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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Jan 26. 2022

[아침 생방송] 24시간 안에 방송 만들기

어서 와 오전 7시 방송은 처음이지?


"집에 가기 전에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할래?"


친구의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오전 8시 30분. 이제 막 생방송이 끝났고 모든 제작진이 지친 몸을 이끌고 구내식당에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러 갈 타이밍이었다. 친구의 말에 나는 무언의 동의로 고개를 끄덕인 뒤 가방을 챙겨 들고 선배에게 오늘은 친구와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이야기했다. 밤새서 일하고 생방송이 끝나자마자 술을 마시러 가겠다는 젊은이의 패기에 선배는 '너네 체력 최고다'라는 말과 함께 가보라는 허락을 내렸다.


오전 9시 30분. 깨어있은지 약 26시간 경과한 상황. 친구와 나는 노트북을 짊어진 채 자취방과 식당이 밀집된 거리를 샅샅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우리의 목적은 삼겹살이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삼겹살을 파는 집이 있으리 만무했지만 이상하게도 그날만큼은 타협 없이 삼겹살이라는 것에 둘 다 동의한 상태였다. 결국 친구네 동네를 몇 바퀴 돈 후에야 아직 삼겹살을 파는 시간이 아니지만 왠지 찌들어 보이는 젊은 학생들에게 삼겹살을 내어주겠다는 가게를 찾아냈다.


오전 10시. 남들은 하루를 시작인 그 시간에 우리는 세상을 다 산 사람처럼 가게 구석에 박혀 삼겹살과 김치찌개에 소주를 마셨다. 작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일 년에 한두 번 마실까 말까 했던 술은 몇 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소주 한 병이면 기분 좋게 집에 갈 수 있는 레벨까지 되었다. 특히 밤샘 작업을 마치고 마시는 술은 온몸 구석구석 퍼지다 못해 내 영혼이 스펀지가 돼서 들어오는 족족 빨아들이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밤새는 건 진짜 못하겠어 매주 어떻게 하니"


갑자기 생긴 공석을 채워주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로 왔던 친구는 며칠간 경험한 아침 생방송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친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동의했다. 한 사무실에서 24시간 넘게 같이 있었는데 일하느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틈조차 없는 프로라니, 학을 뗄만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오가는 대화 중에도 오늘 방송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방금 방송을 끝냈고 오늘은 유일한 자유의 날이니 일 이야기보단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옛날이야기를 하는 쪽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점심시간을 조금 지난 시각. 평범한 회사원들이라면 오후 일과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는 집 침대에 드러누우면서 '씻어야 하는데', '나 내일 회의 아이템 아직 못 찾았는데'같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온몸이 쑤시듯이 아프고 노곤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자고 저녁에 회의 자료 찾아보지 뭐.


말이 좋아 쉬는 날이지 당장 내일 다음 방송 회의를 해야 했기 때문에 누워있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왜 온통 일뿐인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생각하며 잠을 청했고 그렇게 일주일에 하루뿐인 쉬는 날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아침 생방송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안 해 본 프로그램이어서'

