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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작 Jan 19. 2022

[교양 방송] 베끼면서 익히는 입봉의 기술

저 입봉 하는 법 배운 적 없는데요?


"나 아는 언니네 프로그램에서 작가 구한데. 너 추천했으니까 가서 잘해 알았지?"


이 일을 하다 보면 일자리는 하늘이 내려주는 게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막내로 1년 반을 보내고 여름 내내 베짱이처럼 놀던 나는 선배의 전화 한 통에 서브작가로 승급했다. 막내작가 2년 차, 바쁘기로 유명한 저녁 생방송과 명절 특집 예능을 거치며 나름 이 세계에 적응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입봉은 아직 머나먼 이야기에 불과했다.


선배들이 시키는 자잘한 업무를 하면서 어깨너머로 어떻게 방송을 만드는 건지 지켜봤지만 그걸 내 업무로 적용시키는 건 다른 문제였다. 두 달간 놀면서 머릿속을 깔끔하게 리셋시킨 나는 막연히 다음 일자리도 막내로 들어가서 입봉의 기술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입봉이라니. 차마 선배의 말을 거절할 용기가 없어서 '언니 저 어떡해요?'만 연발했고, 선배는 다 부딪치며 배우는 거다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지만 갑자기 다가온 거대한(?) 운명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선배가 소개해준 프로그램은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되는 교양 프로그램이었다. vj특공대로 대표되는 vcr 정보 프로그램으로, 생방송이 없다는 걸 제외하면 기존에 내가 했던 저녁 생방송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오프닝과 클로징 외에는 vcr 영상만 나가기 때문에 코너 작가는 스튜디오 녹화에 따라갈 필요가 없었고, 2주에 한 번 내 담당인 15분 내외 코너만 만들어 내면 됐다.


전에 일하던 작가의 연차가 높지 않았기 때문에 비슷한 연차를 찾다가 입봉 작가를 써보는 것으로 이야기됐고 입소문을 타고 건너 건너 나에게 그 일자리가 들어온 것이다. 입봉은 방송계 용어로 작가 혹은 피디에게 담당 코너가 생겼음을 의미한다. 매일 서포트하던 막내 포지션에서 벗어나 자신의 코너를 맡고, 그 한 코너를 온전히 책임지는 위치가 된 것이다.


겉보기에는 막내와 별 다를 것 없고 실제 받는 돈도 큰 차이가 없었다. 막내 때 마지막으로 받았던 내 월급이 100만 원, 서브작가가 되고 받은 첫 월급은 120만 원 남짓이었다. 하지만 하는 일은 굉장히 달랐다.


일단 서브작가가 되면 하는 일을 아래에 정리해봤다. 서브작가의 롤은 프로그램 성격, 규모에 따라 매우 다르기 때문에 나는 당시 내가 일하게 된 vcr 정보물을 기준으로 작성해봤다.


아이템을 찾고 자료 조사를 하고 취재를 하는 등의 일은 똑같지만 큰 차이점은, 내가 코너의 담당자였기 때문에 섭외부터 방송까지 모든 과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방송 날짜에 맞춰 코너를 만들어야 했고 '시키는 데로' 일한다는 것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았다.


새로 간 팀은 이전과는 매우 분위기가 달랐다. 예전 팀은 일 외에도 대화가 끊기지 않는 곳이었다. 점심시간 즈음에 출근해 함께 식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저녁까지 챙겨 먹고 빠르면 저녁 8시, 보통 10시가 넘어서야 다 같이 퇴근하는 게 일상인 분위기였다. 막내인 나야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선배들은 일 외에도 농담이 끊이지 않았고, 내 코너가 일찍 끝나도 다른 코너에 문제가 생기면 다 같이 붙어서 해결하는 일이 많았다.


반면 새팀은 매우 조용했다. 분위기가 경직되어있거나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었고, 각자 자기 일에 집중했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 바로 위인 선배와 막내작가, 나만 점심시간 전에 출근했고 연차가 높은 선배들은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에 출근해 저녁 7시 전에 칼퇴근했다. 깔끔하게 자기 일만 하고 퇴근하면 누구도 터치하지 않았고, 선배들이 저녁에 어떤 취미생활을 즐기는지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선 방송 가치고 드물게 워라밸을 챙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나 싶다.


