘려들었다. 대수로운 일도 아니고, 문제 삼을 것은 더더욱 아니므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넘겼다.
처음에는 상대방에 대해 '음... 절대 미식가는 아니다. '라고 판단했다. 솔직히 '뭐지? 그 정도 (수준)는 너무 평범한데... 그게 자랑할 일인지...' 하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각 분야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쉽게 종종 볼 수 있는 세상이니까.
어쩌면, 내가 뭘 잘하든 못하든 세상은 큰 관심이 없다. 대체로 무관심할 것 같다.
실은, 그분 역시 자신이 가진 장점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을 뿐, 잘난 척은 아니었음을 알았으니,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 온 것도 같다. 자기애라고 하면 좀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그런데 갑자기 지금에서야,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 그 자체였단 생각이 들었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말에 100% 긍정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여지를 두려고 한다.
실제로 본의의 의사나 마음과 다르게 발생하는 일이 꽤 많다. 한 마디로, 어쩌다...
그럼에도 일어난 일의 결과를 대하는 마음은, 추후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데는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갑자기 모든 게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또다시 희망을 품어본다.
여태 내가 해낸 것, 작지만 끊임없이 *1) 도전해 온 것들이 분명 많이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진다면, 이 또한 큰 행복이란 생각을 한다.
이 책 저책, 이말 저말 들으며, 괜히 행복 강박에 빠지기보다, 전체적으로 오늘 하루 무사함에 감사하며 살 생각이다.
분명, 2024년 연말엔" 올해도 괜찮았다."라고 말할 거라 믿는다.
*1) 나에겐 이 브런치가 그렇다. 처음에 어느 방송국 공모전을 위해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자, 나와의 소통, 그리고 자기만족의 반영 그 자체가 되었다. 구독자 숫자가 늘면 기쁘지만, 숫자는 이미 달관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대부분이란 사실도 알지만, 관두지 않고 쓴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