내가 일하게 된 프로그램은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다. 아침 뉴스와 연결되는 방송이다 보니 똑같은 생방송이라도 저녁 생방송과는 달리 시사, 이슈, 뉴스 같은 성격을 많이 띠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실상 합격이나 마찬가지였던 면접을 보러 갔을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면접을 본 이후로 2년 만에 겪는 면접이었다. 내가 면접을 보러 간 외주제작사는 그게 그거처럼 보이는 빌딩 숲 사이에 있었고, 고정 프로그램이 단 하나인 매우 작은 곳이었다. 일반적인 작가 면접은 카페에서 봤지만 사무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그날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본 풍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사무실 문을 열면 작은 공간에 최대한 많은 책상을 놓은 듯 빽빽한 편집 책상들이 보였고, 창가 쪽에 파티션으로 가려진 팀장 책상으로 추정되는 자리와 다시 창가를 따라 사무실을 두르고 있는 편집 책상들이 보였다. 그리고 사무실 가운데 책상 몇 개를 붙인 작가 자리가 있었다. 한창 일하던 중이었는지 문 열리는 소리에 자리에 앉은 모두가 나를 돌아봤고, 그렇게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건 처음이라 '이대로 닫아버릴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일반적으로 피디와 작가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패턴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공간이 분리된다. 각자 일할 때는 얼굴 볼 일이 없을 정도로 동선이 다른데 업무 공간이 분리되지 않고 한 곳에 밀집되어 있는 광경은 꽤 큰 충격을 주었다. 굳이 따지자면 피디 책상은 사무실 공간에 가장자리에 놓여있었고 작가 자리는 사무실 가운데 있었으므로 피디의 공간에 작가 책상이 몇 개 놓인 것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일하는 모습이 완벽하게 노출되는 위치라니. 세렝게티 초원 가운데 모여있는 사슴 무리와 마주한 기분이었다.


대충 빈자리에 앉으라는 말에 일하는 작가 옆에 빈 의자를 끌어와서 면접을 봤다. 사실상 면접도 지금 하는 프로그램은 언제 끝나는지, 언제부터 출근하면 되고 어떤 코너를 맡을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다였다. 초스피드로 면접을 마치고 후다닥 건물 밖으로 나오고 나서도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곳도 선배 소개로 이력서가 들어간 곳이었고, 아직 순진했던 나는 선배의 제안을 내 판단 하에 '거절'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 프로그램에 내가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원래 생방송은 급박했지 하며 마음을 다잡고 지하철로 향하는데 도로에 죽은 비둘기가 보였다. 그 순간 '아 이거 뭔가 잘못됐는데?'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당장 다른 대안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다음 주부터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우려와 달리 새 프로그램은 나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작가진이 나쁘지 않았는데, 내가 면접 볼 당시에 심각하게 조용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다들 매우 살가웠다. 특별히 모난 성격이 없기도 했지만 힘든 프로그램을 다 같이 버티다 보니 동료애로 똘똘 뭉쳐있는 것이 매우 느껴졌다. 누구 하나라도 무너지면 와르르 무너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서로 일으켜주고 끌고 가는 관계인 게 역력히 느껴졌다. 아마 첫날 내가 느낀 기시감은 새로 온 작가가 과연 우리의 동료가 될 것인지 파악하느라 생긴 분위기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첫 출근날부터 강행군이 이어졌다. 밤 10시에 퇴근하면 사치, 막차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계산해 퇴근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일정이 이어졌다. 살짝 오버를 보태 일주일에 5일은 회사에서 세끼를 다 해결할 정도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건 일이 그만큼 많아서였고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일이 많기도 했지만, 유난히 많았던 회식이 한 몫했다.


밤늦게까지 아이템을 찾다가 12시를 넘기면 '어떻게 되겠지'라며 맥주와 과자를 사들고 방송국 앞 공원에서 노상 술을 마신다거나 새벽까지 여는 술집을 옮겨다며 식사와 술을 즐겼다. 물론 새벽까지 놀았어도 다음날 오전 11시 전후면 모두들 사무실에 나왔는데, 광기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일주일에 7일을 일하냐고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그전에 저녁 생방송과 아침 생방송의 차이점에 대해 다시 한번 짚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생방송의 기본 모토는 채널을 돌리다가도 멈추게 하는 화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컷으로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자극이 필요한데, 이 자극이 저녁과 아침 생방은 큰 차이가 있다. 저녁 생방송의 경우 음식, 맛집, 여행, 건강비법 등 주 타겟층인 주부들이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의식주와 관련된 내용이 많다. 반면 아침 생방송은 TV를 켜놓고 등교/출근 준비로 바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강하고 자극적인 화면이 필요했다. 전날 벌어진 어이없고 황당한 사건사고, 이슈만큼 사람들의 눈을 끄는 것도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코너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으로 채워졌다.