성향 차이일 뿐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순 없지만 솔직히 처음에는 새팀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일단 새 팀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일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문제는 내가 이제 막 입봉 한 작가고 프로그램 파악은커녕 어떻게 아이템을 찾고 섭외를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는 것이다. 분명 입봉 작가라는 정보를 모를 리가 없는데 출근한 첫날 메인작가님은 이야기 많이 들었다며 전임 작가가 찾아둔 아이템 몇 개를 건네주었고 그 외에는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당시 내가 일하면서 깨달은 모토는 '모르면 물어보라', '차라리 모른다고 혼나는 게 낫지 모른 채로 일하다 잘못되면 수습불가다'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사실 코너를 만드는 과정을 전혀 모르니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그렇다 보니 구체적인 질문보단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두루뭉술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누가 나에게 물어봐도 원론적인 대답밖에 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달까? 하지만 몇 번 대화를 하며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원론적인 질문이라는 걸 차치하더라도 선배들이 내 방송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없이 방송을 만들어 내기만 하면 됐고 그 과정이 어떻든 관심 없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고, 이제부터 모든 건 나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렇게 첫 출근해서 며칠은 전임 작가가 준 아이템 리스트와 뉴스 화면만 뒤지며 보냈다. 어찌어찌 섭외해서 촬영을 보내긴 했는데 이게 맞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렇게 몇 주간 고민하다 나보다 몇 달 먼저 입봉 한 선배에게 SOS를 쳤다.


몇 달 전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선배는 다행히 매우 친절했고 본인이 알고 있는 지식을 나눠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때 선배에게 본인이 코너를 짤 때 대략 어떻게 일을 진행하는지, 아이템은 어떻게 찾는지에 대해 들었다.


"아이템이 도저히 안 나올 땐 비슷한 시기에 다른 방송에서 어떤 게 나왔는지 찾아봐. 보다 보면 겹치는 아이템들이 있어서 대충 예상할 수 있어"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지금 당장은 아무리 뉴스를 봐도 '방송용 아이템'을 골라낼 수 있는 실력이 없으니 일단 과거의 방송을 뒤져보며 어떤 아이템이 방송화 됐는지를 알아봐야 방송용 아이템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온갖 방송사(공중파는 물론 지방까지)를 뒤지며 과거에 어떤 아이템이 방송에 나갔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현재 시점만 검색해서 보다가 아이템이 방대해지기 시작하자 나 혼자 볼 수 있는 아이템 로드맵을 만들었다. 한글파일에 프로그램명을 적고 방송 날짜와 코너명, 아이템, 방송 내용을 간략하게 적었다. 제철 식재료, 생산지들을 다루는 vcr 정보 프로그램의 경우 아이템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1년간의 대한민국의 차곡차곡 머릿속에 쌓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3월이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미나리와 삼겹살 먹방이 나오고, 한여름이면 이열치열로 참숯공장, 조선소처럼 뜨거운 일터가 나오고, 11월이면 강원도 시래기 덕장, 1월에는 글램핑과 북극곰 수영대회가 소개되는 식이었다. 가끔 독특한 아이템들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 공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공중파는 물론 케이블, 지방방송까지 온갖 방송을 뒤지기 시작했고 이 작업을 한 달 넘게 하다 보니 아이템이 풍족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대충 어느 시기엔 어떤 아이템을 해야겠다는 판단이 들기 시작한 것인데, 나에게 팁을 전수해준 선배 역시 같은 방식으로 아이템을 찾았기 때문에 아이템 회의 전에 서로 어떤 아이템을 생각하는지 이야기하며 조절하는 방식을 취했다. 서로 욕심을 내는 것보단 도와주는 게 둘 다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이템을 보는 과정에서 서서히 [아이템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고, 과거의 방송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아이템을 발굴하는 일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작가로 진화하기 시작했던 뜻이기도 했다.



