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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Feb 02. 2022

그렇게 말씀하시면 일 못하겠는데요?

겁 없고 무모했던 사회초년생의 박치기


사고가 생겼다. 방송일을 하고 처음으로 내가 만든 방송이 방영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통보를 받은 시간은 새벽 4시 즈음. 이미 최종 영상과 1차 더빙 대본이 나온 상태였고 생방송에 필요한 대부분의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 주는 평소와 많이 다르긴 했는데, 유난히 아이템이 빨리 정해졌고 취재 및 촬영 과정도 수월했으며 편집도 빠르게 진행됐다. 이렇게 수월하게 방송제작이 진행된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순조로웠고 아침 생방송을 하고 처음으로 여유롭게 여러 번의 수정과정을 거듭하며 원고를 다듬을 시간까지 있었다.


그런데 결방이라니. 처음에는 프로그램 자체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PD와 편집실에서 방송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만 프로그램 결방 소식을 못 들은 건가 했다. 하지만 우리를 소환한 외주제작사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방송은 그대로 나가지만 우리 '코너'만 방송을 안 한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생기는 부족한 시간은 다른 코너에서 시간을 늘리는 것으로 커버할 예정이라고 했다.


"저희 아이템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엉켰다. '왜?'라는 머릿속을 지배했고 가장 먼저 했던 질문은 '아이템에 문제가 있느냐'였다. 분명 몇 주 전에 본사 컨펌을 받은 아이템이었고, 제작과정까지 어떠한 잡음도 없었기 때문에 고작 몇 시간 사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심지어 웬만한 일이 있어도 아이템을 버리는 경우는 잘 없는데, 아예 빼겠다는 결정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건 내부 사정이라 알 거 없고.. 오늘 방송 안 나가더라도 제작까지 다 한 거니까 페이는 문제없이 줄게"


돈도 돈이지만 이유가 궁금한 건데... 결국 우리는 다 만든 방송을 안 내보내는 이유가 무엇인지 듣지 못했다. 결방 이유를 궁금해하는 우리에게 대표는 페이는 문제없이 줄 테니 걱정 말란 이야기만 반복했고, 생방송 전까지 딱히 도울 게 없으니 쉬라는 말과 함께 자리를 떴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생방송 준비를 하던 나와 담당 피디는 한순간에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방도가 없었으므로 굉장히 찝찝한 기분으로 하던 일을 정리하고 멍하니 새벽을 보내다가 생방송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다.


이날 무슨 연유로 방송 불가 판정이 난 것인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 일은 사건의 시작에 불과했다. 진짜 문제는 생방송 다음 날, 팀 전체 회의 때 발생했다.


당시 우리 팀은 생방송 다음날 전 제작진이 참여하는 회의를 했는데 작가, PD부터 외주제작사 대표까지 모두가 참여하는 회의였고 전날 방송에 대한 이야기와 앞으로 제작방향, 아이템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그 주 회의는 평소와 조금 달랐는데, 다음 주 방송으로 특집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 회차를 국가 행사에 관한 내용으로 꾸려야 했고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닌 지방에 마련된 특별 행사장에 생방송을 하러 가야 했다. 방송을 구성하는 코너들도 기존의 코너가 아닌 행사와 관련된 내용으로만 제작해야 했다.


평소 방송을 만드는 공식과 전혀 다르다 보니 조율할 내용이 상당히 많았고 자연스럽게 회의가 길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코너의 개수였는데, 본사의 요구로 제작해야 할 코너 개수가 늘었고, 제작진 중 한 팀은 두 코너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코너가 오프닝 영상 수준으로 짧았기 때문에 두 코너를 맡는 게 수고스럽긴 해도 못할 정도는 아닌 상황이었다.


'어제 방송 안 했으니 내가 하나 더 해야겠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속으로 코너 개수를 세보고 마음을 정했다. 물론 방송을 다 만들어놓고 못 나간 것일 뿐이지 평소와 똑같이 밤샘 작업도 하고 일도 다 했지만, 그래도 생방송까지 소화한 다른 작가들과 달리 나는 여유가 있었으므로 이번 주 방송은 내가 좀 더 품을 들이는 게 모두에게 좋겠단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피디진에서는 가장 연차가 높은 피디님이 두 코너를 맡기로 했고, 자연스럽게 작가팀에서는 누가 두 코너를 맡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내가 자처해서 두 코너를 맡겠다고 막 말을 꺼내려던 찰나, 메인작가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 이번 방송 안 하고 놀았으니까 네가 두 개 맡아. 안 그러면 지난주 방송 돈 없어."


진짜 내가 모르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강압적이고 톡 쏘는 말투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모든 제작 인원이 모인 자리에서 정확히 나를 지칭하며 '너는 놀았으니 니 몫을 해라'라는 말에 날카로움이 느껴졌고 이유 모를 적대감을 느끼는 건 처음이라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회의 막바지라 자연스럽게 정리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우리 쪽으로 향했다. 분명 회의 전엔 아무 일도 없다고 했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 화가 나신 거지? 두 코너 담당이야 하면 되는데, 생방송 직전까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일했던 것을 한 순간에 모두 지워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임승차한 사람'취급하는 걸까 싶었다.