시사, 이슈라고 하면 어떤 것인지 감이 안 올 수가 있는데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1) 이슈 아이템

**약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기사 발견 → 관련 아이템 취재 및 전문가 섭외 → 특정 성분이 병에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는 논문 발견 → 이슈 아이템 제작


2) 시사 아이템

도심 옥상에서 어떤 사람이 돈을 뿌리는 사건 발생 → '그 사람이 왜 돈을 뿌렸을까?'를 주제로 탐문 취재&촬영 시작 → 시사 아이템 제작


대충 이런 식으로 나뉘게 된다. 시사/이슈 코너의 경우 큰 아이템이 생겼을 땐 하나만으로 방송을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잘한 5분 내외 아이템 3개로 코너를 꾸려야 했다.


러닝 타임이 길지 않고 한 가지 아이템을 찾으면 사건 정리와 팩트를 보여주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구성에 큰 어려움은 없는 편이었다. 그렇다 보니 실제 코너를 제작하는데 드는 시간은 매우 짧은 편이었다.


아이템을 선정하고 취재를 하고 촬영하는데 가장 긴 시간이 소요되면 3일 내외, 대부분은 방송 전날 아침 아이템을 정해서 24시간 안에 촬영, 편집, 송출 과정을 다 거치곤 했다. 평균 3개 아이템이 나간다고 치면 방송 3일 전쯤 1~2개 아이템을 촬영하고 방송 전날 한 개의 아이템을 잡아 만드는 식이었다.


당장 오늘 아침에 아이템을 찾아서 하루 만에 방송을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은, 막상 그 상황에 떨어지면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내는 게 방송가의 공식이었다. 처음에는 이 상황이 적응되지 않아 만성 위염을 달고 살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3개월쯤 지나니 속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받는 정도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또 그것이 등장한다. 생방송 제작사의 무한경쟁 시스템. 아침 생방송도 저녁 생방송과 마찬가지로 방송사마다 이름을 건 간판 프로그램들이 있다. 그리고 평일 내내 방송되기 때문에 프로그램마다 요일별로 제작팀이 존재한다. 이곳도 보이지 않은 수많은 제작팀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저녁 생방송과 다른 점은 아이템 리스트를 올리는 것에 경쟁이 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사에서 '더 빨리 방송이 되는 팀'으로 아이템을 몰아주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 CCTV로 범죄자를 잡은 사건이 화제가 됐다면?

사람들은 당장 내일 아침 TV에서 하는 이야기에 집중할 것이다.

웬만큼 큰 사건이 아니고서는 그다음 날, 다다음날이 되면 관심도가 줄어들게 뻔하고 며칠 사이로 취재할 수 있는 내용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미 다른 방송에서 다 한 이야기를 또 하는 정도밖에 될 수 없다.


방송 전체의 퀄리티를 생각해야 하는 본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아이템 위치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 오늘이 월요일인데 이틀 뒤 수요일 방송 팀인 내가 먼저 아이템을 발견해서 올렸더라도 본사에서 '이건 내일 내보내'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이 바로 화요일 팀으로 넘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뉴스 성격을 띠는 시의성 코너를 맡은 작가는 하루 종일 아이템을 찾고, 다른 팀에 넘겨주고, 또 찾고, 누군가가 넘겨준 아이템을 받아서 급하게 제작하는 일을 무한 반복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 코너를 기피했고, 나처럼 팀에 새로 들어오는 작가가 맡게 되는 게 암묵적인 룰처럼 되어 있었다. 처음 그 사실을 알았을 땐 조금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사실 생각할 틈 없이 바쁘게 일을 해야 하는 게 우선이었고, 내가 절망하고 있어도 '그 코너'작가니 다들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해주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할 수 있나?'는 극한의 상황으로 몰렸을 때 해내고 나면 오는 카타르시스가 엄청났다.