이 정도에서 끝난다면 참 보기 좋은 해피엔딩이겠지만, 사실 아이템은 시작에 불과했다. 입봉 직후 아이템의 산을 넘자마자 내 앞에 펼쳐진 것은 촬영 구성안과 더빙 대본이라는 더 높은 산이었다.


촬영 구성안은 방송의 순서와 전체 구성을 잡는 뼈대 작업이다. 보통 3곳에 촬영 나간다고 하면, 촬영 순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 A촬영장에서는 어떤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줄 것인지, B촬영장에선 어떤 이야기를 들을 것인지를 모두 생각해서 구성안에 집약해야 한다.


교양은 작가가 촬영장에 동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번 아이템에 대한 작가의 모든 생각을 원고에 담아서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길게 쓰면 꼭 전달해야 할 내용도 잘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간결하면서도 핵심 내용만 쏙쏙 골라 정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시간을 들여 직접 쓰고, 경험이 축적돼야만 내 것이 되기 때문에 아무리 방송을 많이 본들, 선배들의 대본을 여러 번 읽어본들 소용이 없었다. 오로지 내가 직접 원고를 쓰고 재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 능력으로 키워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 서브로 입봉 한 나는 이런 구성을 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아이템에서 어떤 이야기가 핵심이 되어야 하는지, 꼭 봐야 할 장면은 무엇인지, 어떤 말을 들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으니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지금이면 1시간이면 쓸 구성안을 그때는 밤새 붙잡고 있어도 못 쓸 때가 많았고, 기껏 구성안을 써서 선배에게 보여줘도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니?', '다시 이렇게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하고 피드백을 받는 게 대부분이었다. 선배들은 내 원고를 보고 방향을 잡아주고 첨삭을 해주었지만, 반드시 스스로 생각해서 써오게 했고, 다시 수정해서 고치는 것도 모두 내 몫으로 두었다. 그렇게 해야 업무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이었다.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기도 했다. 보통 촬영 구성안을 쓰는 시기는 빨라야 촬영 2~3일 전이고, 구성안을 다 쓰고 컨펌을 받고 촬영 전 피디와 회의할 시간도 촉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밤새 쓴 원고가 처음부터 다시 써오라고 반려되면 그야말로 머릿속이 새하애진다.


그렇게 몇 번의 촬영 위기를 겪고 난 후, 결국 나는 구성안에도 똑같은 꼼수를 적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촬영하려고 하는 아이템과 똑같은 주제의 방송을 여러 개 찾아보고, 그곳에서 어떤 장면이 나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찾아보고 베끼기 시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시래기 아이템이라면, 시래기를 덕장에 널 때 어떤 장면을 찍고, 출연자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체크하고, 음식을 만들 때도 어떤 맛 묘사가 들어가는지 체크해서 하나하나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방영된 방송을 내 섭외 상황에 맞게 아주 조금 수정해서 그대로 복붙 하는 작업을 반복한 것이다. 누군가가 열심히 만들었을 방송을 베끼는 것과 다름없었고, 그 작업을 하는 내내 자괴감에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베끼기 기술로 쓴 촬영 구성안은 별 다른 수정 지도를 받지 않고 바로 통과됐다. 이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니 선배는 '실력이 많이 늘었네?', '그래 이렇게 감을 잡아가면 돼'라며 나를 격려해주기까지 했다.


수정이 별로 없으니 당연히 회의도 빨리 끝났고, 퇴근도 앞당겨졌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은 날엔 집에 돌아가면서도 기쁘기보단 씁쓸함이 더 컸다. 베낀 구성안으로 촬영을 보냈다는 자괴감과 이렇게 해야지만 구성안을 쓸 수 있는 실력밖에 안 되는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다.


구성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전화 취재를 해야 할 때도 꼭 해야 하는 질문을 놓치게 되고,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질문을 전화하지 못해서 과거 방송을 뒤져서 자료를 찾는 일이 허다했다. 방송용 원고와 자막은 정말 시간에 쫓겨서 내가 뭐라고 쓰는지도 모르게 엉망진창으로 써서 넘기면 선배가 거의 대부분을 바꿔서 더빙실에 보내는 상황이 반복됐다.


