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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Feb 09. 2022

[연예뉴스] 워라밸을 선택한 작가는 헐거운 부품인걸까?

내 삶이 가장 풍부하고, 커리어로는 외면받았던 시기의 이야기


오후 5시.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살펴본다. 칸막이가 없어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없는 넓은 사무실에는 수많은 책상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자리는 이미 주인이 퇴근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무실 한쪽 벽면은 통유리로 내려다본 거리에는 이미 퇴근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내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를 끄고 시간을 확인하며 짐을 챙겼다. 오늘은 금요일이고 이미 다음 주 초 방송까지 제작 완료했으므로 여유 있는 주말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부장님은 물론이고 함께 일하는 작가들은 이미 퇴근한 지 오래고 나 역시 일을 다 끝낸 지 오래지만 약속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사무실에서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오늘 일찍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더 빨리 나올 수 있는 사람?]

[나 가능할 듯! 먼저 만나서 카페 가자!]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일이 쌓여있지도 않고, 그 누구에게도 내가 퇴근한다는 사실을 보고할 필요가 없었고 내 스케줄과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퇴근하는 이 산뜻함. 심지어 퇴근하는 내 뒷모습을 좇는 시선도 없는 상큼한 주말의 시작이었다. 회사를 나왔지만 아직 태양은 중천에 떠있었고, 가벼운 겉옷만 입어도 춥지 않은 봄날이었다.


회사에서 집 근처 약속 장소까지 가려면 1시간 남짓. 내가 도착할 즈음이면 약속 장소 근방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퇴근할 시간이니 딱 맞았다. 오늘은 모임에서 만난 친구 몇 명과 저녁식사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기로 했고 내일은 동호회 사람들과 경기도 인근의 사격장에 가기로 했다. 일요일은 약속이 없지만 아마도 동생 커플과 집 근처 카페에 가거나, 급 번개로 볼링을 치지 않을까 싶다. 약속이 없다면 수영장에 가서 자유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내도 좋고.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 데 쏟았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삶이 달라질 수 있나 싶어서 얼떨떨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퇴근 이후의 저녁, 일없는 주말이 방송작가 4년 차인 나에게는 남의 옷인 듯 낯설게만 느껴졌다. 치열하던 내 삶 바로 옆에 이렇게 평화로운 세상이 있었다니, 평생 이렇게 평화로우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하며 지하철을 탔다.


내 작가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의 이야기다.



아침 생방송을 그만둔 후 나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번화가에 수많은 간판을 하나도 읽을 수 없는 낯선 나라로 떠나서 며칠을 보내고 돌아왔다.


고작 며칠이지만 방송국이라는 좁은 세계만 바라보고 살던 나에게 해외여행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이 그렇게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체감하고 나니 '다시 좁은 세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떻게 하면 내 세계를 넓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직 부족한 연차지만 몇 년간 웬만한 교양 프로그램은 다 경험했고, 구인구직 글을 봐도 이전에 했던 일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다큐멘터리나 시사보도로 가면 그나마 업무가 달라졌겠지만, 성향상 맞지 않단 생각이 들어서 선뜻 지원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달간 매일 공고를 뒤졌다. 마음에 드는 공고가 나타나도 모니터를 해보고 제작 시스템과 아이템 선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예상되는 프로그램은 최대한 피했다.


공고를 볼수록 교양보다는 예능이 스케일이 더 크고 포맷도 다양해서 끌렸지만 이제까지 교양 경력만 쌓아온 내가 바로 예능으로 넘어갈 수 있을 리는 만무했다. 지금은 경계가 많이 흐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교양과 예능 사이에는 엄청나게 높고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다.


'교양이라도 연예인을 다루는 프로그램이나 코너를 하면 예능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즈음, 우연히 한 프로그램에서 연예뉴스 코너 작가를 찾는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오전 시간에 하는 뉴스와 경제, 정보가 합쳐진 교양 프로그램이었는데 생방송이라는 점은 기존에 내가 했던 프로그램과 같았지만 [연예뉴스]라는 다뤄보지 않은 아이템을 한다는 점이 끌렸다.


방송 몇 편을 모니터 해보니 취재보다는 자료를 찾고 재구성, 편집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구성용 원고를 쓰는데도 도움이 되겠구나 판단이 들었다. 바로 이력서를 냈고, 다음날 면접이 진행됐다. 그리고 그다음 날 출근이 결정됐다.