생방송 전날 내 스케줄은 대충 이랬다.

보통 아침 11시 출근이지만 출근시간보다 빠른 8~9시 사이쯤 사무실에 도착해서 뉴스를 뒤진다. 10시 전에는 컨펌이 나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찾은 뉴스를 고르고 골라 팀장님께 전달하고 본사 컨펌을 기다린다. 본사에서 컨펌이 나면 그 즉시 막내작가와 역할을 나눠 섭외와 구성안을 동시에 쓰기 시작한다.


10-11시 사이면 이미 촬영 준비를 마친 담당 PD와 리포터가 내 뒤에 앉아서 촬영 구성안이 나오길 기다린다. 미리 관련 뉴스를 알려주며 읽어보라고 하고 '10분만 기다려줘요!'를 외치며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구성안을 쓴다. 촬영 구성안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원고를 프린트해서 간략하게 회의를 마치고 나면 PD와 리포터가 현장으로 떠난다.


그들을 보내 놓고 나면 추가로 구성을 생각하며 전문가를 섭외한다. 보통 이런 코너에선 전문가의 이야기가 꼭 필요한데, 약간의 팁이 있다면 해당 아이템과 관련된 기사를 몇 개 읽다 보면 아침 라디오 인터뷰나 뉴스에서 중복되는 전문가를 찾을 수가 있다. 여러 번 뉴스에서 관련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그 아이템에 알고 있고 생각도 정리됐다는 뜻이고 무엇보다 인터뷰에 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로 해당 전문가의 연락처를 알아내서 전화해서 섭외를 한다. 이런 분들은 보통 밤늦게까지 본인 사무실에 계시므로 시간 약속을 잡고, 예상 질문지를 빠르게 보내 놓고, 피디에게 추가된 인터뷰(촬영 장소, 시간, 예상 답변이 달린 인터뷰지) 촬영 정보를 보내준다.


급한 불을 끄고 나면 내일 생방송에서 쓸, 내 담당의 스튜디오 원고를 쓰고 촬영 구성안과 자료를 토대로 편집 구성안(영상은 안 봤지만 어떤 그림이 나올지 대충 예상되니)을 쓰고, 막내작가에겐 필요한 자료를 찾아달라고 한다. CG의뢰가 필요한 경우에는 늦어도 오후 5시 전에는 의뢰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려서 넘겨놓는다.


늦은 밤이 돼서 PD가 돌아오면 간단하게 촬영 구성 이야기를 마치고 속성으로 편집하는 동안 옆에서 그때그때 필요한 자료를 찾아서 계속 넘겨주는 작업을 반복한다. 새벽에 영상이 나오는 순서대로 아나운서가 읽을 더빙 대본을 쓰고, 영상에 맞게 자막을 쓴다. 물론 실시간으로 편집이 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원고용으로 받는 영상은 가편집본이었다. 팀장이 영상을 보고 수정하는 동안 1차 원고를 쓰고 최종 영상이 나오면 다시 처음부터 영상에 맞춰서 원고를 수정한다.


원고를 다 쓰고 나면 꼭 영상에 맞춰 소리 내어 대본을 읽어보며 마지막 수정을 거친다. 소리 내 읽지 않으면 실제 방송에서 영상과 대본 길이가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아무리 바빠도 필수로 필요한 과정이다.


최종 원고는 메인작가님의 컨펌을 거쳐 팀메일로 전송된다. 막내작가는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원고가 나오는 순서대로 스튜디오 원고와 코너별 원고를 프린트한다. 이때가 보통 새벽 5~6시쯤인데 한참 바쁘게 일이 몰아치고 나면 각성상태이기도 하고 잠시 뒤에 생방을 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넋 놓고 앉아있기보단 내 도움이 필요한 자잘한 일을 찾는다. 원고를 넘기고 나면 큰일이 끝났다는 안도감에 잠이 몰려오기 때문에 그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이다.