기존에 있던 선배가 그만두고 새로 온 메인작가님은 이제 한 달여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분인지 파악이 덜 된 상태였다. 혹시 이 분이 조금 짓궂게 농담을 하는 타입인가 싶었지만, 내가 대답 없이 바라보자 인상을 쓰시는 것이 실없는 농담을 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팀장님과 대표님이 뭐라 이야기하려는 게 보이긴 했지만, 윗분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진심이 불쑥 튀어나와버렸다.


"제가 일을 안 했나요? 저 어제 새벽에 원고 작업까지 다 끝내서 보여드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전 못하겠는데요?"


상사의 말에 공격적으로 받아친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마음속에 있던 말을 밖으로 표출하고 나니 속이 부글부글 끓다 못해 피가 지나다니는 곳마다 싸한 느낌이 들었고, 속 시원한 마음과 함께 후회가 몰려왔다. 상대가 불합리하게 굴더라도 바로 되받아치는 것보단 따로 이야기를 해서 오해를 푸는 게 맞는 행동인 것은 알지만 그때는 그런 것들이 하나도 생각 안 날 만큼 정말 많이 화가 났다.


내 대답에 메인작가님은 대답 대신 입을 꾹 다물었고, 후배의 되바라짐에 올라오는 분노와, 본인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당황스러움이 얽힌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표정을 보며 '아유 내가 좀 더 참을걸'하는 후회가 조금 더 강하게 올라왔다. 다른 팀원들도 많은 데서 내가 너무 다이렉트로 받아쳤나? 하지만 이건 아닌데 어떻게 하면 좋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가 좀 있었네 그런 뜻이 아니고~ 우리 잠깐 쉴까?"


평소에 말이 많지 않은 팀장님이 일어나 피디들에게 담배를 피자며 끌고 나갔다. 여전히 분위기는 어수선했고, 회의가 끝나면서 자연스럽게 각자 자기 일을 하고 있는 듯했지만 모든 신경이 우리 쪽으로 쏠린 게 느껴졌다.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노트북을 보며 의미 없는 클릭질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어째튼 평화로운 회의실 분위기를 깨뜨린 사건의 장본인이 됐으니 이 상황을 해결하긴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언니 화 푸세요ㅠㅠ]

[작가님 안 그러잖아요 왜 그래요 무슨 일이야]


온 팀원들에게 온 메시지로 sns가 쉴 틈 없이 깜빡였다. 메인작가님은 새로 들어와서 모두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6개월간 동고동락해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두가 잘 알기 때문에 예상 못한 모습에 다들 더욱 놀란 것 같았다. 이 메시지들에도 답변을 해줘야 하는데.. 나는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싶은 걸까, 아니 어떻게 대응하는 게 맞았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제가 두 코너 할게요'

'저도 일했는데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해요'하며 웃었어야 했나?

하지만 가만히 있다 공격받은 내가 왜 상황을 유하게 푸는 일까지 해야 하지?


그 메시지들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메인작가님 쪽으로 시선이 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바로 옆에 있는 나를 외면하고 노트북 모니터만 필사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났다.


"선배님 시간 괜찮으시면 잠깐 이야기하실까요?"


메인작가님이 생각이 정리되면 나를 부르시겠지. 나를 타이르든, 혼내든, 내가 모르는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든 뭔가 하시겠지라는 생각으로 30분을 더 기다렸다. 누가 봐도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에도 메인작가님은 말이 없었고, 결국 불편한 분위기를 못 이긴 내가 먼저 면담 요청을 했다.


어쩌면 대화 요청조차 거부당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메인작가님은 그러자며 순순히 일어났고 나를 두고 먼저 사무실을 나가셨다. 자연스럽게 나를 따라오는 다른 작가들의 시선에 '진짜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나도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꽤 큰 사건이니 당연히 대화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고, 팀원들이 없고 대화하기 좋은 근처 카페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작가님은 복도 구석 창가 자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단 뜻이었다.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니?'라는 말에 나는 한층 더 씁쓸해졌고,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버릇없이 이야기해서 죄송해요. 어제 일은 저도 당황스러웠고 이미 다 만들어놓고 방송을 못 내보낸다고 하는데 이유는 모르니까 힘들었어요. 하지만 어쨌든 생방송을 안 한 건 사실이니 회의 때부터 제가 두 코너를 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머릿속이 복잡할 땐 말하면서 정답을 찾을 때가 있다.

회의 시간 때부터 꼬여있던 마음과 머릿속이 입을 엶과 동시에 안개가 걷히고 깨끗해지는 게 느껴졌다. 고민할 필요 없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고 내 마음을 말하면 될 일이었다.


