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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pr 22. 2024

거장이 주는 힘

노력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베토벤을 숭배한다.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지만, 웅장하고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해 내는 것 같다. 내가 감히 뭐라고 말로 풀어내려 드는지!

지난주, 오랜만에 음악회에 갔다. 작년 12월, 눈 내리는 밤과는 또 다른,  따뜻해진 밤공기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이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곡을 클래식 색소폰으로 듣는 건 처음이다. 물론 라디오에서 먼저 만났고, 이번에는 피아노와 협연이라 더욱 기대했다.


다행히 시야가 전혀 방해받지 않아, 목을 빼고 듣는 불편함도 없었다.

옆좌석에 앉은 사람의 손에 CD가 있길래, 인터미션 동안, 나도 CD를 구입했다.

라흐마니노프와 베토벤 두 장인데, 고민 없이 후자를 선택.


다시 2부 순서. 연주자는 체구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음에도, 무거운 색소폰을 종류별로 바꿔가며 계속 연주하는 데, 전혀 흐트러짐이라곤 없었다.  평소 체력관리, 자기 관리를 얼마나 할지 상상이 되었다.

숨죽이며 빠져들듯 감상하게 되었다. 실력과 내공이 있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압도되는 걸 실감한다.

앙코르곡으로 베토벤 비창 2악장을 들려주는 데, 그렇게 반가울 수가...

이 곡은 내게 의미가 있다. 뭐, 나 혼자만 부여하는 거라, 전혀 동조하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피아노를 그만둘 때,  가장 마지막에 가졌던 연주회를 위해 선택했던 곡이다.

곡을 연습할 땐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곤 몰랐다.

이 곡을 들으면 늘 그날이 떠오른다.

어린 마음에도 그게 큰 이별의 순간이었나 보다.


앙코르는 한 곡이지만, 충분했다.  

집에 오는 길에 아픈 발이 좀 더 아팠으나-나는 지금 발부터 허리까지 통증이 이어져 걷기도 힘든 지경, 그럼에도 이미 정해진 스케줄을 취소할 순 없다. 예전에도 좋아하는 작가의 원화전시를 위해, 붕대를 감고 갔던 적 있다. 물론 문전연결성이 좋은 교통수단을 이용했으니 다녀왔지만.- 무사히 다녀왔을 때의 그 기분이란... !

평소보다 잠을 더 깊게 잘 잤다.


사실, - 음악회도 혼자 다니는 게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  내가 아끼는 후배와 같이 가려고 했으나 그녀가 회식과 겹치는 바람에,  연주회는 또 혼자 다녀왔다. 처음엔 가족과 오는 사람들, 부부가 함께 오는 이들, 친구와 선후배의 모습이 부러웠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 옆자리가 비었을 때의 허전함은, 이내 곧 충분히 채워졌다.


어린이 정원 _온화(gentle light)


한동안 나는 이 세상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일부만 이해하며 산다. 모르는 게 너무 많음을, 알게 되었다. 힘들게 노력해도 알 수 없는 세상사, 그래서 커다란 물음표를 안고 살아왔다.

최근에 "그 물음표"는 느낌표와 마침표로 귀결되었다. 한 순간에 깨달은 것은 아니겠지만, 거기엔 분명 이유가 있다. 바로, 이해하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되는 큰 힘 덕분이었음을. 거장의 혼이 담긴 작품.

물론 여기에는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되는 존재, 가족도 포함돼 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라디오를 듣고, 영화와 책을 보는 습관은 내 인생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큰돈 들이지 않아도 되고, 편하다. (앗, 게임도 놀기도 많이 했다. 만화책도 열심히..)

클래식 외에도, 콜드플레이와 아델이 큰 힘이 되어주었다. 내가 찾으려 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주파수를 맞추다 듣기 시작한 어느 방송에서, 같은 곡을 계속 들려주었고, 절로 익숙해졌다. 

밤에 음악을 반복 재생하며, 하루를 정리하고 또 내일을 기약하곤 했다. 남들에게 말하지 못해도, 음악을 들으면 하루를 또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다 다시 클래식으로 채널을 바꾼 지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하루에 한 시간을 의도적으로 듣고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땐 의도적으로 틀어놓고 시작한다. 일종의 노동요. 그러면 다 잊고 몰입하게 된다. 


참, 베토벤이 내 고민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버티는 힘을 주는 건 분명하다. 그거 하나면 되지 않나요?

어서들 만나세요~.


단 하나의 음악만 들을 수 있다면, 베토벤의 운명 4악장, 그리고 베토벤 비창 2악장, 그리고...

역시 하나만 고를 수 없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은 듣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자주 나온다.

아... 언제나 이런 수다를 떨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와 함께 곁에서 나눌 수 있으면 좋은 데, 그게 아니라도 괜찮다. 같은 채널을 공유하는 이들은 세상에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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