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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킴 Oct 29. 2021

건축은 노가다 체험부터...

모든 게 땀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정이 비면 여지없이 장인어른께 전화를 건다. 농사일에 중독성이 있는 걸까? 아니면 혼자 사는 독거노인의 건강과 안전을 체크하려는 지극한 효심일까?


난 장인어른께 일손 부족하지 않냐고 툭 던지면, 어르신은 반가운 웃음으로 언제든 오면 된다충청도 사투리로 절대 거절은 안 하신다. 그간 들깨를 베는 낫질 체험으로 시작해서, 무와 갓을 수확했었고 마늘, 양파를 심기 위한 검정 비닐 씌우기 체험, 감 따기 등 새로운 밭농사 일들 내게 무미건조한 일상에서 봄비 같은 것이었다.


무조건 농촌에 가면 할 일이 분명 있었다. 아니 잔뜩 쌓여 있었다. 단지 날씨에 따라 시기 조절만 있을 뿐이다.

막상 도착하니 장인어른은 황토와 시멘트를 섞어 벽 칠을 하고 계셨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마무리돼야 따뜻한 겨울을 지낼 텐데...


잠깐 일을 멈추시더니 느닷없이 막걸리 한 잔 하자신다. 아침잠이 없으신지 새벽부터 일찍 일을 시작했었나 보다. 집에서 가져온 반찬거리와 김치를 안주삼아 서로 신변잡기 이야기를 10분간 늘어놓는다,  마침내 조간 업무 할당 회의 본론으로 들어가더니 가볍게 웃으며 오늘 할 일을 툭 던지신다.


"오전은 시멘트 포대를 2층으로 올리고, 오후에는 석발기로 모래 치기만 하면 돼." 라며 노가다 십장 아저씨처럼 말씀하셨다.


농사일이 아니라 내게 건축 관련 일을 주시다니... 새로운 호기심으로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또한 얼핏 듣기에 과업 내용이 간단해 보였다. 가짓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단치가 않았다. 건축 체험인 줄 알았지만, 진정 노가다 체험이었다. 집에 와서 보니 몸 여기저기에 긇힌 자국들도 있고 파스도 몇 군데 붙여야 했다.


시멘트 한 포대는 40킬로그램. 수건을 덮고 등에 업어 양쪽 끝을 잡고 2층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베개 2개 정도의 사이즈라 무겁지 않을 줄 알았는데....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공사판 아저씨들이 수월하게 잘 들던 것 같던데...

계단으로 메고 올라가다가 괴성을 지르고 말았다.


 "앜~~. 나 죽네!"


시멘트 포대가 한쪽으로 기울더니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았다. 오른쪽 허리가 끊어지고 팔이 떨어져 나가려는 순간 주저앉고 싶었다. 장인어른이 받쳐줘서 그나마 간신히 옮겼다. 만약 놓쳤다면 계단으로 떨어져 시멘트가 터져 엉망이 되었을 텐데... 무엇보다도 현기증으로 눈앞에 별이 반짝거리자, 굴러 떨어질 수도 있었다. 아찔했다.

결국 먼지 속에서 구슬땀과 긴장감으로 시멘트 이동기술이 숙달되면서 오전 중에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장인어른은 '그런 일은 힘이 아니라 요령으로 하는 것' 이라며 웃으면서 조언하시는데...

그 미소가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어르신은 체구가 작 70세가 훌쩍 넘었는데도 여유 있게 옮기셨기  때문이다. 강한 사람이다. 그래도 하나씩 메고 올라가는 순간순간이 내겐 계속 아슬아슬해 보였다.


 "사위한테 생전 해보지도 않은 노가다를 다 시켰네.

허허허. 혼자 하면 못할 일이었는데... 쉽게 끝났네."


난 결코 쉽지 않았다. 어르신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셨던 것이다.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서 끙끙 댓을 것이다.

미뤄왔던 일을 끝내서 그런 지 맛있는 비빔국수를 만드셔서 대접해주었다. 지금껏 먹어본 국수 중 제일 맛있었다. 국수를 먹다 보면 대추가 씹히고, 귤도 있고, 발효된 다양한 김치 국물의 풍미, 그리고 삶은 계란과 참깨... 10가지 이상의 다채로운 고명들을 눈으로 맛보고 입으로 느꼈다.

오후는 쉬지도 않고 뭔가 만드신다. 담배를 피우며 자연경관과 하늘을 번갈아 보는데, 그 사이에 모래 석발기를 금방 만들어 내셨다. 삽으로 모래를 두어 삽 부어 넣고 흔들면 가는 모래는 빠지고 자갈은 남는다. 그 모래는 2층으로 올라가 시멘트와 섞어질 것이다. 장인어른과 나는 시멘트와 모래처럼 시나브로 섞여지고 있다. 무한 반복으로 석발기를 흔들었더니 이젠 한쪽 옆구리가 쑤셔온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조수미의 '나 가거든' 음악이 나올 때는 나의 삽질이 더 장엄하기까지 했다. 시작의 호기심, 슬픔, 고통, 그리고 마무리한 기쁨까지. 모든 일이 그러한 감정의 사이클인 것 같다.


오늘도 고속도로를 달리며 단풍으로 갈아입는 산들을 눈에 가득 담아본다. 그리고 해 질 녘 노을로 인해 단풍은 숨겨지고 테두리만 보여주는 산을 뒤로하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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