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강의 소설 ‘흰’에 푹 빠졌다.
시와 소설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것 같은 이 책은 읽을수록 천천히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래서 자꾸 곁에 두게 된다.
책은 겨울의 차가운 공기를 품고 있다. 눈밭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앙상한 나무가 생각난다. 그곳은 고요하고 쓸쓸하다.
모국어에서 흰색을 말할 때, ‘하얀’과 ‘흰’이라는 두 형용사가 있다.
솜사탕처럼 깨끗하기만 한 ‘하얀’과 달리 ‘흰’에는 삶과 죽음이 소슬하게 함께 배어 있다.
<소설 ‘흰’,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가 말하는 ‘흰 것’에 대한 단상을 읽어 내려가다가 나는 ‘흰 개’에서 잠시 멈췄고, 그것은 내가 깊이 묻어 두었던 슬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다짐했다. 감정 소모가 심하다는 이유로 자꾸 미루기만 했던 그 이야기를 이젠 써야겠다고.
소설 속 그녀는 ‘흰 개’를 회상한다.
첫 직장을 그만둔 스물다섯 살의 여름, 그녀는 본가로 내려갔고 이웃집 마당에서 흰 개를 만난다. 진돗개의 피가 섞인 듯한 흰 개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자신의 목에 묶인 쇠사슬이 차르르 끌리는 소리를 내며 자꾸만 뒤로 물러선다. 짖지도 으르렁거리지도 않는다. 사람에 대한 어떤 지독한 기억이 있는 건지 그 개는 작은 인기척에도 소스라친다.
개는 개인데 짖지 않는 개는?
그 수수께끼의 싱거운 답은 안개다.
그래서 그녀에게 그 개의 이름은 안개가 되었다. 하얗고 커다란, 짖지 않는 개.
먼 기억 속 어렴풋한 백구를 닮은 개.
<소설 속 ‘흰 개’ 중에서>
그녀는 흰 개를 떠올리며 ‘안개’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해 겨울 본가로 내려간다.
하지만 그 자리에 안개는 없고 야무지게 생긴 불독 한 마리가 그녀를 향해 맹렬히 짖는다.
안개는 죽었다. 아무것도 안 먹고 시름시름 앓다가 겨울이 올 무렵 죽었다.
나는 ‘마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베이지색의 부드러운 털이 멋스러운 보더콜리 마리.
스물일곱 살의 여름.
선물처럼 내게 왔던 그날을 기억한다.
공과 원반 던지기, 산책이 이 세상 전부였고 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지닌 마리.
스트레스를 잔뜩 짊어진 채 퇴근한 어느 날 저녁, 나는 집에 오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마리는 그런 내 얼굴을 핥아주었다. 마음이 고단할 때마다 내게 포근하고 따뜻한 품을 내어주었다.
그리고 3년 후 마리는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마리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길을 가다 닮은 개를 보면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조그만 흔적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아서 아직 쿠션에 남아 있던 털 한 올 한 올을 봉투에 담았다. 여행 온 기분으로 산책하던 그 예쁜 동네는 생각만으로도 아려와 이젠 가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끝까지 곁에 있어주지 못해 한없이 미안한 마음은 바위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안개'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흰 개를 생각하는 소설 속 그녀의 모습이 마리를 그리워하는 내 마음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감정선에 기대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추억이 조금씩 옅어질까 봐 불안했던 마음을 이젠 내려놓고, 마리를 다시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온갖 슬픈 감정으로 엉켜버린 매듭을 풀고 싶었다.
주인이 죽으면 먼저 간 반려견이 하늘의 문턱에서 마중 나와 기다린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훗날 그곳에서 마리를 만나고 싶다.
꼬리를 흔들며 마중 나와줬으면 좋겠다.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파묻고 그동안 보고 싶었던 만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지금 마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한다. 그리고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항상 그리워하는 내 진심이 닿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