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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킴 Oct 13. 2021

자연인 체험하려다 머슴 체험 제대로 했다.

살면서 카타르시스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장인어른은 올해부터 귀농하여 당신의 꿈을 하나씩 하나씩 실천해 가셨다. 오랫동안 소년처럼 꿈꿔 왔으나, 여러 사정으로 귀농 계획은 3-4년 정도 지연되었었다. 2층 집을 손수 짓고 계시고, 봄에 여러 농작물을 심고, 소똥 비료를 뿌리고 하시더니 결국 수확의 계절이 왔다.

고추, 가지, 무, 총각무, 배추, 상추, 쪽파, 방울토마토가 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반은 들깨로 넓게 펼쳐 있었다.


난 밭농사보다 무심코 누렇게 익은 벼를 베고 탈곡하는 특별한 경험을 해 보려고 장인어른에게 그 시기를 종종 묻곤 했었다. 갑작스레 무조건 오라고 하셔서 '나는 자연인이다'와 유사한 방송 체험이라 생각하여 도시락을 들고 홀로 40분 거리를 출발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오후부터 내릴 예정이고, 탈곡 기계차를 구하지 못했다며 들깨부터 일단 베자고 제안하신다. 그것이 오랫동안 미룬 일이고 급선무인 듯싶다. 혼자 하시기 벅찼던 모양이다.


장갑을 끼고 낫을 들고 밭으로 나서니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으로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차곡차곡 줄 맞춰 깨 나무를 눕혀 놓으니, 금세 한 고랑을 끝냈다. 골프 드라이버 샷 치듯이  큰 회전으로 치는 순간의 임팩트가 중요했다. 한 번에 베지 못 하면 까만 들깨들이 우수수 흙 위로 떨어져  벌레들만 축제를 벌일 판이었다. 중간 쉬는 시간에 막걸리 한 잔 마셨는데.... 왜 농부들이 항상 원샷을 하는지 공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목에서 꿀떡꿀떡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캬~~'하는 소리. 갈증 때문에 중간에 막걸리 잔을 꺾을 수는 없었다. 장인어른과 농촌 노동의 동지애를 느끼면서 수다를 떨어 보려는 순간... 다시 작업은 시작됐다.

결코 이것은 자연인 체험이 아니라, 머슴 체험이라는

불길함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힘은 내가 더 좋지만, 장인어른 낫질이 숙달되어 나보다 진도가 더 빠르고 체력도 더 좋으신 게 신기했다. 오전 2시간, 오후 3시간 만에 300평 정도의 들깨 베기 일을 끝낼 수 있었다.

어느새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은 빗방울과 구분 없이 뚝뚝 떨어졌다.

 더 이상 낫질을 하다가는 몸살로 앓아누울 것 같은데, 장인어른은 점잖게 제안하신다. 며칠 더 자고 가라고...

밀린 일이 많으신 게 분명하다.

난 서서히 봉지 하나씩 들고 상추, 가지, 홍시, 고구마 등을 챙겼다.

나도 모르게 내 농촌 노동의 대가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긴 장화와 목장갑을 벗고, 세수하고, 선글라스 쓰고, 허리를 어루만지며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밭에서 장인어른은 자루에 다른 농산물을 잔뜩 담아서

내 차 트렁크에 담으신다.

거절할 엄두가, '이거 저희 다 못 먹어요' 라며

저항할 힘마저도 나지 않았다.  

장인어른을 다시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과 몸이 모두 무거웠다.

한편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거린다.

이것은 장인어른에 대한 고마움의 눈물도,

머슴 체험으로 인한 억울한 통한의 눈물도 아니다.


아마도 농촌 노동의 진정한 땀을 깨달으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의 눈물인 것이 분명하다.

집으로 돌아와서 하루 이틀 삭신이 쑤셔 앓는 소리를 했지만, 다시 그 논밭으로 가려는 마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본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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