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6일, 마라톤 대회에 또 나갔다. 필자로서는 상반기 훈련 성과를 결산하기 위한 마지막 대회로 각오가 남달랐다. 출발선에서 제발 목표한 기록을 내게 해달라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성호경까지 그었으니 말 다한 것 아닌가. 물론 이렇게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도, 6월 염천에 10km를 내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절반 정도 뛰었을 때 이미 더위에 지치기 시작했고 걷는 사람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하자 ‘나도 걸을까?’ 유혹이 올라왔다. 특히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는 잠실대교 밑 언덕길은 사람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앞사람 등만 보고 내달린 끝에 겨우 골인했다. 내심 버텨낸 게 기쁘면서도 ‘내 다시 이 여름에는 대회에 나오지 않으리’ 얕은 후회를 내뱉었다. 뙤약볕에 얻어맞은 목덜미며 어깨가 후끈후끈했다.
그러나 곧 후회를 싹 씻어내리는 보상이 주어졌다. 골인 지점에서 주최 측이 “수고하셨다”며 완주 메달과 함께 얼음에 담가둔 포카리 스웨트에 흔히 ‘쭈쭈바’라고 하는 꼭지를 따 빨아먹는 아이스크림을 줬기 때문이다. 사실 뛰고 나면 다리가 천근만근에 위장도 단단히 꼬인 상태라 금방 뭘 잘 먹으려 들지 않는 편인데, 더워도 너무 더웠던지라 아무 그늘이나 찾아 주저앉아 음료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쭈쭈바’를 주물러서 쭉쭉 빨아먹었다. 순간 강렬하게 싸하고 짜릿한 기분이 들면서 더위가 쑥 내려갔다. 극락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지금 당장 일어나서 다시 뛰라고 해도 뛸 수 있을 만큼 몸에 힘이 돌아왔다.
쭈쭈바의 여운은 대회 후 귀가하면서도 이어졌다. 아 그 강렬한 시원함이라니. 이 맛에 대회를 나가는 건가. 그 순간 옛날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로 군대에서 라면을 먹은 기억이었다. 10여 년 전 군대지만 그때도 라면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졸병들에게는 주말에 쉴 때 컵라면에 미지근한 물을 부어 먹는 것만이 허용됐고, 끓여 먹는 라면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죽했으면 휴가 나가서 먹고 싶은 음식으로 ‘냄비에 팔팔 끓여 계란을 푼 라면’을 꼽은 병사가 있을 정도였겠나. 근데 그런 군대에서 어느 날 졸병과 중고참 몇 명이 창고에 몰래 숨어 라면을 먹게 된 것이다. 사실 사회로 따지자면 정말 볼품없는 라면이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군복 안쪽에 숨겨온 라면을 부숴 넣고 팔팔 끓여 한 젓가락씩 떠먹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도 먼지 풀풀 날리고 곰팡내 나는 창고에 둘러앉아 누가 쫓아와 혼낼까 후루룩 급하게 라면을 씹어 넘겼다. 땡볕에 타고 땀에 전 얼굴을 서로 바라보면서. 근데 그게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황홀했다.
제대 후에도 그 황홀한 맛이 쉬이 잊히지 않았다. 그러나 맛을 재현하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군대에서 해 먹던 대로 커피포트에 라면을 넣고 끓여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어떻게 그리 맛이 없을 수가 있는지 한두 입 먹고 뱉어버리고 말았다. “대체 왜 커피포트에 라면을 끓여 설거짓감을 늘리느냐”는 어머니의 잔소리만이 날아왔다. 그때 그 라면 맛을 재현하려면 군대에 다시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미 나이가 훨씬 지나버리기도 했고 라면 하나 먹으러 재입대라니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려 엄두가 안 난다. 그나마 쭈쭈바는 조금 사정이 낫긴 하다. 여름에 다시 달리기 대회에 나가는 날이 오면 재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쭈쭈바와 라면을 통해 결론 내린 것은 강렬한 맛의 기억은 먹을 당시의 환경에 지배당한다는 점이다. 졸병 시절 나는 석 달 넘게 라면다운 라면을 먹지 못한 상태였고, 매일 이어지는 ‘갈굼’에 정신이 피폐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몰래 숨어서 끓여 먹는 라면이라니 맛이 없으면 그게 이상할 테다. 쭈쭈바도 그렇다. 35도가 넘는 뙤약볕에 이를 악물고 10km를 달려온 사람 앞에 캐비아와 쭈쭈바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무얼 고르겠는가? 당연히 쭈쭈바가 아닐까. 세상 어떤 사치스러운 음식도 무더위 아래서는 쭈쭈바를 이길 수 없을 거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친구에게 이 글을 보여줬더니 “나는 군대 훈련 중에 밥이며 반찬을 다 비닐에 때려 붓고 고추장 양념을 부어 조물조물 뭉친 떡밥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다른 친구는 “취직하고 몇 달 만에 마셨던 소주 한잔”이라고 답했다. 품목은 다르지만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굵직한 강렬한 맛의 기억은 있는가보다. 남은 쉬이 이해할 수 없지만 나에게는 각별한 그런 맛의 기억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