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의 면접, 그리고 관점의 차이
[13시 35분]
카페 앞에 서서 시계를 확인했다. 약속 시간은 14시. 예상했던 시간보다 일찍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원래 약속이 있으면 여유 있게 가는 편이지만, 오늘은 초행길에 처음 보는 사람과의 만남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시간 계산을 더 넉넉하게 잡았었다. 초행길 찾아가느라 예상시간보다 +10분, 상가 건물 주차하는데 드는 시간 +10분, 나는 길치니까 카페까지 찾아가는데 걸리는 시간 +5분 이렇게 야금야금 늘리다 보니 처음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한 것이다. 보통 약속 시간 10분 전쯤 도착하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예상보다 빠른 도착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내심 당황스러웠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때우지?'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약속 장소인 카페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왠지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마치 볼일이 있는 것처럼 카페 입구에서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 비스듬하게 서서 핸드폰을 노려봤다. 연락 온 것도 없고, 특별히 확인할 스케줄도 없고, 담배도 피우지 않지만 왠지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것보단 그렇게 서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거리에 서서 시간이 가는 걸 택하고 있는 스스로가 어이없고 웃겼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약속 시간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편한 상대와 만날 때는 딱히 시간을 신경 쓰지 않지만, 낯선 사람과 만날 때는 시간을 의식하게 된다. 보통 약속 10분 전쯤 도착해서 카페 안에 약속 상대가 있는지 확인하고, 5분 전쯤 도착했음을 알리는 문자를 보낸다.
너무 일찍 도착해서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고, 적당히 일찍 도착해서 예의와 이미지는 세우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만든 요상한 절차다. 아무래도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약속이란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이렇게 의식하는 게 몸에 밴 것이 아닐까 싶다.
[안녕하세요 오늘 2시에 면접 보기로 한 ***입니다. 카페에 도착해서 연락드려요.]
의미 없이 길거리에서 시간을 때우다 약속 시간 10분 전 카페에 들어갔다. 대충 카페 안을 훑고 상대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 커피를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도착한다는 답변이 왔다.
이런 문자를 보낸 게 얼마만이더라. 평일 낮에 한가로운 카페에 앉아있는데 온 몸에 피가 손끝으로 몰리는 것 같은 싸한 이 느낌.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각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구직자로 면접을 보는 건 2년 만의 일이었다. 그만큼 오래됐으니 긴장이 될 만도 하지.
물론 그 사이에 면접을 안 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내가 갔던 모든 면접 자리에서 내 역할을 구인자, 면접관이었다. 구인자로 면접을 볼 때도 카페 분위기를 바라보고, 약속 상대가 도착했는지 체크하고, 곧 만날 사람이 어떨지 긴장 반, 기대 반 감정이 들긴 했지만 피가 한쪽으로 몰리는 듯한 느낌은 경험해본 적이 없다. 대부분은 이력서를 한번 더 보고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는지, 면접이 얼마나 남았는지 체크해보며 멍 때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면접이라는 상황은 똑같은데, 위치에 따라 느끼는 감정은 매우 다르다.
얼마 전까지는 누군가를 평가하고 질문을 하던 입장에서 오랜만에 평가받는 입장이 될 생각을 하니 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구직자 입장에서만 생각했는데, 구인자도 겪어본 후에 하는 면접은 어떤 느낌일까?
14시가 되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를 평가할 면접자가 도착했다는 뜻이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전화를 건 상대와 눈이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2년 만의 면접이었다.
어느정도 연차가 쌓이다 보면 면접 보는 일이 줄어든다. 초반에는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이력서를 넣고 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비율이 높지만, 일을 하고 연차가 쌓일수록 자연스럽게 인맥이 늘게 되고 자신이 했던 프로그램이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에 주변 인맥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경우가 더 많아진다.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다시 일하거나, 일하면서 알게 된 인맥의 인맥 등으로 건너 건너 소개를 받다 보면 이력서와 면접은 형식적인 루틴이 되는 경우가 많다. 구직 자리를 찾고, 이력서를 내고, 연락을 받아서 면접을 보는(이때 상대와 나 사이에 공통적으로 아는 누군가가 없다는 전재) 보편적인 루트를 겪을 일이 많이 줄어든다.