"제가 두 코너 맡을게요. 그리고 그만두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방송작가가 그만둘 때는 최소 2주 텀을 둔다.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하는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간이 그 정도였고, 딱 그 예의상을 시간을 지킨 다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마음 같아선 특집이고 뭐고 지금 당장 그만두고 싶지만 당장 일주일 뒤가 특집 생방송이고, 내가 지금 이 자리를 털고 나간다면 내 마음은 편할지 언정 그로 인해 생기는 모든 문제는 다른 팀원들이 떠안을게 뻔했다. 솔직히 말해 메인작가님은 관심 없었다. 다만 오래 같이 일한 동료들이 나로 인해 힘들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야기를 나누기 직전까지 머릿속이 새하앴는데 어쩜 입을 뗌과 동시에 말이 술술 나오는지, 내 무의식이 이 순간을 기다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이미 여러 차례 다른 작가들이 그만두겠다고 할 때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던 메인작가님은 내 제안은 바로 받아들이셨다. 공고는 본인이 올리겠다며 먼저 사무실로 들어가는 그분은 나에게 끝까지 오해였다던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말끔하게 정리되고 나니 마음이 매우 가벼워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1년은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끝이구나. 시원 섭섭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을 오래 비울 수 없으니 다시 들어와 자리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다. 순간 욱하는 감정으로 너무 쉽게 그만두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6개월 넘긴 작가가 드물다는 아침 생방송에서 6개월 넘게 일했고, 이미 지칠 만큼 지쳐있었기 때문에 잠시 쉰 뒤에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 싶었다.


방송작가로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종영이 아닌 자의로 일을 그만두게 된 것도 새로웠다.


2주 더 일하고 그만두기로 했다는 내 말에 친한 피디와 작가들은 '네가 그럴 필요 있냐'며 나를 붙잡았지만, 감정의 골이 이렇게 깊어진 이상 두 사람이 한 공간에 있기는 어렵고 서브작가보단 메인작가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팀에 더 낫지 않겠냐며 웃어넘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 친한 피디 작가 몇 명과 술을 마시면서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를 외쳤다. 예상된 끝이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이제까지 늘 갑자기 종영 통보를 받았는데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나니 약간 오버를 보태 세상이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구나 싶었다.


남은 2주는 딱 평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바빴다. 특집은 차로 2~3시간 걸리는 지방으로 가서  해야 했기 때문에 며칠간 밤새서 미리 영상을 만들고 생방송 당일 새벽차를 타고 이동해서 방송 준비를 했다. 한겨울에 야외스튜디오로 이가 딱딱 거릴 정도로 시렸지만 어차피 곧 그만둘 건데 특집도 좋은 경험이지하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방송을 끝마치고 서울로 올라오자마자 시간에 쫓기며 바로 다음 방송을 만들었다. 이렇게 정신없는 일정이니 일을 그만둬서 아쉽고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떠날 날짜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웬만한 일정에는 웃어넘길 수 있었고, 메인작가님도 내가 하는 일에 별로 말을 얹지 않았다.


"그동안 수고했다."

"네 선배님도 고생 많으셨어요."


2주 뒤 마지막 생방송이 끝나고 모두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아나운서들도 오랜만에 좀 오래 보는 작가가 생기나 했더니 그만두냐며 아쉬움을 표했고, 다음에 좋은 곳에서 또 보자고 인사했다. 그리고 모두와 인사가 끝날 때 즈음 메인작가님이 나에게 먼저 고생했다며 악수를 청했다. 천성이 나쁜 분은 아니니 그간 계속 어느 타이밍에 나에게 사과를 할 것인지 생각하셨던 것 같다. 일만 하기도 바쁜 일정에 후배와 불편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으니 나름대로 고민이 많으셨을 것이다.


어떤 상황이든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게 좋지 생각하며 인사를 받아들였고, 나는 몇 달간 치열하게 일했던 아침 생방송과 이별했다.


이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내 생각대로 일이 마무리된 적 없지만 이런 퇴사 엔딩은 생각도 못했던지라 아침 출근 인파를 뚫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서도,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이제 알람을 꺼놓고 마음껏 잘 수 있는데 자꾸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느새 4년 차가 됐다. 그동안 몇 개의 프로그램을 거쳐왔고, 방송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생각도 못할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겪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엔 잔잔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어쩌다 여기까지 돌아왔을까. 고3 때도 밤새 본 적 없던 내가 밤샘 작업에 익숙해지고 스스로 먼저 술을 찾고, 살이 찌고 손목 허리 어깨 안 아픈 데가 없이 골병든 처지가 됐을까. 그리고 이 고생을 하면서 왜 한 달에 200밖에 못 받는 걸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놀라운 건 지난 시간을 반추하고 현실에 한숨 쉬면서도 방송을 그만둬야겠다는 옵션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였다. 이게 노예 DNA인 걸까? 오늘 아침에 방송을 끝내고 다음 방송은 뭘 해야 할지 생각한다는 게 스스로가 어이없어서 웃었다.


일단은 제대로 못 쉬고 일했으니 잠시 재충전을 하며 다음을 생각해야겠다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그리고 27살, 한 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던 나는 여권을 만들고 대만으로 떠났다.

넓은 세상을 보며 내가 보고 있던 좁은 방송 세계 밖에 어떤 세상이 있는지 느꼈고, 어떻게 하면 일과 삶을 조화롭게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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