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로 인한 모녀 갈등과 화해
코로나 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주부학교에 다니고 있는 엄마도 온라인 수업에 동참했다.
원래는 새 학기를 맞아 새로운 반에서 친구들과 얼굴을 익히고 새로운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배워야 하는 것이 정상. 현실은 학교 근처도 가지 못하고 늘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신세가 됐다.
온라인 수업은 훨씬 더 간소화되어 진행됐는데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한 수업이라 컴퓨터로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온라인으로 제출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단톡 방에서 출석체크를 하고 선생님이 공유해준 수업자료를 다운받아 스스로 공부를 하는 방식이었다. 과목도 일반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똑같이 국영수는 물론 음악, 미술, 체육, 컴퓨터까지 모두 배우고 있었다.
처음에는 엄마를 비롯해 수십 명의 어르신 학생들이 네, 넵, 네~ 등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며 출석체크를 하는 것이 내가 딸이지만 기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얼마나 갔을까 -
점점 늘어나는 수업 자료에 중학교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지는 난이도에 엄마는 혼란스러워했고 그럴수록 나를 찾아오는 일이 많았다. 영어 문제나 공부해야 하는 내용 체크, 프린트 등은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지만 수능을 본 직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고등학교 수학은 나조차 문제 이해도 되지 않았다.
“우리 집에 이과 없어. 엄마도 수학은 포기해~”라며 수학은 능청스럽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진짜 문제는 컴퓨터였다.
고등학교에 과정에 엑셀과 파워포인트 수업이 있던 것! 다른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학교 근처 컴퓨터 학원에 다닌다고 들었는데 엄마는 돈을 아껴보겠다고 구청에서 진행하는 무료 온라인 수업을 신청했고 전날 미리 수업 자료를 공유하는 카페에 가입하는 방법과 자료 조회하는 방법, 매주 아침마다 진행되는 유튜브 실시간 수업을 볼 수 있는 방법까지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수업 당일, 아침 엄마는 자고 있는 나를 수차례 깨워 질문을 쏟아냈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대답을 하려니 어찌나 힘들던지... 심지어 어제 알려준 내용을 다시 묻고 모르겠다고 말만 반복하는 엄마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고 말았다.
아니 사실 전날부터 내 설명을 제대로 듣지 않은 것과 더불어 당일에도 안내문처럼 만들어준 종이를 끝까지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 돼만 외치는 모습에 일부러 언짢은 반응을 보였다. 전부터 진담 반, 농담 반으로 “PPT는 회사 다니는 사람 아니면 몰라도 돼~”라고 말했는데 아직 메일을 쓰는 법도 모르고 아이콘이 뭐냐고 물어보는 일명, 컴알못 상태인데 PPT를 배우겠다고 오기를 부리는 것처럼 보여 답답하고 화가 나기까지 했다.
결국 진도를 따라가지 못해 마냥 초조하고 답답해하던 엄마는 내내 눈치를 보며 참고 또 참다가 나의 그런 모습에 쌓았던 감정을 터뜨려버렸다.
“돈 몇 푼 아껴보려고 공짜 수업까지 찾아서 듣고 좀 배워보려 했는데 그거 하나 못 도와줘?!”
“내가 네가 갖고 있는 지식을 뺏어가니?! 그냥 아는 걸 알려주면 되잖아!”
“나는 나름 열심히 배워보려고 이 난리를 치는데 너는 잠 때문에 그렇게 짜증을 내?! 이럴 거면 학원을 보내주지!” 눌러둔 속마음들이 마침내 목을 타고 올라와 입 밖으로 나와 버린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져 버렸고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구나!
우리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컴퓨터 강사님은 태블릿 화면 속에서 여유롭게 수업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고 집안에는 한동안 강사님의 차분한 목소리와 엄마의 훌쩍이는 콧소리만 들렸다.
이후 엄마는 수업을 포기한 듯 보였고 나는 신경성 장염으로 1주일을 넘게 고생을 했으며 우리 사이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서먹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온몸으로 감지하고, 당시에 들은 모진 말로 상처 받아 멘탈이 너덜너덜해진 나는 집에 들어가는 시간도 늦어졌고 같이 밥을 먹는 일도 거의 없었다.
나의 장염 소식을 언니에게 전해 들은 엄마는 전복죽을 만들어 주겠다고 말했지만 짧은 말로 거절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됐다.
그야말로 진짜 거리두기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남녀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 뱃속 상태가 조금씩 좋아질 무렵 엄마와의 대화가 5마디였다가 10마디가 되고 같이 밥을 먹게 되고 함께 TV를 보게 되고 어느새 예전의 모녀 사이로 돌아가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상황이 됐다.
그리고 2주가 지난 지금 -
나는 수업시간에 엄마 옆에 서서 수업을 함께 듣기도 하고 막히는 부분을 다시 설명해 주기도 하고 “이건 몰라도 돼” “이건 메모해놔”라며 조언도 해준다. 물론 수업 때마다 매번 붙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17살 고등학생처럼 서럽게 울던 엄마의 모습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아 자연스럽게 수업 도우미가 된 것이다.
배우고 싶은 마음은 이리도 넘치도록 충분한데 내가 조금만 도와주면 될 것을... 왜 해보지도 못하게 하고 포기하게 했을까 많이 후회를 했다.
여전히 엄마는 압축을 풀고 수업 자료를 다운받는 것에 서툰 상태다. 하지만 10개의 정보 중에 2개만 이해해도 아이처럼 좋아하고 몹시 뿌듯해한다. 아마 교실에서 선생님과 직접 얼굴을 보며 수업을 했다면 5개 이상의 것을 배워왔을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이 생겼고 몸과 마음에 병까지 얻게 되었지만 우리는 큰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나는 이 과정을 거리두기의 순기능이라 말하고 싶다. 엄마와 대화가 단절된 그 시기의 거리두기가 송여사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고 엄마도 내 이야기를 더 귀담아듣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어쩌면 나처럼 많은 생각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코로나 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찬가지. 아무 생각 없이 누렸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 단단한 사회로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 위기를 잘 극복하면 분명 많은 교훈과 뜻밖의 순기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아무쪼록 엄마가 하루빨리 학교에 가는 날을 꿈 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