언제나 느끼지만 이 세계는 일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손바닥 뒤집듯이 어제와 오늘이 달라졌다. 새 프로그램과 일은 재밌길 바라며 타던 자전거 페달을 더 세게 밟았다. 평범한 일상도 괜히 희망차 보이는 봄날의 중간이었다.



연예뉴스를 하던 시절을 짧게 정리하자면 [다시없을 호시절]이었다. 평일 내내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었고, 매일 20분 내외의 연예뉴스 코너가 방영됐다.


연예뉴스는 3명의 작가가 로테이션으로 방송 제작을 맡았는데, 지금도 연락하고 가끔 만날만큼 성격이 잘 맞았다.


프로그램 전체 구성을 담당하는 메인작가님이 있고 우리 코너 외에도 부동산, 건강 등의 코너마다 담당 작가들이 있었는데 팀 분위기는 매우 자유로웠다. 메인작가님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너그러운 분이었고, 작가들의 출퇴근을 전혀 터치하지 않았다. 자기 몫의 일만 한다면 오후 2시에 퇴근하든, 재택을 하든 강요하지 않았다.


뉴스에 붙어있는 코너였기 때문에 내가 제작한 코너가 방송되는 날에는 일찍 나와서 생방송 스튜디오에 가야 했지만 더빙까지 완료된 VCR을 틀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부조 구석에서 방송이 잘 나가는지 확인하고 내 코너가 끝나면 바로 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연예뉴스가 다루는 주제는 <연예가중계>, <tmi news>와 크게 다르지 않다.


주로 요즘 가장 핫한 주제를 뽑아 그에 맞게 드라마, 예능 등의 자료를 찾고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요즘을 예로 들자면 최근 서울대에 합격한 배우 정은표 씨 아들 정지웅군의 이야기를 전하며 ‘명문대에 합격한 스타 2세’, ‘연예계 숨겨진 브레인’ 코너를 구성하는 식이었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찾고 편집 구성안을 써야 했기 때문에 작가롤이 꽤 큰 코너였다. 틀을 잡고 더빙 원고도 써야 했기 때문에 구성, 자료 말이(자료 편집을 부르는 업계 용어)를 익힐 수 있었다.


아침 생방송에서 시사코너를 하면서 매번 섭외하고 취재하는 게 늘 스트레스였던지라 전화 취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엄청난 메리트로 느껴졌다. 심지어 어쩌다 가끔 특집을 만들어야 할 일이 생길 때를 제외하면 쉬엄쉬엄 일을 해도 오후 5시 전에 모든 일을 마칠 수가 있었다.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5시 퇴근. 근무 시간 내내 쫓기면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점심식사도 하고 티타임도 가지며 충분히 여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 게다가 방송국 본사에서 일을 했으므로 외주제작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좋았다. (외주제작사에서 일할 땐 내 노트북을 썼지만 본사에서 일할 땐 컴퓨터가 지급됐다) 심지어 월급도 아침 생방송을 할 때 보다 더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해가 떠있는 시간, 사람들이 일명 퇴근 러시라고 말하는 시간에 사람들에 끼여 퇴근하는 게 매우 어색했다.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두어 대를 보내고 타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런 상황이 짜증난다기보다는 '세상에 남들은 이 시간에 집에 가는구나. 나는 이때부터 일이 시작이었는데.' 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솔직히 해외여행 때 외국을 돌아다녔을 때만큼의 문화충격을 느꼈던 것 같다.


삶에 여유가 생기니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우선 일을 시작한 후로 거의 연락이 끊기기 시작했던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핑계라면 핑계일 수 있지만 태생이 멀티가 어려운 타입이라 일에 휩쓸려 다니던 몇 년 동안은 친구들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고 자연스럽게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되어 있었다.


친구들에게 용서를 빌고 거의 끊어질 뻔한 인간관계를 다시 엮고, 취미생활과 동호회도 시작했다. 퇴근 후에 저녁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며 야구를 보고 동생을 따라 가입한 지역 동호회에서 좋은 인연들을 만나 주말마다 전국을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즐겼다. 동호회 활동은 1년도 안 돼 해체되며 끝났지만 지금도 몇몇과는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돈도 벌고, 사회생활도 하면서, 내 삶도 즐길 수 있다니.

