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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 킴 Dec 14. 2021

짧은 육아휴직이었지만 나름...

70일간의 육아휴직이 끝나간다.

아쉬움도 있고 설렘도 있는 게 사실이다.


아쉬운 것은 나 자신을 위한 과감한 힐링이나 투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홀로 제주도 간다고 노래만 불렀을 뿐 실천하지 못했다. 옛 친구들을 찾아가 수다도 떨고 사우나도 가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들은 스캐쥴이 꽉 차서 나랑 잠깐 시간 낼 수 있을 뿐이다.


설렘은 내가 소속된 회사에서 소외된 느낌을 최근 와서 가졌는데, 다시 일에 대한 갈증이 생긴 것도 참 신기하다.


앞으로 두 번 다시는 없을 휴직이기에 이 감정을 글로 남겨본다.


잘한 점은 가족들 개개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피곤한 몸으로 퇴근해서 그저 와이프 말은 잔소리요, 아이들 찡얼거림은 어리광으로 단정 지었었다. 건성으로 "알았어. 알았다고."라고 연거푸 대답할 뿐. 눈 마주치고 대꾸하지 못했다.

하지만, 휴직 기간 동안 느낀 아이들의 모습은 달랐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그들의 성장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존중하면서 놀아보고 대화해보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훌쩍 커버린 것이다.


와이프는 경제적으로 궁핍해졌는데도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냉장고 재고는 서서히 줄어들었고, 아이들 간식도 사라져 갔다. 딸은 아빠가 회사를 안 나가니 걱정된다 하였다. 고기반찬도 안 나온다고 투정 부렸다. 와이프 폰에서 "당근, 당근" 소리가 나더니 아내가 물건을 현관 앞에 내다 팔고 있었다. 육아휴직 수당은 관리비, 원리금, 사교육비 등 고정지출로 사라진다. 맞벌이가 아니면 육아휴직은 한 달 반 만에 흥부 가족 체험을 맛본다.


그래도 시간이 많으니 와이프와 함께 자전거도 타고 등산도 하는 건강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운동하고 기름진 음식을 적게 먹으니 건강해지는 것 같다. 뱃살도 줄었고 고지혈증도 완화됐다.


장인어른의 의욕적인 농사가 수확철을 맞이했을 때 일손이 부족했는데 내가 큰 기여를 했다. 여동생이 10년 만에 이사한 집에 집들이도 다녀왔고, 처남의 쌍둥이 돌잔치도 다녀왔다.


하지만,

경제적인 형편이 좋지 않으면 행복감은 반감된다. 자산 매각에 있어서 소위 '후려치는 사회'를 느꼈다.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거래가 없어 시간이 갈수록 가격은 후려친다. 차를 팔려고 내놨는데 딜러들이 또 후려친다.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어 그렇다 치지만, 중고차 시장은 핫한데도 왜 내 차만 후려치는가...


대학원 졸업식도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할 것 같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 오미크론 때문에 위험하니까. 코로나는 가족과 가운 입고 사진 찍는 일마저 후려치고 있다.

사회는 코로나로, 경기침체로 따뜻한 온정이 보이지 않았다. 이빨만 숨기고 있을 뿐, 먹잇감 앞에서 야생성을 드러내고 있는 사람들만 보인다. 빈부의 경계에서, 양극화의 경계에서 한쪽의 반대쪽 뜯어먹기가 여실히 보인다. 심판도 안 보인다. 돈 있는 갑은 더 탐욕스러워지고, 돈 없는 을은 더 초라해진다.


회사 내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것. 현재 우리 주변에 정말 가슴 시리게 아프고 우울한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든, 자산 시장이든 그저 후려치지 않고 시장이 순행되고 조속히 선행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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