허둥지둥하면서도 어떻게든 데드라인을 맞췄기 때문에 항상 큰 위기 없이 방송이 나갔고, 선배들 입장에선 팀이 그럴듯하게 굴러갔기 때문에 나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퇴근 때마다 '별일 없지?'하고 의무적으로 묻는 선배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문제예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미 노트북을 닫은 모습을 보면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고, '별일 없어요 언니'하고 말하며 모두를 먼저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막내까지 퇴근시키고 사무실이 텅 비기를 기다렸다가 영상을 보며 촬영 구성안을 베꼈고,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러워 어디에도 말 못 하며 속앓이 하는 시간만 늘어갔다.


입봉하고 내가 만든 방송이 TV에 나오면 매우 기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는구나 하고 현실을 깨닫는 동안 2년 차 겨울이 지나갔다.



시간은 성실하게 흘러 나는 3년 차 작가가 되었다. 지금 내 모습이 방송작가를 시작하기 전 내가 원하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라까이(방송계 은어: 베끼기 기술) 작가로 긴 겨울을 보내다 보니 이제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찾아본 경지에 이르렀다.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웬만한 방송은 다 뒤졌기 때문에 더 이상 볼 게 없었고, 아이템 회의 때 누가 흘러가듯 '그거 언제 수확하더라'하고 이야기하면 바로 '@월이요'하고 답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여전히 구성안을 쓸 땐 오래 걸리지만 다른 방송을 참조하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특정 방송의 앵글이나 화면 구성이 마음에 들어서 꼭 넣고 싶을 때가 아니면 다른 방송에서 본 내용을 적는 일이 줄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방송의 내용을 베끼는 것보단 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구성을 적는 속도가 더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달을 방황하다 보니 선배들보다 조금 늦은 저녁 8시쯤 퇴근하는 일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막내작가 때는 오전 10시 출근 - 밤 10시 퇴근이 일상이었다면, 서브작가가 되고 몇 달 만에 11시 출근 - 8시 퇴근이 가능해졌고 집에 잔업을 가져가는 일도 줄어들었다.


일에 여유가 생기니 삶을 돌아볼 여유도 조금씩 생겼다. 퇴근 후에 운동을 하러 가기도 하고, 함께 일하는 작가들과(주로 내 바로 위 선배와 막내) 노가리에 맥주 한 잔을 하고도 대중교통으로 집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말에는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고 뉴스를 보다가 '이것도 방송해보면 어떨까?' 하는 시각을 갖고 주도적으로 일하는 것이 조금씩 늘어났다.


그렇게 내가 프로그램에 적응하는 사이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회사는 한 번 이사를 했고, 선배들이 그만두면서 새로운 인물들이 자리를 채웠다. 사람이 바뀌었다고 팀 분위기가 바뀌는 건 아닌지라 여유롭게 일하고, 일찍 퇴근하는 지금 생각하면 방송가에서 보기 드문 평화로운 날들을 이어가던 어느 날, 프로그램 종영이 확정됐다.



생각해보면 나를 자괴감 들게 했던 베끼기의 시간은 역설적으로 내가 구성의 기틀을 닦고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입봉 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고, 당장 2주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오라고 했기 때문에 내 역할을 다하기 위해 시작한 베끼기 작업이었다. 그때는 누군가의 노력을 훔쳤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했지만, 사실 그 수많은 방송은 나에게 길잡이였고, 그 방송을 만든 얼굴 모를 작가님들은 나의 스승이었다.


그 작가님들은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만든 방송이 나에게는 좋은 교본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입봉 시기를 거쳐올 수 있었다. 아이템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더 효과적인 표현 방법은 무엇인지 등 아무리 친절한 사람도 말로 전달해주기 힘든 방송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니 과거 내가 했던 일이 단순히 누군가의 노력을 베낀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스킬을 배우고, 내재화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일 년간 누군가의 길을 따라가며 길을 익히면서 어느 정도 길에 대해 알게 됐고, 지금부터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 프로그램이 끝난다는 소식을 나보다 먼저 알았던 선배의 소개로 다시 생방송의 길로 발을 들이게 됐다. 그것도 힘들기로 유명한 아침 생방송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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