지난 몇 년간의 생활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했고, 팀에 안 맞는 PD가 있거나 문제가 생겨도 ‘그럴 수 있지'하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됐다. 그때 내 연차가 4-5년 차였으니 커리어를 생각하면 힘들더라도 바쁘고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며 경력을 쌓아야 했지만, 지금 이 생활을 놓치고 싶지 않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처음에는 연예뉴스 경력을 다음 프로에 넘어갈 수 있는 발판 정도로만 만들어 두고 이직할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하지 뭐', '이 정도는 괜찮잖아?' 하는 생각으로 미루게 됐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만 1년을 넘어 햇수로 2년 넘는 시간이 흘러가버렸다.


일을 쉰 것도 아니고 계속 일했는데 뭐가 문제냐 할 수 있지만, 당시 나는 몇 년째 주제만 다를 뿐인 20여분 짜리 코너를 만드는 상황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튜디오 원고를 쓴다거나, 어려운 섭외를 한다거나, 야외 촬영을 하는 등 내 세계를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했지만 지금의 현실이 주는 달콤함에 빠져 내 세계를 넓히겠다던 꿈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나도 모르게 점점 위축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상암의 한 방송국 본사에서 근무했는데, 보도국 쪽에서 일을 했으므로 내가 있는 층은 뉴스 제작과 관련된 인원들 뿐이었다. 하지만 방송국 내부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에도 여러 번 교양, 예능 제작팀을 마주치게 됐다. 방송국 곳곳에서 촬영이 이뤄지는 것도 종종 마주쳤다. 그리고 이 횟수가 늘어날수록 내가 그들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나도 현장을 뛰는 프로그램이 하고 싶어서 방송을 시작한 건데. 스튜디오 녹화를 하고, 야외 촬영을 하고 이런 활동적인 일이 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이 어쩌다가 비슷비슷한 형식의 코너를 만드는 일에만 멈춰있게 됐을까. 심지어 연예뉴스는 촬영을 하지 않고 재구성만 하다 보니 방송이라기 보단 뉴스 같단 느낌이 더 많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다시 일해야 하나?'

‘하지만 교양은 다시 하기 싫은데'


이 프로그램에서 일한 지 1년이 넘어가는 시점부터 이런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다시 뛰어들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용기가 나지 않았다. 프리뷰를 어떻게 하는지, 촬영 구성안을 어떻게 쓰는지, 자막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두 잊어버린 느낌이었고 이젠 늦은 게 아닐까란 생각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10년쯤 더 일하면 안 되나. 이 프로그램이 사라질 일도, 작가팀에 변화가 생길 일도 없어 보이는데.


그리고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변화는 갑자기 찾아왔다.



"나는 이번 달까지만 하고 그만두기로 했어. 곧 새 작가님이 오실 거니 너희들은 계속 일해도 좋고 그만둬도 돼. 본인의 선택이니까 잘 생각해봐"


평소와 다를 것 없던 점심시간, 메인작가님이 갑자기 프로그램을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5년 이상 한 프로그램을 갑자기 그만둔다는 작가님의 결정은 매우 놀라웠지만 그즈음에는 다들 예상하던 일이라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화기애애했던 작가들의 점심식사 자리가 무겁게 느껴진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메인작가님은 자의로 일을 그만두신 거지만 타의로 그만둔 것이기도 했다. 새해가 되면서 방송국 내부에서 인사이동이 있었고, 기존에 있던 부장님이 다른 팀으로 옮기면서 새로운 부장님이 우리 팀에 들어왔다. 사실 부장님이 새로 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을 거라 생각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그분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다.


새 부장님은 기존 부장님이 있을 때와 프로그램 톤을 확 바꾸고 싶어 했고, 코너 하나하나에 신경 쓰며 정리를 해내가기 시작했다. 물론 사람이 새로 왔으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매우 동의하지만, 이 '새로운 모습', '달라진 모습'에 작가도 포함된다는 사실은 미처 몰랐다.


메인작가님 포함 모든 작가진들이 최소 1년 이상 이 프로그램에서 일했고, 기존 부장님과 호흡을 오래 맞춘 것이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그렇다고 작가 인사권까지 결정할 권한은 없었으므로 차 선택으로 선택한 것이 '메인작가 교체'였던 것이다.


