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토박이입니다
30년 차 망원동 주민의 살아보고서
과거 영화 추격자 동네로 반짝 주목받다가
이제는 핫플레이스로 손꼽히는 마포구 망원동
평일, 주말 할 거 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 곳이
내가 30년을 넘게 살아온 우리 동네다.
이렇게 유명해 지기 전에는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에
‘합정과 상암동 (혹은 난지도) 사이에 살아요’라며
대답을 얼버무려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사실 망원동은 비 오면 물 잠기는 동네로 더 유명했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집에 올 때마다
대부분의 기사님들의 대화 주제가 되기도 했다.
“이제 망원동은 물 안 잠겨요?”
“거기 비 오면 산 위에 학교로 다 대피했는데”
지금은 과거가 된 나의 운동코스, 체육공원이
물받이 역할을 해줬고 지금은 하나의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체육공원은 폐쇄되고 우리 가족은 물이 얼마나 차있나 구경을 가기도 했다.
닭강정과 고로케가 명물이 된 망원시장도
망원동의 자랑인데 어릴 때부터 엄마와 함께
장을 보러 다닌 기억도 생생하다.
지금 기억으로는 터널 같은 공간 안에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수산시장 속 젓갈 코너랑 비슷한 분위기랄까?)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던 떡볶이 가게는 여전히 눈에 아른거린다.
굵기도 길이도 딱 손가락 두 마디 되는 쌀 떡볶이가
초록색 접시에 담겨 나오는 곳
국물은 적당히 꾸덕하고 넉넉했고
작은 떡을 찍어 먹기에 제법 큰 포크가 늘 함께했다.
바글바글 파마를 머리에 눈이 작았던 주인 할머니는 아마 돌아가셨겠지만 그 집 떡볶이는 내 인생 떡볶이였다.
이제는 개성 넘치고 저렴한 가격의 맛 집들이 들어와 사람들이 넘 쳐나는 바람에 주말에는 장을 보러 가지 못하지만 망원시장은 최고의 동네 산책 코스가 분명하다.
시장과 더불어 망원 한강공원을 빼놓을 수 없을 터
날이 더운 여름에는 선풍기를 틀고 집안에서 자는 것보다 훨씬 시원했기에
돗자리를 가지고 가족 모두가 한강으로 가 잔디밭 위에서 밤을 보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은 우리 가족만이 아니었다. 그냥 일상이었다.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걸어서 2-30분만 가면 한강공원이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늘 그곳에서 방과 후 시간을 보냈다. 한강이 곳 놀이터였다.
요즘처럼 낯선 사람을 경계해야 하는 시절도 아니었기에 처음 본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 친구들과 모터보트도 공짜로 얻어 타 한강 위를 달리는 경험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순진함은 넘어 겁이 없었고
그분도 분명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전화도 없던 시절 아무때나 가도 친구가 있던 교통공원,
가족 외식의 성지였던 영풍가든,
그 시절 가장 고급 빵집이었던 홍순양 빵집,
집 근처 2번 버스 종점,
매일 12시까지 시끄러운 노래가 흘러나왔던 청자주유소,
매일 학교가 끝나면 들렸던 현대책비디오와 누리책방,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됐던 홍익유치원까지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 추억으로 일상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다행히 초등학교 때 증명사진을 찍었던 썬스튜디오
중학교 때 친구들과 시험공부를 했던 청소년 독서실,
100원을 내면 홍대 마포도서관까지 데려다주던 16번 버스 (그때는 8번 버스였다)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는 집 앞 세탁소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부모님 덕분에 좋은 동네에서 30년을 넘게 망원동에 살고 있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동네를 보면
내 추억이 사라지는 거 같아 아쉬움도 많았다.
지금은 결혼을 하고도 이 동네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현실은 엄청나게 많은 돈을 모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곳에 터를 잡은 부모님은 망원동을 떠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야 미래의 내 자식들에게 엄마가 살던 동네를 보여주고 추억을 나눌 수 있으니...
30년 망원동 토박이가 감히 망원동을 평가하자면 이곳은 아주 완벽한 동네다.
다만 조금 천천히 변해가며 다른 주민들의 추억도
오래오래 지켜주는 동네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