모든 코너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모든 작업을 마쳤다는 가정하에 방송을 위해 방송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오전 6시 30분 전후. 헤어 메이크업을 마친 아나운서와 함께 영상을 보며 내레이션 대본을 맞춰보고 발음이 꼬이거나 부적절한 부분은 현장에서 수정하며 최종 원고를 만든다.


생방송이 시작되면 카메라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내 코너가 방송될 땐 화면에 비치지 않도록 살짝 들어가서 내레이션 타이밍을 손짓으로 알려준다. 방송 전에 충분히 리딩을 한다면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지만 열에 아홉은 맞춰볼 시간도 없이 방송에 들어가기 때문에 옆에서 타이밍을 알려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몇 달 일하다 보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호흡이 맞기 때문에 알아서 치고 빠지는 일들이 가능해진다.


생방송이 모두 끝나고 후 CM이 나오면 8시 30분. 일주일간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도비가 양말을 받아 든 순간, '도비는 자유예요'라고 외치던 그 마음을 매주 경험한 느낌이었달까.


그 이후는 팀마다 다르지만 우리 팀은 의무적으로 다 같이 방송국 구내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먹고 헤어졌다. 집에 가려고 방송국을 나서면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있고 길에는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자다가 내릴 역을 놓친 기억이 몇 번 있어서 가급적 자리에 앉지 않고 지하철 구석에 기대서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서 잠시 낮잠을 자고 내일 있을 아이템 회의용 자료를 찾는다. 그리고 이 상황은 무한히 반복된다.


이렇게 매일이 긴박하다 보니 작가들 사이에 정이 인 쌓이려야 인 쌓일 수가 없다. 내가 일할 당시 팀 작가들은 물론이고 다른 곳에서 만난 작가가 ‘아침 생방송 경험’이 있다고 말하면 그 순간 엄청난 유대감이 생긴다. 말은 하지 않아도 서로 힘든 시간을 잘 버텨 왔구나 하고 살아남은(?) 상대방을 기특하게 여기게 된다.


쓰고 보니 나처럼 의지가 약한 사람이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텼나 놀랍다. 아마도 바쁜 프로그램에 적응하다 보면 강제로 늘어나는 맷집과 안 좋은 기억은 빨리 털어버리는 선택적 기억, 그리고 약간의 알코올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눈앞에 하루하루만 보며 경주마처럼 달리다 보니 어느덧 8개월이 흘렀다. 작가 세계에선 6개월 이상부터 경력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딱 그 기간만 채울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조금 더 버티게 된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1년 채우면 더 도움되겠지?’


내가 일하는 사이 수많은 작가들이 오갔지만 6개월을 넘긴 작가는 단 한 명뿐이었다. 나도 그 정도 끈기는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스트레스성 위염에 면역력 저하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허리와 목은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온몸에서 보내는 SOS 신호를 애써 외면하며 미련하게 오기를 부렸다.


그 시절 내가 1년이란 경력에 집착했던 이유는, 단 한 번도 내 의지로 일을 그만둔 적이 없다는 걸 깨지 않고 싶단 생각과 오래 버티면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리를 오래 지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경력을 채우고 나면 업그레이드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시도할 엄두가 안 났던 것도 한몫했다. 무엇보다 이번을 끝으로 생방송은 안 하고 싶단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내 굳은 다짐(?)과 달리 이별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8개월이 막 넘어가던 시점에, 내 입으로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든 팀원들이 있는 회의 시간에. 내가 이런 모습으로, 이런 상황에서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은 나조차도 몰랐으므로 지금 다시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행동했지?'싶긴 하다.


몇 년간 차곡차곡 쌓였던, 내 마음의 분노를 터뜨린 사건은 생방송 다음날 팀 회의에서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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