지난 2년간 나도 그랬다. 역대급으로 바빴던 프로그램이 끝난 후 여행을 다녀오고 몇 달간 방황하며 놀던 나를 과거에 같이 일했던 선배가 데려가(?)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다음에는 친구가 같이 일하자고 불러서 갔고, 그다음에는 친한 선배와 친구가 알바처럼 가볍게 하자고 해서 일하러 갔고, 그다음에는 선배의 후배가 하는(건너 건너 아는 분) 프로그램에 소개받아 갔다.
이렇게 2년이 흐르는 동안 몇 번의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면접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성향과 취향, 현재 백수라는 상태까지 빼곡하게 파악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력서를 주고 면접을 본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도 하다. 면접 이런 과정을 거칠 것도 없이 '내일부터 나와서 일해'라고 하면 달려가는 상황의 반복이었다.
이런 나의 마지막 면접은 딱 2년 전 이맘때였다. 역대급으로 바빴던 프로그램이 끝나고,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탱자탱자 백수처럼 놀고먹던 시절. 기회는 내가 예상하지 못할 때 다가온다고 했던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그램, 공고도 올라오지 않았던 면접 기회가 덜컥 주어진 것이다.
원래 면접 울렁증이 있었지만, 그때는 몇 달간 놀면서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였던지라(겉으론 신나게 놀았지만 이 직업이 나와 맞는지, 나에게 기회가 올지 불안한 마음을 항상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갑자기 다가온 행운(?)에 나는 필요충분조건 이상으로 긴장했다.
게다가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너무 일찍 도착하는 만행을 저질러버렸는데, 카페 안에 누가 봐도 내가 곧 해야 할 면접 장면이 고스란히 보였다. 다른 사람의 면접을 보거나 듣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카페에 들어와 버린 상태라 나가는 것도 이상해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내 차례를 기다렸다. 그리고 무성영화처럼 보이는 면접 장면이 시종일관 화기애애해서 더 위축되어 버렸다. '저렇게 화기애애하다니. 이미 결정된 거나 다름없는 거 아냐?''아는 사이인가?' 하는 피해의식 끝없이 분출됐고 내 얼굴은 마치 로봇처럼 굳어버렸다.
그렇게 앞 면접이 끝나고 내 차례가 됐다. 그때의 기억은 정말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처음 만난 데다 직접적으로 서로 아는 연결고리도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면접 분위기는 어색하고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야외 예능 경력이 별로 없네요?'
'우리는 자기 코너를 확실하게 맡아 줄 사람이 필요한데... 가능하겠어요?'
이력서에 관련 경력 없는 거 다 적어놨는데 그러면 애초에 왜 부르셨어요!!!! 하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면접자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할 수 있는 질문도 이미 위축된 나에게는 신의 심판 음성처럼 들렸고, 초반 몇 개의 질문 만으로 나의 멘탈은 맨틀을 뚫고 내핵까지 꺼져버렸다. 덕분에 내 장기인 아무 말이나 떠들기도 제대로 못하고 장렬하게 면접을 망쳤다.
면접을 끝내고 카페를 나와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향했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다 못해 백지화가 된 상태로 '이제 난 뭘 하며 먹고살지'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저녁에 친구들을 만날 때는 어느 정도 회복돼서 술자리에서 '나 이렇게 좋은 기회를 망쳤단다'하며 웃는 것으로 흘려보냈다.
그게 마지막 면접. 내가 구직하는 입장에서 본 최후의 면접 기억이다.
그렇게 면접이 내 인생에서 영영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내가 알음알음 인맥으로 어찌어찌 일하게 된 후에도 면접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존의 형태에 새로운 형태까지 더해서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내 삶에 찾아왔는데, 이제 내가 직접 면접을 보고 같이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아는 사람으로 팀을 꾸리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매번 새 프로그램에 들어가면 팀의 규모에 따라 작가진을 어떻게 꾸릴지 구성원을 짜고 구인 글을 올린다. 그전까진 선배들이 결정한 데로 내가 들어가 있는 작가 방에 구인 글을 옮기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팀 구성을 어떻게 할지 논의할 때 내 의견을 내고 직접 구인 글을 올리고, 이력서를 받고, 그 이력서를 추려서 선배에게 컨펌을 받고, 면접을 보는 나이와 연차가 된 것이다.