정확히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새 부장님은 메인작가님에게 그만두라는 의사를 전달했고, 메인작가님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에 이미 그 자리에 올 작가가 있다는 말까지 했다고 했다.


헤드를 교체하고 그 밑에 인원은 프로그램이 개편을 끝내고 안정화될 때까지 좀 더 둘 작정이었다. 재개 편을 하면서 안정화는 가져가는 훌륭한 전략이었다. 교체될 말이 된 작가들에게는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지만.


"잘됐어 저녁에는 라디오를 해야 해서 바빴는데 일 좀 줄이고 쉬지 뭐" 하고 작가님은 말했지만, 그날은 아직도 나에게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


20년을 넘게 이 업계에서 일하고 한 프로그램에서 5년 이상을 일했던 작가도 누군가의 한 마디, 결정에 바뀔 수 있구나. 메인작가님의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단순히 새로움을 위해서 이런 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다면 이제 겨우 5년 차가 된 나 같은 작가를 교체하는 것은 일도 아니겠구나란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다음날 새 부장님은 회의에서 메인작가님이 그만둔다는 소식을 전하며, 지금 있는 작가도 코너도 오래 고착화됐기 때문에 대대적인 개편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너 대비 작가 수가 많기 때문에 인력을 줄이고 한 작가가 맡는 코너 수를 늘릴 것이라는 말도 했다. 물론 월급은 동결이었다.


갑자기 마주한 현실은 매우 냉혹했고 길을 가다 갑자기 뺨을 얻어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멀쩡히 일하다가 한 순간에 잉여 인력 취급을 받으니 자존심이 상했고, 우리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속상하고 화가 나다가 조금 시간이 지나고 머리를 식히고 나니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애초에 이 프로그랜은 뉴스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뉴스 뒤에 붙는 30분 남짓의 코너는 서브라는 개념이 강했고, 각 코너들이 다루는 아이템고 구성도 복잡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내가 그만둬도 금방 누군가를 채울 수 있는 자리였던 것이다.


까다로운 취재, 섭외, 촬영 현장에 나가는 일을 안 해도 된다고 좋아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세계에서는 이 까다로운 일들이 빠지면 빠질수록 작가의 존재감이 약해지는 게 사실이었다. 냉정하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업무를 돌이켜봤을 때 막 입봉 한 작가가 와서 해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이었다. 입봉 작가가 나보다 월급이 적은 건 당연했고 말이다.


내가 일을 열심히 안 한 것도 아니고, 워라밸을 바랐던 것이 그렇게 큰 욕심이었나 싶어 억울했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억울해해 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현실을 직시해야겠단 판단이 들었다.


어찌 됐든 당장 방송국이 나라는 인력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하고, 여기서 내가 경쟁력을 갖추지 않는다면 더더욱 떠밀려 가는 일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니 심장이 다시 뛰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움직여야겠구나.

지난 시간을 후회하진 않지만, 그 시간이 헛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려면 내가 가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수밖에 없구나.


같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작가들도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보였고. 우리는 다음날 다 같이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작가들이 바로 단체로 행동할 줄은 몰랐는지 새 부장님은 ‘나 엿 먹이는 거야 뭐야?' 하는 다소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프리랜서를 잡을 방법은 없었으므로 우리의 의사를 받아들여졌고, 그렇게 프로그램을 그만두게 됐다.


지금도 내가 일했던 프로그램 중 이곳만큼 오래 일했던 곳이 없었고 이 시기만큼 방송 외적으로 다양한 경험과 추억을 쌓았던 시기도 없다.


결국 마지막에 내 가치를 부정당하는 일을 겪었으니 억울하다거나 가장 중요한 시기를 잘못 보낸 것 같아서 후회되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의외로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몇 년간 일하느라 놓고 살았던 내 삶을 다시 정비할 수 있었고, 충전의 시간이 있었기에 다시 일의 중앙으로 뛰어들어가 내 가치를 높이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다질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 시기에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좋은 프로그램을 했으면 지금 작가로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이 달라져있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힘든 나머지 꿈을 아예 놓아버렸을 가능성도 없잖아 있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후회도 미련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고, 내가 어떤 경험을 하든 그 경험에서는 반드시 얻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나에게 충전의 시간이었고, 내 가치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심는 계기가 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막막했지만, 그래도 그만두고 사무실을 나가는 발걸음만큼은 무겁지 않았다. 새로운 길이 보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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