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스터 킴 Jul 09. 2020

1년이 흘렀다.

시간은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작년 이맘때 인천공항에 귀국하던 날.

3년 만에 고국의 땅을 밟는다는 기분을 만끽하며 게이트를 빠져나오던 순간. 나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뭔가 기대와 설렘으로 어깨에 후까시가 잔뜩 들어간 그 날, 부모님의 환영을 받으며 첫 질문을 던지셨다.


"손자, 손녀야. 먹고 싶은 게 뭐냐? 할머니가 사 줄 테니."

우리는 탕수육, 짜장면, 짬뽕, 군만두를 먹었다. 외국 생활이 힘든 편도 아니었는데도 한국 땅에서 먹는 오리지널 중식을 보는 것 자체가 자꾸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 생활이 어느1년이 흘렀다.

되짚어보면 많은 일이 있었는데도... 시간은 훌쩍 가버린 느낌이다.

난 서울 직장 발령으로 지방에 있는 가족과 주말부부로 지냈고, 평일에는 부모님 댁에서 지냈다.

나이가 50이 가까워 오는데 70대 노부모 돌봄 하에 진정한 캥거루족 체험을 해 본 것이다.

당신들께서는 아직도 내가 어린 아들일 뿐이다. 아침밥을 챙겨 주시고, 잠자리가 더우면 선풍기를 틀어 주시고, 출근길에 마스크를 놓고 가면 뛰어나와서 전해 주신다. 퇴근 후에는 아버지가 아들 뱃살이 걱정되어 함께 유산소 운동의 파트너가 되어 주신다.

그렇게 1년이 가는 동안 난 양손에 과일이라도, 순대라도 사들고 퇴근한 적이 없었다.

너무 무심한 시간들이었다. 돈이 없는 것도 아니요,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아들 양복을 사 주셨다. 기성복도 아닌 맞춤 양복이었다.

일일이 색깔을 정하고 구석구석 몸의 치수를 재고 중간에 가봉까지 하고서야 비로소 완성된 맞춤복을 입게 되었다. 한 마디로 멋지고 편했다.

 부모의 사랑과 정성에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


난 1년간 브런치에 글을 썼다. 처음에는 열정적이었으나, 요즘은 시큰둥해졌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1주마다 써서 올리는 글마다 조회수가 늘고, 리플이 달려 행복했다. 주변에서 나의 글 쓰는 탤런트에 대해 놀라운 표정을 지어주었으며 은근히 속으로 즐겼다.

하지만, 브런치 매거진 출품대회에서 떨어지고 각종 작품 응모전에 도전했으나, 돌아오는 글자는 '불합격'이었다. 주변에서 도전이 아름답다며 계속 글쓰기를 응원해 주었으나, 스스로 힘이 빠졌다.

당선작을 읽어보니 감동적이었으며 깊이와 은유가 느껴졌다.

글쓰기 1년 차가 불필요한 욕심으로 방황하던 시기임을 절실히 느꼈으며, 겸손해지는 순간이었다.


난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불가피하게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내가 하는 업무의 신지식이 필요했고, 영어로 하는 수업이기에 국제기구에서 쌓은 영어 실력을 유지하고 싶었다.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학생이 있고, 다양한 국적의 개도국 학생들도 있다. 적극적인 수업 참여 후에 리포트도 제출하고 팀 프레젠테이션도 한다. 요즘은 젊은 사람이 오히려 많이 알고 영어도 더 잘한다. 후배 인구수는 줄어 왔지만, 스마트한 인재는 늘어난 느낌.

다시 한번 겸손해지는 시간들이 이어지고 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나도 늙을수록 겸손해지고 싶다.

하지만, 살다 보면 망각할 때가 더 많은 게 아닌가 싶다.

일상에 남들 이야기를 듣기보다 말하기를 많이 한다던가, 욕심이 많아 조급해한다던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잃어 실수를 할 때던가... 지나고 나면 후회할 일 투성이다.


1년이 흘렀다. 그리고 또 1년이 흐를 것이다.


내년에는 난 얼마나 더 성숙해지고 겸손해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수함에서 나를 건져 올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