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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피늄 Nov 18. 2019

박카스 할머니가 삶을 대하는 태도

영화 죽여주는 여자 (2016, 감독 이재용)



노인들 사이에서 죽여주는 여자로 유명한 소영(윤여정)은 ‘박카스 할머니’다. 가방에 담배와 박카스를 두둑이 챙기고 비밀리에 성을 사고파는 종로의 공원으로 매일 출근한다.

어느 날 소영은 과거 자신의 단골이었던 할아버지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마음이 약해서 탈인 소영은 할아버지의 무리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그렇게 소영은 ‘진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


그해 첫눈이 내리던 날. 소영은 살인 혐의로 체포된다. 어차피 양로원 갈 형편도 안 되는데 차라리 잘 됐다며 담담한 표정으로 창밖의 하얀 눈을 바라본다. 담배연기 가득한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거기 가면 세끼 밥은 먹여주는 거잖아요.
요즘은 반찬이 뭐가 나오나.

올 겨울은 안 추웠으면 좋겠다.





삼팔따라지, 본명 양미숙, 죽여주는 여자 소영 씨 그리고 무연고. 그녀를 부르는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이름 하나하나에는 고단하고 외로운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있다.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규모 11위인데도 그에 비해 노인 빈곤율은 OECD 최하위 국가이거든요. 아직도 이렇게 어두운 그늘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노인분들이 많다는 게 저는 참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박카스 할머니를 주제로 잠입 취재를 하던 다큐멘터리 감독에게 소영이 불쾌감을 드러내자 당황한 그가 하던 말이다. 난 여기에서 연민인지 편견인지 모를 불편한 색안경을 보았다. 사연 많은 그들의 인생을 노인 빈곤율 그래프처럼 감히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영화는 소영의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엄마를 잃어버린 어린 코피노를 친손자처럼 살뜰히 챙기고, 자다가도 일어나 배고픈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다. 사는 게 창피하다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병든 노인의 말동무도 되어준다.





정 많은 소영의 진심 어린 눈빛과 붉어진 눈시울에서 그녀의 고달픈 삶이 스쳐 지나갔다.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타인의 슬픔을 나누고 공감했던 것은 아닐까.

중의적인 제목이 주는 느낌처럼 영화는 슬픔과 온기 모두를 품고 있다. 사람들은 소영과 같은 할머니를 가까이해서는 안된다며 불편한 기색을 비추거나 안타깝게 여기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유쾌한 농담을 건네기도 하고 다정한 손길로 보듬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소영의 마지막을 보는 내내 아려왔다. 마음이 아팠다.



저 사람도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진짜 속 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그냥 다들 거죽만 보고 대충 지껄이는 거지.



무심하게 툭 내뱉던 소영의 혼잣말과 쓸쓸한 표정이 계속 기억에 머문다. 오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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