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니 일상이 반짝반짝 빛난다
도착해보니 하필 점심시간이었다. 앞으로 한 시간은 기다려야 검사받을 수 있다. 그동안 책이나 읽을까 했지만 대기실의 딱딱한 의자를 보니 별로 내키지 않아 일단 밖으로 나왔다.
자동차 검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창문을 열었다. 창 밖 골목길의 아담한 돌담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걷고 싶어졌다. 이 동네가 궁금해졌다. 한낮의 구름은 몽글몽글 예뻤고 공기도 맑아서 산책하기에 좋은 날씨였다.
발길이 닿는 대로 돌담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길가에 피어있는 풀꽃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 문장이 떠올랐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려면 어린 아이나 여행자의 시선이 필요하다. (...) 지구에 처음 온 외계인처럼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창의적인 글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강원국의 글쓰기> 중에서
여행자가 되어 이 길을 걸어 보고 싶어졌다. 처음 와 본 동네이니 이미 나는 여행자이기도 했다.
가끔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 찾아온다. 그런 날에는 일기를 썼다. 일기는 내 생각의 무게를 덜어주고 소란한 마음을 정돈해주었다. 그러다가 점점 확장되어 사진 속에 멈춰있던 시간을 글과 함께 기록하기 시작했다. 서툴지만 나만의 글을 하나씩 완성해나갔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을 기록하고 사유하는 일상으로 가득해졌다. 소소한 것을 특별하게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글을 쓰면 마음의 온도가 올라간다.
집으로 가는 길, 운전석 옆에 놓여 있는 식은 커피에 시선이 멈췄다.
산책길에 만난 새초롬한 표정의 길고양이, 선명한 주홍빛의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가는 석류나무, 크고 작은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정갈한 마당, 빨갛게 가을을 알리는 단풍잎, 동네 어린이집에서 까르르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오는 길에 이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면 볼 수 없었던, 소소하지만 반짝이는 일상의 순간이다. 카페에 들리지 않고 이곳에 바로 왔다면 내게 한 시간의 여유는 없었을 테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이 동네를 걷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일상의 연결고리와 나의 생각이 맞닿아있는 순간을 써 내려갈 때, 인생 사진을 남기듯 나만의 ‘인생 글’이 차곡차곡 쌓여갈 때 나는 행복으로 충만해진다.
고요한 공기 속에서 천천히 글을 쓰는 내 취미는 느리지만 깊다. 아득한 저곳에 있는 생각을 단어와 문장으로 길어 올리는 과정이 쉽지 않아 느리지만, 내가 나를 마주하고 깊이 사색하며 글을 쓰다 보면 마음이 개운하고 산뜻해진다. 그래서 오래오래 글을 쓰고 싶다.
글은 나의 일상을 빛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