'네가 같이 일할 건데 직접 봐야지'
이제 팀 구성원에서 중간보다 위에 위치는 연차가 됐고, 실무를 하는 연차가 되다 보니 같이 일할 팀원을 뽑을 때 내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이야기는 매우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구직자가 돼서 면접을 본다는 것은, 구인자가 되어 면접을 보러 가는 것보다 훨씬 부담스러웠다. 처음에는 가볍게 생각했다. 이력서 받아서 면접 보고 뽑으면 되지, 나는 내가 상처 받았던 그런 무성의한 면접은 하지 말아야지, 이력을 보고 추궁하는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었더랬다.
하지만 막상 메일로 쏟아지는 이력서를 보고 있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비슷비슷한 이력서를 보다 보면 어떤 기준으로 면접 볼 사람을 골라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았다. 객관적인 지표인 나이, 연차로 필요한 사람들을 걸러 내고 나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이전에 했던 프로그램과 기간을 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지금 하는 프로그램이 스튜디오 토크쇼라면 토크쇼 경력이 있는지부터 체크하게 되는 것이다. 토크쇼라고 해서 꼭 토크쇼 경력이 있어야만 일을 잘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아는데도 불구하고, 관성적으로 비슷한 경력이 있는지부터 체크하고 없으면 분류해버리는 내 모습에 스스로 너무 놀랐다.
단지 이전에 기회가 없었을 뿐인데, 관련 경력이 없단 이유로 새로운 도전 기회도 박탈해버리다니. 내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고, 면접을 하러 다닐 때마다 가장 불합리하다고 느꼈던 짓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다니. 지금도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이력서를 내면 이전에 그 분야의 경험이 없었단 이유로 면접 기회도 안 주는 분위기에 불합리하다고 화를 내고 다니면서 정작 내가 사람을 고를 땐 그렇게 하고 있다니... 내가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토로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이런 좌절감과 동시에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구인자가 왜 안정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것이다.
보통 프로그램 준비를 하면서 작가를 구하는 타이밍은 본격적인 방송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 직전이다. 예전에는 팀을 꾸리고 몇 달의 여유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기획이라는 명목 아래 초반 프로그램 세팅은 최소한의 작가진으로만 꾸리고 전체 팀을 갖추는 것은 촬영 들어가기 직전이 된다. 면접을 보고 사람을 뽑음과 실무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 일할수록 돈을 더 줘야 하기 때문에 이런 가성비 선택이 이어지고 있고, 작가진 입장에서는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관련 경험이 있는 사람' 혹은 '내가 알거나, 누군가가 추천해서 보증된 사람'이라는 안전한 선택을 찾게 되는 것이다.
면접날 조차도 면접을 보는 전후로 해야 할 업무들이 쌓여있는데, 당장 방송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경력은 없지만 괜찮아 보이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지원자들을 모두 만나보고 면접을 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나이와 연차가 높아질수록, 요구하는 실무가 많아지기 때문에 더더욱 문이 좁아지기 마련이다.
당장 일할 사람을 찾는데, 내가 쇼 경험은 없지만 기회를 주면 잘할 수 있으니 문 좀 열어달라고 외치면? 문 안쪽에서는 미친 소리처럼 들리지 않을까? 이 부분에서 문 안팎의 간극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구직자 입장일 때는 '그놈의 경력이 뭐라고' '기회를 줘야 경력이 생길 것 아냐'하며 높은 취업의 벽을 향해 불만을 토로하고, 구인자 입장일 때는 '당장 일해야 하는데 경력 없는 사람이 이걸 할 수 있을까?' '아는 친구 중에 쉬는 사람 없나?' 하며 안전한 대책을 떠올리게 되고.
애초에 방송국이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시간과 돈을 여유 있게 투자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토크쇼 경력이 없지만 의외로 해보니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 다양한 경험을 찾아 도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했던 거나 하라고 말하는 경직된 분위기는 정말 극혐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심지어 방송국에서.
