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아버지는 2019년 연말쯤 폐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어머니와 나, 여동생 등 온 가족이 아버지를 데리고 연세대 세브란스 암병원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방사선 치료, 조직 검사, 항암 치료... 쉴 틈 없이 줄 선 각종 치료며 검사에 아버지 몸이 너덜거렸다. 몇 달이 지나자 부쩍 살이 빠진 아버지는 바늘 자국 잔뜩 뚫린 천 조각 같았다. 그 아버지가 치료받으러 가면 남은 가족은 병원 지하 식당으로 곧잘 내려가, 커피를 마시고, 베이글을 쪼개 치즈를 바르고, 김치찌개를 먹을까 돈까스를 먹을까 고민했다. 위층의 아버지는 독약 같은 항암제를 꽂아 넣고 있는데 말이다. 먹는 동안에는 아픈 아버지 생각을 덜 할 수 있었다. “음 이 병원은 찌개가 괜찮은 거 같아” “나는 돈가스가 맛있는데” 따위의 시답잖은 얘기만 주로 했다. 돌아보면 그렇게라도 입에 뭔가를 퍼넣으며 아무 말이나 해야 막막하고 슬픈 감정이 잦아들어서 그랬던 듯싶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회가 동하면 아비고 남편이고 입에 넣고 봐야 하는’ 동물로서 본능이 다들 앞섰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고.
이런 기이한 식사는 그로부터 대강 1년 뒤 아버지 장례식에서도 계속됐다. 장례식장에 배달되는 육개장이며 식어 빠진 편육, 마른안주 조각은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돈 주고 사 먹기에 아깝게 형편없었다. 그래도 그게 자꾸만 목으로 넘어갔다. 맛으로 먹는 건지 그냥 슬프니까 먹는 건지 손님이 올 때마다 마주 앉아서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삼촌이 배고프냐고 물었는데 아니라고 대답하면서도 계속 먹었다. 향냄새와 육개장과 꿀 땅콩과 아메리카노와 파전 냄새가 뒤섞였다. 늦은 저녁 손님이 끊기고 빈소가 비면 멍하니 아버지 영정을 바라보다 맥주캔을 따서 목구멍에 왈칵 부어 넣고 빈소 한가운데 누워 잤다. 오징어며 땅콩을 욱여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다른 가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말없이 뭘 자꾸 집어먹고 마셨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근처 카페에서 사다 놓은 아메리카노 커피잔 플라스틱 껍데기가 산처럼 쌓였다. 장례를 버텨내고 아버지를 산에 묻고 내려온 저녁이 되자 허한 식욕은 절정을 이뤘다. 아버지가 먹고 남은 약들을 약국에 내다 버리고, 주인 없는 옷가지를 대강 버리고 오니 집에다 짜장면이며 탕수육을 시켜놓았는데, 온 식구가 이성을 놓고 음식에 달려들었다. 한 젓가락에 탕수육을 세 조각씩, 평생 그런 걸 안 먹어본 사람들처럼 삼켰다. 고인은 이미 재가 돼 차가운 산에 누워 있는데 말이다. 누가 본다면 인간 같지 않은 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가족이 죽었는데 어떻게 밥이 목구멍에 그리 넘어갔을까 하는 화두를 몇 년간 품어왔다. 처음에는 죄책감을 느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나’ 말이다. 그러다가 근래에야 생각이 좀 바뀌었다. '인간이니 그럴 수 있는 거라'고. 인간이니 사람이니 떠들어봐야 고상한 표현에 불과하다. 인간도 결국 동물이며 결국 제 아비가 죽은 자리에서도 배가 고프면 그만 먹어야만 살 수 있는 존재란 거다. 아비는 재가 되어도 아들은 저녁에 탕수육을 게걸스럽게 씹어 삼킨다. 더 먹을 수 있다면 짬뽕도 들이켰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서늘하고 허전하기 짝이 없는 식욕, 내가 짐승에 불과함을 깨우치게 하는 무서운 식욕이다. 나는 아버지 제사가 돌아올 때마다 문득문득 그때의 식욕을 되새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