뒤늦게 교양에서 예능으로 분야를 바뀌었고, 그 바운더리 안에 어떻게든 들어가 보려고 기를 써왔고, 지금도 기를 쓰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상황에 과하게 감정 몰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눈앞에 보이는 상황도 이해는 됐기 때문에 면접자를 고를 때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보려고 노력했다. 정말 아닌 경우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경력이 조금 부족해도 만나볼 만한 판단이 들면 선배에게 조금 더 어필했고, 면접을 봤다.
면접 과정에서도 나에게 상처가 됐던 질문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최대한 면접자에게 친절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고 최대한 질문도 골라서 하려고 노력했다. 애초에 표정 자체가 날카롭고 말투도 거친 편이라 나의 이런 노력이 얼마나 전달됐을지는 미지수지만, 면접 직전까지 일에 시달리다 왔고 면접 후에도 해야 할 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도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면접관으로 면접을 보는 건 처음이고, 면접에서 하는 말이라는 게 거기서 거기라 자꾸 할 말이 떨어졌다. 면접 자리에서 아무 말을 할 순 없으니 생산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데, 날 선 질문은 하고 싶지 않고, 그런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미 이력서를 봐놓고 '야외 경력이 없네요?'같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내가 정말 듣기 싫었던 질문을 그대로 한 셈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 결국 내가 들었던, 내가 상처 받았던 질문과 상황을 답습한 것이다. 그리고 면접을 거듭할수록 내가 면접을 봤던 그때 그들도 그랬겠구나, 대다수는 이렇게 쫓기는 환경에서 일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겠구나 하고 이해하게 됐다.
구인자와 구직자 두 상황을 모두 겪으면서 면접을 바라보는 각도가 다양해졌다. 구인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 구직자의 간절함을 모두 이해하게 됐고, 지금으로써는 면접에서 벌어지는 상황의 대부분은 악의가 없고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생긴 간극이 서로를 오해하게 만든다는 시스템만 어렴풋하게 이해했다.
물론 이해했다고 불합리함까지 납득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채로움을 이야기하면서 방송국은 너무 폐쇄적이고, 투명하게 일자리 공고가 올라오지 않으며, 최소한의 돈으로 인력을 운용하기 때문에 쫓기듯이 일하는 시스템에서는 다양함이 받아들여질 여유가 없다. 그렇게 한쪽으로만 인맥과 일자리가 돌고 돈다면 이런 상황은 과연 누굴 위해 좋은 상황이 될까? 이미 대부분의 프로그램에서 일할 작가가 없다고 난리인데.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지 않을까.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작가들뿐인데.
참 을과 을끼리 서로 속상하고 박터지는 기묘한 결말이다.
2년 만에 본 면접이 어떻게 됐냐면, 깔끔하게 실패했다. 오랜만에 면접이었지만 그간 쌓은 경험치 덕분에 크게 긴장하지 않았고 무료한 백수 생활에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적당한 긴장감이 주는 자극을 즐기며 즐겁게 면접을 봤다. 쇼 경력이 필요한 프로그램이었던지라 애초에 관련 경험이 없는 나는 면접 볼 기회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특별히 더 좋았던 것은 내가 만난 면접자가 나에게 '쇼 경력이 없네요?'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미 내 이력서에 관련 경험이 없다는 건 적혀있으니(물론 그걸 알면서도 왜 경험이 없냐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대신 나를 면접한 면접관은 쇼와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최근에는 어떤 일과 역할을 했는지 물어봤고 내 경력과 생각을 물어봐주는 질문에 차분하게 답변할 수 있었다.
면접을 끝내고 나서도 이전처럼 망했다며 좌절감이 들지 않았고, 저녁에 탈락 문자를 받고 나서도 속상하지 않았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답변을 보내고, 다음에 내가 면접을 하는 입장이 된다면 오늘 만난 면접관처럼 질문하는 스킬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쇼 경력이 없네요? 와 쇼랑 비슷한 것 해본 적 있어요? 하고 묻는 건 매우 다르다.
경험이 없다는 전재는 같지만 앞 질문은 질문받는 상대를 짓누른다. 하지만 후자 질문은 내가 했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질문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면접을 경험한 상대가 받는 느낌과 경험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걸 몸소 깨달았다.
가능하다면 면접은 정말 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구인자로써도 구직자로써도 스킬을 더 키워야겠다.
2년 만의 면접은 그런 의미에서 실패했지만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